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써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서평]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고

등록 2014.02.28 11:09수정 2014.02.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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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뭘 해보겠다고 간절히 원하면 꼭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이 그랬다.
서점에 책이 깔리기 전부터 주문해보겠다고 나대다가 결국은 책이 나오고 한 참(?) 뒤에야 손에 넣었다. 체감상으로는 구하기 힘들었던 절판본 <최순우 전집>을 3년만에 구했던 쾌감과 비슷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의 글쓰기> 책장을 펼칠려니 대략 1시간 30분을 운전해서 대구의 병원으로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한 날이다. 평소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사무실을 떠나면서 이 책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병실로 올라가기 전에 한 참을 고민했다. 이 책을 들고 병실에서 읽을까? 말까? 결론은 아무리 책이 궁금해도 병석에 누워계신 노모 앞에서 한가하게 책을 들칠 수 는 없었다. 병원에 갔으면 어머니의 얼굴을 봐야지 책을 보아서는 안된다.


어머니를 뵙고 집에 돌아와 최근 딸아이와 공유하는 몇 안되는 즐거움인 "별그대"를 일찌감치 사양하고 아내가 '동굴'이라고 부르는 나의 서재에 쳐 박혀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이 '글쓰기 교육'에 관한 책이다라고 강조하지만 적어도 나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글쓰기'책이라니까 궁금했고 읽고 싶었다.

의도가 불순해서인지(?) 책을 다 읽었는데 두 분의 대통령님의 전기를 읽었는지, 글쓰기 공부를 했는지 모르겠다. 확연히 한 사람의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생의 행로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말과 글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겠는가? 인격이 바른 사람은 바르고 솔직한 글을 쓰지 진실을 호도하는 얄궂은 글을 쓰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나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다.

단 한번도 만나 본적이 없는 필자가 몇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어려운 '글 부탁'을 드렸을 때 강원국 선생의 대답은 '하겠습니다'였다. 단촐하지만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될 만큼 고마운 대답이었다. 필자가 비슷한 부탁을 받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하겠다. "제게 그런 제의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제가 그럴만한 능력이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겸손을 차린 표현이지만 부탁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췌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것이지, 거절하겠다는 말인지' 헛갈린다.

이 책은 이런 애매모호한 글쓰기를 분명 경계한다. 그러니까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8년간의 연설 비서관 생활과 글쓰기 훈련을 통해서 명료하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가 체득이 된 셈이다. 단 다섯글자로 사람을 감동시키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헛갈리게 만들지 않고, 솔직하여 오히려 공감을 얻는 글쓰기를 가르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글쓰기의 각론을 모두 한꺼번에 익히지는 못한다. 언제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어서 끝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지 서둘러서는 안 된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가 그러했듯이.


우선 급한데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몇가지만 추려본다. 우선 두 분의 대통령님은 훌륭한 문장가이전에 열정적인 독서가였다는 것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남기신 소장 도서로 도서관을 건립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유서에서 조차 '책을 읽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셨다. 많은 독서량이 꼭 좋은 문장가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명 문장가는 독서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메모와 연습도 글쓰기의 중요한 기초공사다. 메모는 창의적이고 번듯이는 아이디어를 영원히 나의 것으로 만든다. 좋은 문장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 밤 중에 잠을 자다가 깨어나서,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해야 한다. 간단한 메모라도 나중에 보면 메모를 할 당시의 배경 지식이 떠오르고 살을 덧붙이게 된다. 결국 메모는 하늘에 떠다니는 각양 각색의 구름을 자기 품안에 붙잡아 두는 행위다. 연습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이 책의 저자도 한 때 글쓰기 울렁증이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연습의 힘은 그토록 위대하다.

자료는 글쓰기라는 집 짓기에서 다양한 건축자재라고 본다. 단조롭고 빈약한 건축자재는 밋밋하고 허술한 집을 짓게 하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건축자재는 독창적이고 튼튼한 집을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표시를 하기 위해 접어 둔 페이지가 포털사이트에서 자기가 원하는 글쓰기 재료를 찾는 방법을 알려준 부분이다. 모호하고 일반적인 글쓰기 가르킴보다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글쓰기 팁인가? 당연하지만 이 책을 덮자 마자 이 요령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알려주는대로 몇 번 해보았는데 과연 필자가 원하는 정보가 넘친다.

자료가 풍부하면 마치 호텔뷔페를 즐기는 것과 같다. 많은 음식중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놈만 골라서 즐기면 된다.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빈약한 자료는 허기진 사람이 라면을 끓여 먹는 것과 같다. 라면만으로는 아쉬워 계란을 풀고, 파를 넣어보지만 라면은 라면일 뿐이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이 글을 쓰는 사람은 자료를 모아야 한다.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글과 말이 곧 자기 자신이기를 원했던, 진솔한 말과 글로 대중과 소통하려 했던, 낱말 하나 하나에 자신의 온 진심을 담았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유산이라고.
덧붙이는 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전)기업인) / 메디치미디어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4


#강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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