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돼 전역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아들, 대견하다

등록 2014.03.15 16:44수정 2014.03.1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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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아요. 입대 전에 선생님이나 선배들이 군대는 반드시, 한번은 갔다 올 필요가 있다고 말할 때 솔직히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그냥 썩으러 간다는 생각만 들고. 그래서 남자라면 다들 가니까 나도 당연히 참고 가야지. 뭐 그랬지. 그런데 그 말이 맞다는 것을 군대에서 실감했어. 나도 이젠 후배들에게 군대는 반드시 갔다 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


며칠 전(3월 11일), 아들이 전역했습니다. 2주 전 말년 휴가를 나왔던 아들이 휴가 첫날 이처럼 말하더군요. 솔직히 전혀 생각 못했던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처음 자대로 갔을 때만해도 부사관 운운하던 아들이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부턴 어서 빨리 전역하고 싶다는 말을 가끔 했었거든요.

말년 휴가부터 전역까지는 20일쯤. 아들의 이 말은 그동안 시시때때로 생각나곤 했습니다. 실없이 웃게 하더라고요. 그리고 힘이 됐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아들의 입대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또 했답니다.

 아들의 전역모.
아들의 전역모.김현자

아들은 2012년 6월에 입대를 했습니다. 유난히 덥고 가뭄이 계속되던 그 여름, 8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25사단 70연대 모 지원중대로 배치 받아 군 생활을 했습니다.

2012년 여름에 보도된, 306보충대로 소집되었던 장병들에게 활동화(운동화)를 제때 보급해주지 않아 밥을 먹으러 갈 때도 군화를 신고 가고, 운동을 할 때도 군화를 신고 간다는 뉴스 기억나시죠? 아들은 그에 해당하는 병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뉴스를 접하며 아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연상되면서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안쓰럽던지요.

2011년부터 교체하기 시작한 군복이 원래의 의도와 달리 비리에 의해 품질미달의 섬유로 제작, 땀복 수준이란 뉴스도 있었네요. 군대 관련 이런 소식들은 아들을 군대에 보낸 수많은 부모 중 한사람인 제겐 분노였고, 쓰라림이었습니다.


아들을 빼앗겼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아들이 군에서 보낼 시간들이 아깝단 생각도 들었고, 누구 말대로 썩는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현역병으로 갈 수 있도록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고맙기만 하고, 이왕이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내주자며 눈물을 속으로만 삼켰던 엄마인데 말이지요.

매정하다고 할지 모르나 전 306 보충대에서 아들과 헤어지는 순간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군대에는 갔다 와야 한다고, 내가 눈물을 보이면 아들까지 덩달아 우울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갔던 길을 아들을 두고 돌아오며 잠시 감았던 눈에 아들이 환영처럼 떠오르고,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더군요. 실은 이런 엄마이거든요.


아들이 5주차 훈련 중일 때, 행군을 하던 훈련병(아들보다 1주일 늦게 입대한)이 쓰러져 죽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탈영해 자살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왔고요. 이 장병들의 부모 심정은 오죽할까.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요. 동시에 아들에 대한 걱정이 커지더군요. 

 아들에게 보내준 위문편지 일부.
아들에게 보내준 위문편지 일부.김현자

"아니 괜찮아. 감기 걸린 사람 거의 없는데? 감기에 걸리지 말라고 내가 평소 마늘을 듬뿍 넣어 음식을 하곤 했거든. 오늘 저녁엔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아주 매콤하게 닭볶음을 했는데 맛있게 먹으니 좋더라고. 얼마 전에는 매운 소스를 이용해 잡채를 아주 맵게 해봤는데 다들 특이하면서 맛있다고 하더라고. 기분 무지 좋았지. 음식을 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생각날 때가 많아. 휴가 나가면 엄마한테도 꼭 해주고 싶어."

아들은 전공과 관련, 취사병으로 근무했습니다. 2013년 1월, 추위가 며칠 계속되던 어느 날 전화를 했길래 "너도 니 부대원들도 감기 걸리지 않았니?"라고 물었더니 이처럼 말하는데 전우들을 챙기는 마음이 느껴져 얼마나 대견하던지요. 

참, 지난해 6월, 25사단 창설 60주년 행사 일환으로 부대를 개방한 적이 있어요. 부모들을 초대해 생활관을 비롯하여 싸지방(싸이버지식검색방), 식당, 노래방 등, 아들들이 생활하는 모든 곳들을 개방도 하고 아들들이 먹는 음식도 공개하고 그랬습니다. 장기자랑 시간도 있었고. 그날 몇 분 부모님들과 인사를 하게 됐는데, 아들이 취사병인 것을 알게 된 부모들이 칭찬을 많이 해서 매우 행복했었습니다.

"엄마 난, 사람이 주변 사람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거든. 부모 빼고 말이야. 그런데 우리 행보관님과 생활하면서 그 말을 실감했어. 나도 존경하게 됐거든. 전역하고서도 오래오래 인연 이어가며 기쁜 소식도 전해드리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조언도 얻고 그러고 싶은 분이셔."

지난 1월 초에 휴가를 나왔던 아들은 휴가 중 이런 말도 했었습니다. 제 아들이라고 왜 힘들지 않았을까요. 서부전선이나 다른 곳보다 춥고 험하다는 동부전선에서 근무한 아들들이나 GOP나 GP등에 근무하는 아들들에 비하면 좀 덜 힘들었겠지만, 아마도 아들 역시 나름대로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물론 아들 역시 더러는 전화로 투정도 했습니다. 지난해 5월엔 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일도 있었고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말도 하더라고요. 쓸 돈이 부족한가? 지레짐작, 더러는 용돈을 보내주기도 했고요. 여하간 아들은 힘들었던 것들도 잘 참아내고 이처럼 평생 멘토로 삼고 싶은 분까지 가슴에 담고 전역을 했습니다.

여하간 이런 아들이 드디어 전역을 했습니다. 아들이 자대를 배치 받을 무렵 25사단 부모들 모임 카페에 가입해 부모들과 정보도 교환하고 마음도 나누고 그랬는데요. 아들이 훈련병일 때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장병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아니 아들보다 한 달 먼저 입대한 장병들의 부모들까지 부럽기만 하더라고요.

이미 전역을 했거나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부모들은 한결같이들 말하더군요. 잠깐이라고. 휴가 한두 번 나왔다 들어가고 어찌어찌 조금 지나고 나니 전역을 불과 몇 달 앞두게 되더라고. 그런데 이런 말들이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그들의 말처럼 돌아보니 결코 흐르지 않을 것 같은 20여 개월이 어느새 훌쩍 흘렀네요.

 25사단 창설 60주년 기념 부대 개방 행사 중인 아들의 부대
25사단 창설 60주년 기념 부대 개방 행사 중인 아들의 부대김현자

"우리 부대가 참 따뜻한 곳이었어. 간부들이 병사들을 참 잘 챙겨주고…. "

전역을 한 아들이 이처럼 말하더군요. 이처럼 말하는 아들의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을 보니 정말 아들에겐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따뜻한 곳이었나 봅니다. 나름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인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건강하게 생활해준 아들이, 아들이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 돌아오게 해준 25사단 70연대 지원중대 간부들과 장병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21개월의 군 생활동안 잃은 것 없는 배움이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끈끈한 곳이었기에 더욱 힘차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보살핌에 매 훈련 때와 부대 발전에 하나라도 더하는 병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사람을 만들어 주신 간부님들과 전우들에게 감사합니다. 연대장님과 했던 축구시합이 생각납니다. 건강하십시오. 단결!"

요즘에는 간부들이 부모님들과 단체 카톡을 통해 아들들의 안부도 전해주고, 가끔 아들의 모습도 전해주고 그래서 매우 좋답니다. 저도 간부 몇 사람과 카톡 친구인데요. 아들이 전역한 다음 날 일하다 잠시 짬을 내어 아들의 전역 소식을 카카오스토리에 간단하게 올렸습니다. 연대장님과 행보관님이 방문하시어 전역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남겼고요.

아들도 제 카카오 스토리에 방문, 축하의 댓글 준 연대장님께 이런 인사를 남겼네요. 게다가 어젠 엄마 생일이라고 새벽같이 일어나 미역국을 아주 맛있게 끓여놨더라고요. 제 아들 대견하고 멋진 청년 맞죠?

아들 말대로 사람 만들어주신 간부님들과 전우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그리고 지금도 아들을 군에 보내놓고 날씨 변화와 북한의 움직임에 따라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들! 정말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그러니 아드님이 그립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응원해 주시길요. 

거듭 아들을 멋진 청년으로 만들어 주신, 간부들과 장병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아들과 전우였던 장병들의 남은 군 생활 무탈하길!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전역모 #군인 #전역 #25사단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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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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