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을 이리 괄시하다니...타이어 먹고 살 건가?

[주장] '한-캐나다 FTA' 타결을 바라보는 한 농민의 시각

등록 2014.03.14 21:21수정 2014.03.14 21:21
18
원고료로 응원

2012년 2월 함안가축시장 풍경 ⓒ 윤성효


"내가 낸 세금으로 '미국쇠고기 많이 드세요' 신문광고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뭘. 새삼스럽지도 않어."

지난 11일, 한-캐나다 FTA 협상이 타결되었단다. 고추밭 지주대를 뽑으면서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국정원 작품인가 싶었다. 국가간 무역협정 타결 소식이 꼭 '간첩 일망타진' 뉴스처럼 뜬금없고 난데없었다. 언제 협상을 하긴 했어?

그런데 "... 타결되었습니다"를 끝으로 다른 뉴스로 휙 넘어간다. 아니 그러니까 어떤 내용으로 협상이 타결되었는지를 알려달라고. 내용은 알려주지 않고 타결되었단 소식만 마지못해 알려준 걸로 봐서는 내용이야 안 봐도 알만한 일이네. 요즘 방송 꼬락서니 하고는.

인터넷으로 찾아본 타결 내용은 역시나. 자동차 한 대 더 팔자고 소 시장 내주자네. 허 참. 허허 참. 도민준과 천송이의 러브스토리가 몽땅 꿈이었대도 이것보다는 덜 진부하겠다. 어쩌면 이렇게 진부하고 고루하고 천편일률이람. 창조경제는 뒀다 국 끓여 먹겠네.

한-칠레, 한-미, 한-EU, 한-호주 그간 타결된 모든 FTA의 내용은 딱 하나다. '농업 시장을 내줄 테니 자동차와 휴대폰 시장을 다오.' 그렇게 내주고도 아직 내줄 농업 시장이 남아 있었어? 협상 테이블에 내가 앉았어도 별 문제는 없었겠네. 여태의 협상내용을 '복사하기',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걸 뭘. 영어를 못하잖냐고? 광우병 사태 때 보니 구글 번역기를 돌려도 그것보단 낫겠더만.

한우만 20년 키운 형님, FTA 타결 소식에 심드렁

심드렁하기는 한우만 20년 키운 동네 형님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새삼스러울 게 뭐 있어. 캐나다나 미국이나 호주나 물 건너오기는 매 일반이지. 미국 쇠고기에 단풍 스티커 한 장 붙여 들여온다 생각하면 되지 뭐."
"시장 점유율 높이려고 호주 쇠고기보다 싸게 팔 거라던데요?"
"까짓것 망하기 밖에 더해. 정부에서도 망해라 망해라 '폐업지원금'까지 주는 마당에. '따거'들 아니었으면 진작 망했어."

중국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면서 세계 저등급 쇠고기의 블랙홀이 되고 있단다. 수입 쇠고기 가격이 돼지고기 수준까지 내려가지 않는 것은 오로지 중국에서 엄청나게 '드시는' 덕분. '폐업지원금'은 이런 쇠고기 시장의 환경변화에 버티지 못하고 경쟁력을 잃은 축산업자가 폐업을 하는 경우 정부에서 주는 '폐업보상금'을 일컫는 말. 그런데 형님은 '폐업보상'이 아니라 '폐업지원'이라신다. 담배를 꺼내 물고 하시는 말씀인즉.

정부가 말하는 국내 축산업의 경쟁력은 품질도 아니고 유통구조 개선도 아니고 마케팅도 아닌 '규모'다. 규모는 곧 자본. 닭의 사례가 있다. 집집마다 서너 마리씩, 많으면 열댓마리씩 기르던 닭은 이제 농가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하림과 마니커의 닭 뿐. 돼지도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고 소도 곧 사라질 것이다.

'번식노동, 비육자본'이란 말이 있다. 송아지 생산을 주로 하는 축산농가에선 노동력이 필요하고 그 송아지를 사들여 살 찌운 후 고기소로 출하하는 축산농가에선 자본이 필요하다는 이 단순한 업계용어는 '비육불패' 네 글자로 수렴된다. 소값 파동이 반복될 때면 가장 먼저 송아지값이 떨어지는데 노동력을 밑천으로 송아지를 생산하는 축산농가는 대부분 영세하므로 당연히 파산. 비육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축산농가는 이때 싸진 송아지를 사들여 파동이 지난 뒤에 출하하므로 이익 급증. 결론적으로 자본이 영세 축산농에게 피해를 전가시키면서 더 큰 자본 축적.

쇠고기 등급판정 의무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뿐

a

전국에서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김선동 의원이 지난해 11월 2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쌀 목표가격 23만원 보장과 한중FTA 저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결국 정부가 말하는 규모의 경쟁력이란 영세 축산농의 피해가 크면 클수록 더 커지는 것이니 만큼 정부입장에선 폐업을 '지원'하고 '후원'하고 '응원'해야지. '보상'이 아니라. 끊었던 담배를 형님더러 달랠 뻔했다. 수의사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캐나다 FTA 타결이 소를 전문으로 하는 수의사의 밥벌이에 미치는 영향은?"
"구제역만 하겠냐. 망할 농가들은 진작 다 망했는데. 왜? 캐나다 소에 우황 들었대?"

역시나 시큰둥한 반응. 아니, 그래도 저나 나나 FTA의 직접적인 피해 국민인데.

"국내 동물의료시장도 개방하라고 청원 넣어주랴?"
"쇠고기 등급제나 고치라 그래라."

쇠고기의 등급판정을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도축되는 모든 쇠고기의 마블링을 국가가 쳐다보고 있다 생각하면 참 가관인데 이 마블링에 따른 등급체계 자체가 거대한 사기시스템.

미국에서 옥수수가 남아돈다. 소에게 먹인다. 쇠고기에 마블링이 생긴다. 기름기가 많아 소비자들이 안 좋아한다. 마블링을 기준으로 등급제를 만들고 좋은 고기라고 홍보한다. 이 시스템이 일본을 거쳐 수입된다. 마블링이 좋은 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옥수수 사료를 먹여야 한다. 마블링 생성 기간으로 인해 비육기간이 늘어난다. 생산기간과 비용은 점차 증가하지만 높은 등급은 오로지 마블링에 달려있으므로 비싼 옥수수를 더 많이 먹인다. 영세 축산농은 이 시스템을 감당하지 못한다.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된다.

더 문제인 것은 옥수수 사료로 인해 축산업은 점점 더 국제 곡물시장에 깊이 예속되어 간다는 점. 어느 날 옥수수 가격이 폭등한다면 국내 쇠고기 값도 같이 폭등하게 된다. 그 사이 목초지에서 풀 먹고 자란 호주산 쇠고기가 시장을 점령하고. 카길 좋고 호주 좋고. 풀 먹고 자란 건강한 소니까 국민 건강에는 좋겠구나. 지화자.

배추밭 갈아엎는 심정 저절로 이해됐다

혹시나 싶어 이 형님, 저 아재께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한-캐나다 FTA? 새삼스럽게 뭘. 언제 정부가 농민편이었다고. 한-중국 FTA 아닌 것만 다행이지. 한-중국도 협상 시작했다지. 다 같이 망할 날이 멀지 않았구만. 농민들을 구덩이 파고 묻은 자리에 자동차 공장 세워서 오늘은 타이어 뜯어 먹고 내일은 깜빡이 뜯어먹고 그렇게 살 테지. 에헤라.

농민을 위한 정부가 아닌 것은 귀농 첫 해 알아버렸다. 짜장 한 그릇 5000원. 고추 한 근 4500원. 고추 국내 자급률이 절반도 안되면서 중국산 수입 막을 생각은 코딱지 만큼도 안하고 태풍이 없어 풍년이니 값이야 당연히 떨어지는 것이 맞다고, 누구 코에 붙일 지도 모를 수매물량을 할당하면서 생색 내던 걸 생각하면 배추밭을 갈아엎는 심정이 저절로 이해되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 사탕발림이고 당의정인 걸 뻔히 알지만 당장의 정부보조금이 아쉬워서 거름 보조금 도장 찍으러 가는데 봄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 한장. '농업은 6차 산업. 농민이 미래입니다.' 1차 농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업을 더하나 곱하나 6차이니 농업은 6차 산업이란 얘기. 생각해보니 농사 짓고 도시민들에게 농촌관광까지 시키자면 6차 산업 아니고는 안되겠구나, 거 참 표어 한번 그럴 듯하네, 싶다가 울컥 치미는 분노.

농민이야 애시당초 국민 취급 안 당했지만 좀 어지간히 하자. 먹고 살게는 해줘야지. 기어이 농민들을 재벌이 운영하는 축산법인의 소똥 치우는 비정규직을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래야 만족하겠냐고.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제발. 적당히 말이다. 이 자식들아!!
#FTA
댓글1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2. 2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3. 3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4. 4 탄핵 언급되는 대통령... 한국 외교도 궁지에 몰렸다
  5. 5 갑자기 '석유 브리핑'... 가능성 믿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다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