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신발에 우리 제품 1그램씩 넣는 게 목표"

[창간기획-메이드 인 코리아②] '신발 성지' 부산 녹산공단 '별종' 나노텍세라믹스

등록 2014.02.23 20:57수정 2014.02.2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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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빠져나간 탓입니다. 한국 제조업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오마이뉴스>는 창간 14주년을 맞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현장과 강소기업들을 찾아갑니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한국 신발산업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부산 녹산공단입니다. 1세대 신발 공장들이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간 상태에서 기술력에 기대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고 있는 한 중소기업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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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텍의 시제품들. 가운데에 HUNTER 레인부츠를 본떠 만든 시제품이 보인다. ⓒ 김동환


19일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 2층짜리 조립식 건물 구석에 자리잡은 사장실로 들어서자 운동화·헬멧·슬리퍼·장화 등 잡다한 시제품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방 한 편에 놓인 선반 위에는 하얀색 분말이 담긴 소재 본보기 병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생소한 제품들에 시선을 두던 기자에게 방 주인이 고무 장화 한 켤레를 건넨다. 지난해 여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한 헌터(HUNTER) 레인부츠 한 짝과 이를 본 뜬 제품이다.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상표가 없는 쪽 무게가 '심하게' 가볍다. 정상옥(52) 나노텍 세라믹스 대표이사는 "우리 경량화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이 부츠가 한 짝에 1.2킬로그램(kg) 정도 나가거든요. 신발 원료에 우리 소재를 섞으면 재질은 같으면서도 무게가 3분의2 정도로 줄어듭니다."

"신기술 접목한 의료용 신발... 삼성 TV보다 부가가치 높아"

녹산공단은 부산의 전통적 제조업인 신발 산업의 흥망성쇠가 그대로 녹아있는 지역이다. 1980년대에는 세계 유명 브랜드 신발의 80%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압도적으로 인건비가 낮았던 중국과 동남아로 생산설비를 대부분 빼앗겼다.

이후 1997년 월 40달러 수준이던 중국의 제조업 인건비가 최근 500달러 가까이 급증하면서 이곳에도 재차 '기회'가 왔다. 중국으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이전하고 있는 것. 지난해 전국 신발제조업의 연평균 신장률은 5.5%. 부산지역은 7.7%를 찍었다. 신발도소매업 성적은 전년에 비해 22.2%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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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텍의 한 노동자가 생산된 장화를 최종 손질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동환


고민은 있다. 기존의 가격 경쟁 방식으로는 더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차례 쇠퇴를 겪으며 부산 신발산업계가 얻은 교훈이다. 돌아오는 기업들도 경량화 신발로 유명한 '트랙스타' 등 확실한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에 국한한다.


녹산공단에 자리잡은 신발산업진흥센터 천종기 팀장은 "발에 상처가 안 나게끔 해주는 '당뇨화'나 '무지외반증 예방 신발' 등 고부가가치 신발들이 최근 단계별로 기반을 닦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출 측면에서 보면 삼성 TV보다도 이런 신발들이 개별 생산단가 대비 이익이 크다"고 덧붙였다.

녹산 신발 기업들에서 관측되는 이런 고부가가치 바람 속에서도 나노텍은 단연 '특이종'으로 꼽힌다. 중국발 한국 기업들의 '유턴'이 가시화되기 전부터 자체 세라믹 기술을 바탕으로 신발업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가볍고, 안 미끄러지면서 통풍이 잘 되는 신발이 이 기업의 제품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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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텍 세라믹 소재 '돌가루' 생산공장. ⓒ 김동환


"안 미끄럽고 땀 안 차는 장화로 세계 제패할 것" 

나노텍은 불연(타지 않게 만드는) 첨가제 판매로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올리는 전형적인 소재 전문회사다. 이 회사가 신발에 눈을 돌린 것은 지난 2008년경. 개발자 겸 경영자인 정 대표는 "외할머니가 욕실에서 넘어져서 돌아가셨다"고 운을 뗐다.

"욕실에서 넘어져서 돌아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간단한 기술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런데 만들다보니 안 미끄러지는 게 여러 가지거든요. 물 위, 비눗물 위, 기름 위가 다 달라요. 그래서 각각 만들었죠."

그가 만든 '안 미끄러지는 신발'은 국내 외 신발 전시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네파' 등 유명 브랜드에서도 물이 많은 곳에서 신는 아쿠아슈즈 밑창에는 나노텍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자체적으로 슬리퍼·안전화·운동화 등을 만들며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 끝에 정해진 주력 상품은 엉뚱하게도 작업용 장화였다.

올해는 그가 주변의 의아함을 뒤로하고 장화 사업을 시작한 지 4년째다. 1000평 남짓한 나노텍 공장 한 편에서 독자 브랜드인 '스티코(STICO)'를 달고 생산되는 장화는 하루 700켤레. 가격은 켤레당 13달러로 60%는 내수용, 40%는 수출용이다. 들인 공에 비하면 '대박' 수준은 아니지만 정 대표는 "아직 여러가지 시도 중"이라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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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옥 (주)나노텍 세라믹스 대표이사. ⓒ 김동환


"처음 만든 장화를 사람들이 신어 보더니 '로봇 장화'라고 했어요. 뻣뻣하다는 거지. 나는 안 미끄럽고 가벼우면 대박 터질 거라고 봤는데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화의 본질이 아니었던 겁니다. 안 팔리는 제품 '땡처리'도 엄청 했어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는 "작업용 장화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니까 별로 수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세계 어디서나 쓰고 있고 고무 특성상 내구성도 낮은 편이라 재구매 주기가 짧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성능에 통기성을 향상한 제품이 곧 출시될 예정인데 땀 안 차는 고무장화가 나오면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전세계 신발에 우리 소재 1g씩 넣는 게 목표"

나노텍은 지난 2006년 일찌감치 산업부가 인정하는 부품소재 전문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공장 옆에 있는 직영 연구실만 해도 웬만한 대학 화학공학과 연구실 3~4개를 붙여놓은 규모다. 2000년 창립 이후 2010년까지는 매출의 20% 가까이를, 매출액이 급격히 늘어난 2010년 이후에는 10% 가량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사용한다.

'세라믹 전문기술을 가지고 왜 장화 생산을 선택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정 대표는 '발상의 전환'을 거론했다. 신발은 보통 제작공정이 많고 수작업 공정이 많은데 고무 장화는 기계로 '찍어내는' 개념이라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약 100억 원 매출을 올린 나노텍 직원 수는 생산직과 사무직을 포함해 60명 정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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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텍이 자체 개발한 소재를 적용한 신발들. 오른쪽은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 '스티코', 왼쪽은 기존 운동화 공정을 30% 이상 압축시킨 '부트라'와 '부치오'. ⓒ 김동환


"제조업에 '4M'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Man), 기계(Machanic), 재료(Mearteureal), 제조법(Method). 남들이랑 똑같은 기계, 같은 재료·작업법으로 물건을 만들면 결국 인건비 낮은 곳이 이기죠. 한국은 인건비가 높은 편이니까 다른 쪽에 변화를 줘야 장사가 됩니다."

그는 "남들과 차별화되는 장화를 만들면서 고도의 자동화를 도입할 수 있다면 굳이 중국, 베트남 등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 가서 신발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화를 팔다보면 신소재 홍보도 되고 시너지 효과가 있다"면서 "전세계 신발에 우리 소재를 1g씩 넣는 게 장기 목표"라고 덧붙였다.

장화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적의 품목이라는 것이다. 해외 유명 기업들에게 신발 관련 OEM 생산도 숱하게 제의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자기 이야기가 없는 기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그는 최근 언론을 중심으로 부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부산 신발산업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우려를 전했다.  

"영세 신발제조 업체들이 대부분 OEM에 익숙해요.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주문을 주면 기가 막히게 만들지만 주문이 없잖아요. OEM은 납품가가 싸다는 것 말고는 경쟁력이 없어요. 이들이 자기 분야를 찾고 브랜드를 만들어 갈 때까지 공익적인 영역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상옥 #나노텍 #메이드인코리아 #부산 신발산업 #녹산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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