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놀고, 집안일에 저녁밥까지... 쉽지 않네

[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①] 휴직 첫날, 저녁 요리까지 도전

등록 2014.03.06 15:15수정 2014.03.0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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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달려온 사회생활, 문득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2014년, 감사하게도 휴직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육아휴직.


2014년 3월 4일.

아내가 출근해 딸과 둘이 지냈다. 말 그대로 아내는 가족을 위해(?) 돈 벌러 가고,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했다. 오전에는 아이와 놀았다. 아이를 위해 목마를 태워주고, 잡기 놀이를 하고 술래잡기를 했다.  

"아빠! 또 뭐하고 놀지 생각하자."

딸과 둘이 노니 사실 힘들었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오냐. 시연아 또 뭐하고 노꼬."


딸과 나는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일하고 온 사람이 집 청소에 저녁밥까지 차리는 건 너무 힘들 거야. 그래 우리가 하자!' 이때부터 우리 부녀의 미션이 시작되었다.

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밀대를 밀었다. 나는 방과 거실 바닥을 청소했다. 또, 세탁기를 작동하고 빨래를 걷어서 접어두었다. 설거지와 부엌·식탁 정리,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분리수거 등을 했다. 집안일을 모두 끝내니 오후 5시. 딸과 난 신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제, 엄마 오면 좋아할거야."
"네. 아빠! 오늘 엄마 신나겠다. 야호~."

뿌듯했다. 내친김에 저녁 요리까지 하기로 했다. 요리는 처음해보는 지라 도움이 필요했고, 딸이 좋아하는 계란찜과 달짝지근한 두루치기를 주메뉴로 선정했다. 두루치기 레시피가 필요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장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하필, 장모님께서 전화를 안 받으셔서 큰 처형과 통화를 했다. 큰 처형은 크게 웃으면서 기특하다며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이제 요리 시작!

"시연아! 아빠 요리할 동안 심심하지? 자! 앵그리버드 한 판 해"
"이~ 야호! 아빠 최고!!"

딸은 아빠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ㅠㅠ) 왠지 슬픔이... 처형의 가르침 대로 냉장고를 열어 관련 재료들을 모두 꺼냈다. 고추장, 고춧가루, 멸치, 파, 삼겹살, 계란 3개, 버섯, 소금, 설탕, 신 김치, 맛술이 없어서 와인, 마늘 다진 것 등등. 재료들을 다 꺼내 놓으니 어마어마했다.

우선, 투명한 비닐 손 장갑을 끼고 삼겹살과 고추장, 고춧가루, 와인을 붓고 막 무쳤다. 삼겹살도 냉동으로 굳은 상태였고, 마늘 다진 것도 냉동 상태여서 손가락이 너무 시렸다. '으 ... 그래도 참자,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고 오는 아내를 위해!' 삼겹살을 양념에 '팍팍' 무쳤고, 뚝배기에 물을 붓고 멸치 몇 마리와 버섯을 넣고 끓였다. 계란찜을 만들기 위한 육수다. 곧, 뚝배기의 육수가 끓었고 건더기들을 건져냈다. 계란 3개를 깨고 숟가락으로 섞어서 소금을 넣었다. 뚝배기에 계란을 원의 형태로 조심스레 부었다.

곧 프라이팬에 불을 붙였다. 프라이팬에 양념 장한 고기를 붓고 볶기 시작했다. 정말, 일이 많았다. 단, 두 가지의 요리만 했을 뿐이었는데 요리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참! 요리하기 전에 쌀을 씻어서 안쳤음을 고한다. 왠지 밥 되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릴 것 같아서였다. '딩동딩동!' 헉, 예상보다 30분이나 일찍 벨이 울렸고, 아내가 왔다.

"어머! 여보 뭐하는 거야? 밥을 한 거야?"
"뭐, 그냥 해봤지. 있다가 함 무 봐라!"

이게 바로 경상도 사나이의 반응. 아내는 계속 웃었다. 웃으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쪼금만 기다리라. 곧 다 된다.!"

이렇게 고생한 끝에 요리가 완성되었다. 저녁상을 차렸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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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두루치기와 계란찜. ⓒ 김용만


"시연아! 맛있지?"
"아니, 엄마께 더 맛있어."
"솔직히 말해줘. 아빠 것도 맛있지?"
"응, 사실 먹을 만해."
"우리 여보, 매우 고맙네. 맛도 너무 좋아. 고마워 여보^^"

그래도 힘 나는 건 아내의 격려뿐이다. 오늘 새삼 깨달았다. 요리는 참 힘들구나. 하지만 요리는 참 재미있구나. 내일부터는 또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려 한다. 비록 육아휴직이지만, 내가 휴직할 때만이라도 아내가 가사 일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내가 조금 힘드니 온 가족이 행복하다. '아무래도 난 여자인 것 같다.' (^-^)
#육아휴직 #계란찜 #두루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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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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