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취임 1주년 때 유난히 말 더듬은 이유는?

[청와대 일기 ⑬] 집권 2년차 시험대 오른 '만기친람' 리더십

등록 2014.03.01 19:42수정 2014.03.0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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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입하는 정치팀 이승훈 기자가 기사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청와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인 지난 2월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인 지난 2월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청와대

보통 대통령의 공식 연설이나 담화문 발표 등은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칩니다. 국정운영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중요한 담화문 발표의 경우 이를 준비하는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실은 귀가를 포기하고 며칠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가 정치와 경제는 물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25일 취임 1주년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 발표는 뭔가 어색했습니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것처럼 담화문의 내용은 대통령의 입에서 헛돌았습니다. 당시 생중계를 직접 본 분들은 눈치챘을 겁니다. 박 대통령은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여러 번 말을 더듬고, 맥락상 핵심적인 부분에서 잘못 표현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규제 혁파'를 '규제 확대'로... 계속된 박 대통령의 실수

공공부문 민영화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민간참여가 가능한 공공서비스 분야는 전국적으로 민간에게 개방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요. '적극적'이라고 해야 할 대목을 '전국적'으로 잘못 읽은 겁니다. 실수를 깨달은 박 대통령은 다시 "적극적으로 민간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고쳐 말했습니다.

또 '경제를 혁신하는 과정에서'라고 해야 할 것을 "경제를 확산하는"이라고 잘못 말했는가하면 '규제를 혁파해 나갈 것'이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는 "규제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정반대로 말했습니다. 평소 박 대통령이 규제 폐지를 강조해왔고, 문맥상 잘못 말했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밖에 '청약자격'을 "청약가격"으로 잘못 말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졌습니다.

보통의 대통령 담화문 준비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실수라고 넘어가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 구상을 밝힌 것은 신년 기자회견 때였습니다. 두 달 가까운 준비 기간 동안 기획재정부는 물론 관계 부처와 청와대의 끊임없는 수정 보완 작업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담화문 발표는 낙제점에 가까웠습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담화 발표를 끝낸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을 떠난 후 "대통령이 경제 혁신을 경제 확산이라고 잘못 말했다"며 혁신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했는데요.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가 생중계였다는 점을 잠시 잊었던 모양입니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지만... 체면 구긴 현오석


뭐가 문제였을까요.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담화문의 최종본이 나온 것은 오전 9시45분이었다고 합니다. 생방송을 15분 남기고 국민 앞에 제시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확정된 겁니다. 15분 전까지 박 대통령의 원고 수정은 계속 됐습니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같은 수정 작업은 분명 정상이 아닙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기획재정부) 초안을 기재부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머리를 맞대서 만들면 대통령께서 그것을 보고 수차례 첨삭 과정을 거치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울 것이 없는 기획재정부 초안에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담화문과 기재부가 배포한 세부 실행 계획 내용이 여러 부분 어긋난 것은 사실입니다. '공을 많이 들였다'고 포장된 청와대와 기재부의 조율 과정의 실재가 어땠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오석 소외론'에 이어 '현오석 부총리 교체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물론 청와대는 손사래를 쳤는데요. 그럼에도 청와대의 수습 노력은 담화문 조율 과정 못지않게 혼선을 빚었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승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처가 마련한 발표안이 언론에 미리 배포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분석과 억측들이 나오는 것 같다"며 청와대와 기재부의 갈등설을 부인했는데요. 이 해명대로라면 기재부는 대통령에게 보고되지도 않고 재가도 받지 않은 안을 미리 언론에 공개했고 대통령의 의중을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이라면 현오석 부총리가 앞으로 경제팀 수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담화문 발표는 했지만... 유명무실해진 책임장관·책임총리제

체면을 구긴 것은 기재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 내용 가운데 크게 주목 받은 부분 중 하나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사전에 이같은 내용이 담화문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통일부의 분위기를 전해들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통일준비위와 헌법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 역할 분담, 통일부 기능 축소 문제 등을 캐물었지만 속시원한 답변은 없었습니다. 민경욱 대변인은 "앞으로 구체적인 안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대답만 되풀이 했습니다. 대통령이 통일준비위를 만들겠다고 전 국민 앞에 공표했는데 정작 그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던 겁니다.

이쯤 되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담화문 발표는 대통령 혼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의 실행은 다른 문제입니다. 대통령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신뢰하는 관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역대 정부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아닌가요.

몸이 무거운 관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장관, 총리의 말과 행동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와 이후 수습 과정은 박근혜 정부가 공언한 책임 총리제와 책임 장관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안그래도 심했던 청와대 눈치보기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시선이 청와대에 집중될  수록 원래 내각이 분담해야 할 책임까지도 박 대통령이 직접 감당해야 할 가능성은 커집니다. 모든 일을 직접 챙긴다는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 집권 2년차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박근혜 #현오석 #만기친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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