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어진
강화역사문화연구소
철종은 순조 재위 31년인 1831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왕손은 벼슬길에 나설 수 없었으니 공부에 매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 소양을 갖추는 교육은 받았다. 왕이 된 후에 사가(私家)에 있을 때의 교육 정도를 묻는 질문에 '소학'까지 배웠다고 철종은 말한다. 그럼에도 마치 철종이 일자무식인 것처럼 시중에는 알려져 있다.
또 강화도에서 태어난 것처럼 오해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철종이 강화에서 산 기간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는다. 14살에 강화로 와서 19살에 왕이 되어 도성으로 돌아갔으니 철종의 강화도살이는 5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가 살았던 집을 '생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생가란 태어나서 자란 곳을 뜻하는 말일 것이니 철종이 살았던 '용흥궁'은 생가가 아니다. 그곳은 그의 아버지가 유배를 와서 살았던 집이었으며 아버지와 큰 형님이 역모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고 난 뒤 철종, 곧 원범과 그의 작은 형이 와서 살았던 곳일 뿐이다.
강화도령은 뒷배경이 없었다사람들은 '강화도령'이란 별칭으로 철종을 불렀다. 곧 '강화도 총각'이니 이 얼마나 친근한 표현인가. 철종은 태생부터 우리네와 다른 별천지의 사람이 아니라 강화도에 살던 보통 총각이었으니 마치 이웃사람이라도 되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그가 왕이 되었으니 사람들은 일종의 친근한 마음에 또 경이감까지 담아서 강화도령이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강화도령'은 또 다른 의미로도 쓰였을 것 같다. 권력을 잡고 있던 세도가들은 한갓 보잘 것 없는 시골뜨기가 자신들의 왕이 된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철종의 출생 배경을 낮춰 '강화도령'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숙이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아니꼽고 더럽지만 어쩔 수 없이 숙여 들어가야 할 때 우리는 속으로 상대를 비꼬면서 자신을 합리화 한다. 철종 시대의 세도가들 역시 비슷했을 것 같다. 물론 절대왕정 시대이니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놓고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비아냥대면서 '강화도령'이라고 낮춰 부르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