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됫박쌀 팔아 먹으면서도 신용은 꼭 지켰죠"

충남 내륙권 유일 제재소 '동림제재소'

등록 2014.03.10 14:59수정 2014.03.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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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 장선애


장수하는 업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업주의 검소와 성실, 그 밖에도 저마다 성공 비결이 있지만 이 두 가지 특성은 예외 없이 나타난다.


43년을 이어오는 군내 유일 아니, 충남 내륙권 유일의 제재소인 '동림제재소'는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살림집 입구 한쪽에 있는 사무실 집기는 칠이 벗겨진 철제책상과 의자, 손님용 긴 간이의자가 전부다. 그리고 김종군(73) 대표가 학창시절부터 썼다는 나무 책꽂이가 50년 넘은 세월을 간직한 채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있다.

"멀쩡한디 쓰야지, 왜 바꿔?"

김 대표와 함께 동림제재소를 키워온 부인 전순자(71)씨가 딱부러지게 말한다.

동림제재소는 오전 4시면 문을 연다.


"살림집이 같이 있으니 좋아. 특별히 문을 연다기 보다 잠에서 깨면 그때부터 누가 일을 보러와도 맞을 수 있으니…. 토요일·일요일에도 마찬가지고."

부부는 등산화처럼 생긴 작업화를 똑같이 신고 있다. 언제든 작업장에 드나들어야 하니, 일흔 넘은 나이에도 작업화를 벗지 못한다.


"옛날에는 거먹고무신 두 켤레면 1년 났지. 지금은 좋아진 거여."

사무실에 따로 직원을 둔 적은 한 번도 없다. 전씨는 창업이래 지금까지 경리일을 모두 맡아 하면서도 오전 오후 현장 직원들의 새참과 점심밥을 직접 챙긴다.

"사먹는 밥은 배고퍼서 못 먹어. 먹는 거 하나는 내가 신경썼지."

이곳 직원들은 모두 20~30년 장기 근속자라고 한다.

직원들도 장기 근속

a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 장선애

현재 충남 예산군 오가면 원평리 2000여 평 부지에 원목창고·합판창고·가설재창고를 갖추고 있는 동림재제소, 그 시작은 어땠을까.

"맨손으로 여기 논 살 때는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쓰레기를 매립하고 돋운 곳에 제재소를 차리니까 '그게 되겠냐'며 혀를 찼죠."

김 대표 부부는 때마침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대산건설이라는 굴지의 회사 덕분에 번창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70년대 초반엔 다들 초가지붕 개량하느라 미루나무 베어서 산더미처럼 싣고들 왔어. 자고 일어나면 집앞에 마차가 줄 서 있곤 했는데. 그럼 돼지고기로 안주 만들고 술 한통 받아다 먹이는 게 일이었지."

"대산건설이 진짜 잘 나갔잖아요. 청와대 공사도 하고, 대전 판암아파트며 큰 도시에 일이 많았을 때 저희도 같이 컸어요. 주야간으로 풀가동해야 할 정도로 주문이 밀렸죠. 여러모로 운때가 잘 맞았어요"

a  제재소 안에서 지금은 거의 사라진 톱밥난로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제재소 안에서 지금은 거의 사라진 톱밥난로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 장선애

하지만, 사업이 어디 운으로만 될 일인가.

"말쌀도 못팔아 됫박쌀 팔아먹을 정도로 가진 게 없었던" 초창기에도 '신용'만큼은 철칙으로 지켰다.

어음이나 당좌는 절대 쓰지 않고, 대금결제는 반드시 현금으로 물건을 받는 즉시 처리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으로 이쪽 업계에서는 동림제재소 하면 '신용'을 떠올릴 정도라고 한다.

일찍부터 나무외에 부대종목으로 공사용가설재 임대사업을 키운 것도 하향세를 버틴 원동력이 됐다. 지금은 군내에 경쟁업체들이 여럿 있지만, 30여 년 전 건축현장에서 쓰이는 가설재 임대사업을 우리지역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동림제재소다.

건축가설재 임대도 최초

한때 예산읍에만 다섯 곳, 면소재지마다 한 곳씩 있던 제재소가 하향세로 돌아선 것은 목재수요가 철골로 바뀐 20여 년 전 부터다.

지금은 인천과 군산 같은 항구도시가 아닌, 내륙지방에서 제재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됐다.

a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거대한 원목이 수북이 쌓여있는 위로 오래 전부터 걸려있던 동림제재소 간판이 보인다. ⓒ 장선애


a  사람 서넛이 들어서면 꽉차는 좁은 사무실에 오래된 사무집기, 각종 열쇠들과 돋보기, 볼펜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저마다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소모품이 아니라, 제재소의 역사를 함께 일궈온 주인의 모습이어서 초라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사람 서넛이 들어서면 꽉차는 좁은 사무실에 오래된 사무집기, 각종 열쇠들과 돋보기, 볼펜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저마다 정돈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소모품이 아니라, 제재소의 역사를 함께 일궈온 주인의 모습이어서 초라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 장선애


"인근 아산, 서산, 홍성 등지에는 한 곳도 안남았어요. 얼마 전에는 소금창고 지을 나무를 켜러 태안에서도 왔더라고요. 기성목재가 안나와 수소문했더니 예산에 가면 있다고 해서 왔다면서…."

이른바 사양산업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의외의 곳에서 수요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제재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목조주택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시 맥이 도는 게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한다. 톱밥이 필요한 축사와 돈사, 나무보일러를 사용하는 농가들에도 가까이 제재소의 존재는 소중하다.

"우리는 어려운 때 태어나 절약과 검소가 몸에 밴 사람들이에요. 너무 힘드니까 앞만 보고 살아서 다른 건 몰라요. 다들 이제 편히 놀라고 하는데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놀면 재미있나요? 무슨 꿈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도 건강한 것에 감사하면서 지금까지처럼 동림제재소를 지켜갈 겁니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동림제재소 #제재소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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