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미술관 재즈콘서트
이수지
사랑이라면 어쩔 텐가. 나는 파고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고, 우리는 끝났다. 사랑이었다고 할지라도, 떠나오는 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한국으로 돌아가 살아낼 나의 인생이 있다. 그에겐 LA에서 새로 시작할 그의 인생이 있다.
지금의 나의 인생과 지금의 그의 인생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와 함께 하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LA에 머물 수는 없다. 나는 나다. 사랑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 사랑한다고 해서 내 존재를 모두 바꿔 버릴 순 없다. 그가 나에게 끌렸다면, 그가 끌렸던 건 나라는 오롯한 존재다. 상대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변해 버리는 내가 아니다.
아니지. 희생도 없이 사랑은 무슨 사랑. 아무리 강하게 느껴도, 자기 스스로가 더 중요해서 떠났다면, 그게 무슨 사랑. 사랑이라고 해도, 하루 만에 끝나 버린, 다시는 볼 수도 없는, 미래 없는 관계가 다 무슨 소용.
아니, 소용이 없진 않아. 나는 마음을 다했으니까.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알았기에, 내 마음에 솔직하고 충실하고 용감할 수 있었을 테다. 그랬기에 그가 내민 손을 주저 없이 잡을 수 있었을 테다.
그랬으니까. 나는 두 눈을 감고, 그는 두 귀를 막고, 서로를 앞뒤로 붙잡아 긴 언덕을 내려오는 바보 같은 짓도 할 수 있었을 거다. 육십 살이 되어 다시 만나자는 장난스러운 농담에도, 그래, 그때라도 보고 싶다, 라는 진심을 담았을 터다.
나는 마음을 다했다. 그리고, 아직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많다. 그때의 순간이 중요했듯, 지금의 마음도 중요하다. 나는 수첩 한가운데에 적어놓은 그의 전화번호를 펼쳤다. 다이얼을 돌렸다. 그를 만나러 LA로 갔던 그 마음으로. 다시는 만나지도 못할 그에게 마음을 표현해서 어쩌자는 건가?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그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 뿐이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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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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