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청 이전매일신보 1919년 7월 9일
현 달성군청사는 제반불편에 의하야 해 군민 급 대구부민이 거개 대구시내로 이전하기를 희망하는 바임으로 당국에서도 기 실정에 鑑하야 이전을 허가하는 바 대구시내 동성정 구시장에 이축할 설비 중이고 당분간은 대구 헌병대 본부 강당을 차수하야 내10일부터 동소에서 일반 사무를 취급한다더라.(매일신보 1919년 7월 9일)위에서 보듯이 달성군민들과 대구부민들은 군청이 여러모로 불편하다며 대구시내 이전을 희망하였다. 이에 달성군청은 다시 대구시내로 들어오게 된다. 청사 이전지는 '동성정 구시장'으로 정하였으나, 일단은 1919년 7월 10일부터 대구 헌병대 본부 강당, 경상감영 공원 앞 옛 병무청 자리에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3·1 운동은 처음 다른 도시보다 늦은 3월 8일 서문시장을 출발하여 대구경찰서에서 종로를 거쳐 동성로 달성군청, 지금의 대구백화점에서 헌병과 군인들에게 진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달성군청은 신남 네거리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그곳에는 동성정 구시장, 곧 동문 시장이 있었다.
조선 후기 남문밖에 있던 신시(新市)는 신해년(<대구부사>(1943)의 신해년을 <대구시사 2>(1973) 275쪽에는 1911년으로 보고 있으나 1851년으로 생각됨)에 동문밖(현 대구백화점 근처)으로 이전하여 동문시장으로 불렸으며, 면적은 서문시장의 약 반인 2499평에 불과하였다. 1917년 8월 일부를 덕산동으로 옮겼고, 1919년 7월 나머지도 모두 옮겨 3476평이 되었는데 방향과 관계없이 동문 시장으로 불렸다. 1919년 7월 동성정 구시장이 달성군청 청사 이전 후보지가 되면서 동성로에 있던 시장의 나머지도 덕산정(덕산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면 달성군 청사는 언제쯤 동성로로 이전하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자료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