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박점식 회장
박점식
평소 '호랑이 어머니'였지만 자상함만은 어느 어머니 못지않았다. 아들이 제기차기에 한창 재미 붙일 때 엽전이랑 습자지를 구해서 제기를 만들어주었고, 대보름 쥐불놀이에 사용할 깡통이나 잡목 같은 것도 손수 구해주었다. 연 만들기에 들인 정성은 가히 압권이다. 흑산도에서 어렵사리 참대를 구해 와서는 일부러 풀을 쑤고 연 종이를 오리고 스웨터를 풀어 연실을 장만하였다. 그리고는 목수에게 특별히 얼레를 부탁했다. 연싸움에서 이기라고 유리를 빻고 물을 쑤어서 일일이 연실에 먹여주었다. 아들의 연은 동네에서 가장 멋졌다.
2011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들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얘기가 가슴에 사무쳤다. 어머니가 생전에 그토록 경원시했던 흑산도. 어머니로서는 차마 잊을 수도, 한편으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애증의 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아들에게 흑산도는 '추억의 땅'이기도 했다. 아들은 흑산도에 있는 각 동네 노인회관에 필요한 전자제품들을 구입해 보내주었다. 어머니와 자신을 품어 안아준 데 대한 고마움을 담아서.
박 회장은 평소 사람들한테서 '쌀쌀맞아 보인다', '날카로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일전에 필자가 만나 본 박 회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담한 체구에 말수가 적고 자애로운 인상을 주었다. '감사'가 몸에 밴 때문일까? '감사를 매일 5개 이상씩 3주일을 쓰면 내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3개월을 쓰면 남이 내가 변화하는 것을 알게 된다'. 박 회장은 2010년부터 '감사나눔운동'에 동참해 왔다. 개인은 물론이요, 이를 회사에도 적용해 '감사경영'을 도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감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진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또 주변에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같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그런 마음에서 가족은 물론이요, 부하직원, 고객,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감사편지를 써서 건넸고 그들로부터 감동적인 반응을 얻었다.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행복하다'는 말을 저절로 공감하게 됐다. 지금 박 회장은 '감사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전도사가 됐다.
박 회장은 세무사로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리고 있다. 세무 전문지인 <조세일보>는 2010년 박 회장을 '명품세무사'로 선정했다. 세무사나 기업 회계담당자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현대식 회계프로그램을 처음 개발하고 컨설팅 지사를 설립하는 등 업계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여기에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나눔 실천에도 앞장서온 점도 감안됐다. 박 회장은 어린이 재단, 푸르메재단, 평화복지재단 등 10여 군데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으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이기도 하다.
포스코 ICT 사장 시절 박 회장처럼 '감사경영'을 실천했던 허남석 포스코경영연구소 감사경영추진반 사장은 박 회장이 펴낸 <어머니> 책 추천사에서 이렇게 썼다.
"지은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는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얼굴이 밝아진다. 1000 감사를 쓰는 동안에는 어머니가 등 뒤에서 안아주시는 듯한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행복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가슴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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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감사'로 쓴 한 기업인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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