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홈페이지(위 왼쪽)와 홈페이지에 링크된 애니메이션(메구미) 포스터. 일본어는 물론 영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메구미>를 시청할 수 있게 해놓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일본군위안부 에니메이션 관람에 대해서는 온갖 방해활동을 펼쳤다.
일 납치문제대책본부
아베는 1기 내각(2006. 9~2007. 9) 당시 총리 대신이 본부장을 맡고 모든 국무대신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납치문제 대책본부를 발족해 현재도 이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과 그 해결사 역할은 아베의 정치적 브랜드가 되었다. 2006년 10월 발생한 북한의 1차 핵실험은 아베의 대북 강경책이 옳았다는 신념을 강화했다. 문제는 아베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등치'시킨 '두 얼굴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
흔히 일본인은 '혼네(本音, 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 겉표현)'가 다르다고 하지만, 특히 아베는 일본 역사의 과오를 인정했다가도 납치자 문제로 뒤통수를 치는 언행을 되풀이해왔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 대표적 사례다.
아베는 총리가 되자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 부재' 및 '사과 불가'에서 '고노 담화 지지' 및 '강제성 인정'으로 발언을 수정했다. 그러나 그는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결의한 자민당에 협력 의사를 표명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런 총리의 이중성 때문인지, 아베 1기 내각에서도 시오자키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의 계승'을 천명(2007. 3. 5)했으나, 일본 각의는 군과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고 발표(2007. 3. 16)했다.
아베는 2007년 4월 당시 미-일 정상회담 전에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해 '고노 담화'의 계승을 강조했다. 이는 당시 미 하원이 '20세기 최대의 인신 매매 사건'이라고 규정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상정으로 미국 내 여론 악화와 정상회담 의제화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면서 부시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전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면 안 된다는 이중적인 뜻을 전달했다. 아베가 추구해온 '투쟁하는 정치가'의 두 얼굴이다.
위안부 모집에 군이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배경이 된 1993년 일본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1930년대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에서 시작해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어 한국·중국·대만·네덜란드(동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 주민 5~20만 명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또 '고노 담화'에는 "위안부의 대다수가 조선(한국)인들이었다"고 적시돼 있다. 그런데 아베는 일본군이 5~20만 명의 여성을 강제 동원하거나 납치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와 일본인 10여 명을 납치한 북한의 범죄를 '등가의 국가범죄'로 치환했다.
그런 점에서 아베는 북한을 '이지메'(집단적 괴롭힘) 해서 지지율과 정치적 승리를 확보한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이다. 이런 극우세력에게는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북한'이다. 즉, 북한과 친하면 '악'(惡)이요 적이고, 북한과 싸우면 '선'(善)이요 동지다. 한국의 극우세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