아베의 정치 인생 바꾼 김정일의 '통 큰 자백'

[김당의 톺아보기-아베의 혼네③] 두 얼굴을 가진 '투쟁하는 정치인'

등록 2014.02.14 08:36수정 2014.02.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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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아베는 북한을 '이지메'(집단적 괴롭힘) 해서 지지율과 정치적 승리를 확보한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이런 극우세력에게는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북한'이다.
 지난 2004년 12월 17일 일본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이부스키(指宿)시의 하쿠스이칸(白水館)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뒤에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고이즈미 총리는 북핵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의 동시해결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4년 12월 17일 일본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이부스키(指宿)시의 하쿠스이칸(白水館)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뒤에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고이즈미 총리는 북핵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의 동시해결 입장을 밝혔다.김당

일본 도쿄도 지사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원을 받은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이 압승했다. '즉각적인 탈원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은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는 3위에 그쳤다. 2012년 12월에 출범한 아베 내각의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선거에서 아베가 지원한 마스조에 후보가 압승함에 따라 아베 정권의 독주가 계속될 전망이다.

아베는 고이즈미의 후계자다. 아베는 부친 아베 신타로(1991년 사망)의 비서관으로 일하다가 아버지 선거구를 세습해 정치에 입문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아베는 95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를 지원했다. 이후 2000년 7월 제2차 모리 요시로(森喜朗) 내각에서 고이즈미의 추천으로 정무담당 내각관방 부장관(다른 나라의 국무부 차관이나 국무조정실장에 해당)이 된다. 최근 러시아 소치에서 "영어는 적국어였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그 모리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모리 전 총리를 2020 도쿄 하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발탁해 '보은'했다.

이듬해 고이즈미의 지원으로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된 아베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정치인으로서 일생일대의 기회가 된 역사적 사건을 접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이 그것이다. 그 일생일대 사건의 '복선'은 1997년에 깔렸다.

김정일의 사과... 아베의 강경 카드 먹혀

아베는 1997년 2월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日本の前途と歴史教育を考える会)을 결성해 사무국장을 맡아 교과서 개정운동을 주도한다. 또 그해 요코다 메구미 가족을 중심으로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가족회)가 발족하자 동료 의원들을 규합해 '북한 납치의혹 일본인 구조 의원연맹'을 결성했다. 아베는 나중에 자신의 책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일본 안전보장에 관한 중대문제'로 인식했다고 썼다.

"내가 납치문제 해결에 몰입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일본의 주권이 침해되고 일본 국민의 인생이 침해받았다는 사실의 중대함에 있었다. 일본 안전보장에 관한 중대문제다."(아베 신조,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 文藝春秋, 2006, 46쪽)

김정일의 '통 큰 자백' 지켜보는 아베 2002년 9월 평양에서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을 갖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악수 뒤에 아베 자민당 간사장 대리(왼쪽)와 황호남 북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 서기장(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 회담에서 납치를 시인한 김정일의 '통 큰 자백'은 아베 정치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된다.
김정일의 '통 큰 자백' 지켜보는 아베2002년 9월 평양에서 역사적인 북-일 정상회담을 갖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고이즈미와 김정일의 악수 뒤에 아베 자민당 간사장 대리(왼쪽)와 황호남 북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 서기장(현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당시 회담에서 납치를 시인한 김정일의 '통 큰 자백'은 아베 정치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된다.연합뉴스

정치권의 일본인 납치문제 전문가인 아베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 자격으로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동행한다.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현장에서 아베는 김정일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과거에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이 열세 명의 일본인을 납치했는데 여덟 명은 죽었고 다섯 명이 살아 있습니다."

김정일이 북-일 수교회담을 진척하기 위해 '통 큰 자백'을 한 것이다. 북한은 그때까지 납치 문제는 없다는 태도였다. 김정일은 공작기관의 일본어 교육과 남한 잠입을 위해 납치했다고 인정했다. 김정일은 일본이 확인을 요구해 온 11명의 생사여부 외에 요구가 없었던 3명의 생사여부까지 통보해 주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일본인 납치를 공식 시인한 이 '통 큰 자백'은 아베의 정치 인생과 동북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대 사건으로 확대되었다. 당장 일본의 언론과 여론이 들끓고 우익의 목소리가 거세졌다.

아베는 "김정일 위원장이 납치에 대해 국가적 관여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평양선언에 서명해선 안된다"고 진언했다. 고이즈미는 고심 끝에 이런 요구를 북측에 전달했다. 김정일은 이번에도 뜻밖에 일본인 납치 13명의 납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아베의 강경 카드가 먹힌 것이다.

북한 때려 '일본의 안전문제로 투쟁한 정치인' 이미지 획득

정상회담이 끝나고 그해 10월 생존한 납치 피해자 5명이 북한 복귀를 전제로 일본 땅을 밟았다. 일본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국가 간 약속이기 때문에 돌려보내야 한다(외무성)는 의견과 돌려보내지 말아야 한다(정치권)는 의견이 맞섰다. 아베는 돌려보내지 않되 북한이 반발하면 경제제재와 무력행사를 포함한 강공책을 펴야 한다고 고이즈미를 설득했다. 아베는 고이즈미로부터 '정부 방침으로 송환 불가' 결정을 이끌어냈다.

아베는 일본 언론에서 원칙 있는 정치인으로 주목받으려 우익의 새 지도자로 떠올랐다. 고이즈미는 2003년 9월 아베를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했다. 각료 경력도 없는 3선 의원이 집권여당 간사장에 취임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었다. 아베는 '고이즈미의 후계자'이자 '우익의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다. 아베는 다른 정치인과 달리 방송에 나가 자신을 비판하는 진보 매체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아사히신문은) 납치 문제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 (납치자 구출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 같다."(2004년 2월 1일 TV대담)

고이즈미는 2004년 5월 재방북해 납치 피해자의 자식 등 가족 5명을 일본으로 데려왔다. 이듬해 아베는 제3차 고이즈미 내각에서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 취임했다. 2006년 국정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경험을 쌓은 의원경력 13년의 아베는 집권 자민당 총재로 등극했다. 그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그가 총리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 자타가 공인하듯, 일본 국민에게 각인된 '자국민의 안전문제로 투쟁한 정치인' 이미지가 아베의 결정적 자산이 되었다. 북한을 때려서 우경화된 일본 국민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내가 납치문제에 목소리를 낼 때, '우익 반동'이라는 레테르가 붙을 것을 걱정해 소수의 의원들만 운동에 참가했다. 사실, 그후 우리들은 미디어의 비판에 몸을 제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응원하고 있다'는 의원은 많았지만, 함께 행동하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투쟁하는 정치가' 수가 많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지만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아베 신조, 2006, 4쪽)

아베의 기준은 북한과 친하면 '적', 북한과 싸우면 '동지'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홈페이지(위 왼쪽)와 홈페이지에 링크된 애니메이션(메구미) 포스터. 일본어는 물론 영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메구미>를 시청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에니메이션 관람에 대해서는 온갖 방해활동을 펼쳤다.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홈페이지(위 왼쪽)와 홈페이지에 링크된 애니메이션(메구미) 포스터. 일본어는 물론 영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메구미>를 시청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에니메이션 관람에 대해서는 온갖 방해활동을 펼쳤다. 일 납치문제대책본부

아베는 1기 내각(2006. 9~2007. 9) 당시 총리 대신이 본부장을 맡고 모든 국무대신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발족해 현재도 이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과 그 해결사 역할은 아베의 정치적 브랜드가 되었다. 2006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아베의 대북 강경책이 옳았다는 신념을 강화했다. 문제는 아베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등치'시킨 '두 얼굴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

흔히 일본인은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표현)'가 다르다고 하지만, 특히 아베는 일본 역사의 과오를 인정했다가도 납치자 문제로 뒤통수를 치는 언행을 되풀이해왔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대표적 사례다.

아베는 총리가 되자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부재' 및 '사과 불가'에서 '고노 담화 지지' 및 '강제성 인정'으로 발언을 수정했다. 그러나 그는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결의한 자민당에 협력 의사를 표명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총리의 이중성 때문인지, 아베 1기 내각에서도 시오자키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의 계승'을 천명(2007. 3. 5)했으나, 일본 각의는 군과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발표(2007. 3. 16)했다.

아베는 2007년 4월 당시 미-일 정상회담 전에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해 '고노 담화'의 계승을 강조했다. 이는 당시 미 하원이 '20세기 최대의 인신 매매 사건'이라고 규정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상정으로 미국 내 여론 악화와 정상회담 의제화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면서 부시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전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면 안 된다는 이중적인 뜻을 전달했다. 아베가 추구해온 '투쟁하는 정치가'의 두 얼굴이다.

위안부 모집에 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배경이 된 1993년 일본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에서 시작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어 한국·중국·대만·네덜란드(동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 주민 5~20만 명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또 '고노 담화'에는 "위안부의 대다수가 조선(한국)인들이었다"고 적시돼 있다. 그런데 아베는 일본군이 5~20만 명의 여성을 강제 동원하거나 납치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와 일본인 10여 명을 납치한 북한의 범죄를 '등가의 국가범죄'로 치환했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북한을 '이지메'(집단적 괴롭힘) 해서 지지율과 정치적 승리를 확보한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이런 극우세력에게는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북한'이다. 즉, 북한과 친하면 '악'(惡)이요 적이고, 북한과 싸우면 '선'(善)이요 동지다. 한국의 극우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일본인 납치 실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메구미> 포스터.
일본인 납치 실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메구미> 포스터.일본정부 납치문제 대책본부

1970~80년대에 발생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 현재 일본 정부는 17명을 납치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와의 수뇌(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고 같은해 10월에 5명의 피해자를 귀국시켰다.

북한은 이후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는 일본의 국가주권 및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서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일-조(일본-조선)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기자는 납치 문제가 논의된 한-일 정상회담을 2~3회 취재한 적이 있다. 2004년 12월 17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현 이부스키(指宿)시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북핵문제와 납치문제의 동시해결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국민이 이(납치문제)에 대해 감정의 상처를 입고 분개하는 것은 잘 이해가 간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국민의 입장이고 책임있는 지도자들은 국민과는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북 경제제재를 완곡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와 그 뒤를 이은 아베는 '국민 감정'을 따르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쪽으로 갔다.

일본 정부는 현재도 총리대신을 본부장으로 하고 모든 국무대신을 구성원으로 하는 납치문제대책본부를 운영하고 있다. 납치문제대책본부 홈페이지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 계몽 애니메이션 <메구미>를 링크해 놓고 일본어는 물론 영어·중국어·한국어·러시아어·불어·스페인어·독일어·이탈리아어로 시청할 수 있게 해놓았다. 반면 일본은 최근 열린 '2014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는 관객들이 위안부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것을 방해하는 등 국제사회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군?위안부 #일본인 납치 #고이즈미 #고노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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