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대통령인데...왜 이모양인가

[보좌관 일기] 국민 51% 여성인데 여성의원은 15.7%...좀 바꾸자

등록 2014.03.08 09:50수정 2014.03.0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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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혐의로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난 윤창중씨(왼쪽)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오른쪽). ⓒ 권우성


복합적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급 자체가 소수자를 자처하는 것 아닌가 망설여진다. 이제 주류인 척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점점 갈등이 싫어진다. 따지고 들면 내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려면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하는데 늘 완전군장 상태일 수는 없지 않나. 어지간하면 웃음으로 넘어가는 게 인생 무난히 사는 방법이라는 걸 알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가능하면 젊을 때처럼 사사건건 덤비지 말고 둥글게 살자 다짐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착하고 순하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며 살아가려는데, 아, 세상이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추문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송년회에서 기자를 성추행 했다는 이진한 검사는 경징계를 받았단다. "자녀 한 사람 갖고 계신 분 반성하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나, 공군사관학교 수석졸업 여생도 재심의 사건을 접하면 단단하고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김행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라니

이 와중에 신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으로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임명되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관련 활동이나 여성정책 및 성평등, 성인지 교육 등과 관련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논평하였다. 또,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를 변론한 유영하 변호사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임명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도대체 화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그렇다. 부처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무리한 인사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주변의 우려에도 인사를 강행하였고, '여성'장관이라 더 많은 욕을 먹으면서 사퇴하였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제외하면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여성장관이었던 그가 만시지탄의 대상이 되는 걸 보고 있자니 부글부글 화가 났다. 내 속이 끓든 말든 정부는 자기 식대로 일한다.

지난 2월 24일 여성가족부는 이른바 '유리천장을 깬 여성1호 12인'과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경제·법조·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의 대표적 여성 리더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다들 대단한 분들이다. "여성이 지속적으로 일하고 고위직까지 진출하기 위해서는 육아 부담을 완화하고 경력유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지원이 중요하다"며 "출산여성인력지원 시스템 마련, 직장 내 보육시설 확대, 중소기업을 위한 공동어린이집 구축,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지속 확대, 여성인재 양성 및 여성 대표성 제고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니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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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에서 유영하 새누리당 후보를 지원유세했던 박근혜 대통령. ⓒ 유영하 블로그


이 분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여성 1호들의 시대 개척 정신과 공로에도, 그것이 대다수 여성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 여성가족부는 어떤 마음으로 이 행사를 기획하였을까? 이날은 대통령 취임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우리는 지금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최고 통치권자로 여성이 선출되었으니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유리천장'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길 조금은 바랐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그 이름에 걸맞은 통치를 하지 않았다.

유리천장을 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천장까지 올라갈 사다리가 걷어차여진 상황이다. 보이지 않는 천장보다 눈앞에 놓인 벽이 더 큰 문제다. 게다가 바닥에 서 있는 사람에겐 바닥의 균열이 제일 무섭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산다.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동반 자살했다. '집세와 공과금'과 함께 남긴 그들의 마지막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잔인할 것인가. 얼마나 더 비인간적이 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의 삶과 무관한 여성대통령이 될 것이다.

'영웅 1호'보다 민주주의가 중요

우리는 지금까지 여성문제에 있어서 여론이 집중되면 반짝 대책을 쏟아내다 관심이 사그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근본적 문제와 무관한 임시방편으로 대응하거나 그럴듯한 포장으로 눈가림을 하기도 한다.

여성 의제가 지속적, 전문적, 종합적으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것은 여성이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 1호'가 아니라 여성의 시민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있는 정치적 구조다. 결국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다.

얼마 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제고를 위한 과제(김영일, 이정진, 조주은)>라는 의미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관련 기사 보기)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해외선진국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1%지만, 여성 정치인은 전체 국회의원의 15.7%, 광역자치단체장 0%, 기초자치단체장 2.6%, 광역의회 의원 14.8%, 기초의회 의원 21.6%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은 16대까지 5% 내외였다가 17대에 13%대로 갑자기 뛰어올랐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비례제 여성 할당 50%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므로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의석에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비례대표제가 다수대표제에 비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높다고 한다. 비례제를 택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인 스웨덴의 경우 여성의원 비율이 44.7% 이른다. 여성의원 비율이 높은 상위 20개 국가 가운데 13개국이 비례제를, 6개국이 비례제와 다수제가 혼합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혼합제를 택하고 있다. 19대 국회는 전체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이 15.7%인데 비례대표의 경우 54명 중 28명, 52%가 여성 의원이다. 지방의원은 비례대표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아 광역의회는 71%, 기초의회는 91%가 여성의원이다. 다만, 전체 의석 가운데 비례대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국회의원은 18%(300명 중 54명), 광역의원은 13%(2030명 중 266명), 기초의원은 13.5%(6735명 중 912명)에 불과하다. 비례의석 증가는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하는 검증된 경로다.

보고서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여성의원 비율 증대와 함께 여성할당 규정의 법·제도적 실효성 확보, 여성명부제와 같은 다양한 방식의 여성할당제도의 도입, 헌법 개정을 통한 남녀 대표성의 평등조항 명기를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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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성추행한 이진한 검사는 경징계 처분을 받았다. (자료사진) ⓒ 이희훈


권력 투쟁은 냉혹하다. 공천을 둘러싼 과정은 신사적이지 않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확대는 반드시 법과 제도를 통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참 좋아한다"며 기자를 더듬은 검사에게 경미한 징계를 하는 사회적 환경은 강제 규정 없이 변하기 어렵다. 성폭력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데, 어디 폭력이 교양만으로 근절되던가. 법과 제도는 그래서 필요하며, 입법부에는 이를 만들고 통제할 책임과 권력이 있다.

국민 51%가 여성인데, 국회의원 비율은

여성은 더 많이 정치적으로 진출해야 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여성의 정치적 진출이 보장되어야 한다. 동등한 시민권 획득, 그것이 민주주의다. 프랑스 혁명을 기뻐하며 옹호했으나 혁명이 내건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여성권선언문>을 발표했고, 이로 인하여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는 말을 남겼다. 여성의 정치적 진출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보편성에 근거한 당연한 권리다.

그럼에도 흔쾌하진 않다. 여성 정치인의 확대가 과연 여성 문제 해결에 기여할까? 또 다른 '여성 1호'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만약 여성 정치인 개인의 대표성을 신뢰할 수 없다면 신뢰의 근거를 정당에서 찾았으면 한다.

2004년 10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며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정당 역사상 최초로 지역구 여성공천 30% 의무할당제를 당헌에 명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8대 총선 당시 후보자를 낸 지역구의 44.7%를 여성으로 공천하였다. 19대 총선에서는 진보정당 지역구 여성 출마자가 적어 여성공천 비율은 13.7%에 머물렀지만, 다른 정당에 비해 높은 비율이었다. 다른 정당 지역구 여성 공천은 10% 이하에 머물러 있다.

진보정당은 주요 당직과 선출직에 여성당원 30% 이상을 할당하는 규정도 최초로 의무화하였으며 '성평등 교육'도 당규로 의무화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진보정당은 여성들의 정치적 대표성 획득을 위해 최선두에서 노력했다.

정치에서 배제된 시민권자들을 지지기반으로 했던 진보정당의 존재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정당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정치가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 부족한 신뢰는 함께 만들어가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정의당 박원석 의원 보좌진입니다.
#이진한 #여성정치인 #성폭력 #여성의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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