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단돈 30유로에 팔린 사연

[해외리포트] 스페인 달구는 '코르도바 메스키타' 주인 논란

등록 2014.03.27 08:50수정 2014.04.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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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 관광지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 홍은


지난 3월 초, 이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공공 이슈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인터넷 서명을 받는 사이트(change.org)에서 온 메일이었는데, 제목엔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모두의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주에 있는 사원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때 아닌 코르도바 메스키타의 주인 논란이 왜 불거졌는지 궁금해 최근 뉴스를 찾아봤다. 올 초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거리서명과 각 시민운동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이미 서명 인원만 15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정부에서도 코르도바 교구에 공식적으로 메스키타 명의 변경을 요청한 상태다.

평소 스페인의 대표 관광지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가 누구의 명의인지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과연 그 주인은 누구인지, 왜 이 시점에 주인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스페인어다.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메스키타로도 알려져 있다. 785년 후기 오마이야 왕조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해, 확장 공사를 거쳐 2만 5천여 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모스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1236년 페르난도 3세가 코르도바를 점령했을 때 일부를 허물었다.

이후 카를로스 5세 때 사원 가운데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지어 현재처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동거하는 사원이 되었다. 특히 안달루시아에선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공존문화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도 이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땅 주인 바뀔 때마다 이름도 정체성도 바뀐 메스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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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 관광지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 홍은


그동안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이름도, 정체성도 바뀌어야 했다. 이 역사는 21세기인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메스키타의 주인은 코르도바 교회다. 관광객들이나 외부에는 메스키타로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지만 공식 명칭은 '산타 이글레시아 대성당(Santa iglesia catedral)'이다. 이는 2006년 이곳이 코르도바 교회에 의해 사유 재산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적의 교회 사유화가 가능했던 것은 아스나르 국민당 정부시대의 부동산 법 때문이었다. 당시엔 주교의 한 마디면 교회는 어떠한 미등록 부동산도 특별한 절차 없이 소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코르도바 교회가 단돈 30유로에 세금 없이 세계문화유산인 메스키타를 개인 소유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사실은 3년간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2009년 한 스페인 이슬람교도의 의혹 제기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렇게 교회의 소유가 된 메스키타는 관광객에게 부여되는 입장료도 기부금 명목으로 받고 있어 세금조차 내지 않는다.

최근 메스키타 주인에 대해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단순히 교회 소유화 과정의 불투명성에만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이 유적 안 이슬람 흔적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당시 메스키타의 공식 명칭은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Mezquita-Catedral de Cordoba'이었다. 하지만 현재 유적지 안내 표지판과 팸플릿 등에서 '메스키타'란 명칭은 하나 둘 사라지고 '코르도바 대성당'이라고만 표기되고 있다.

"메스키타, 인류문화유산이지 종교적 공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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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적지 안내 표지판과 팸플릿 등에서 '메스키타'란 명칭은 하나 둘 사라지고 '코르도바 대성당'이라고만 표기되고 있다. ⓒ 홍은


서명 운동 성명서에는 "코르도바 메스키타-대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단순히 그 외형적 아름다움과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 대한 표본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라며 "성당이 이 공간을 개인 소유화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메스키타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류문화유산이지 단순히 성당의 종교적 공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시작된 야간 성당 투어 프로그램도 지나치게 가톨릭 성지투어 성격을 띠고 있어서 공간에 대한 편견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물론 "코르도바 메스키타가 대성당으로 존재한 역사는 오래되었으니 이름이 바뀌고, 기능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코르도바 교구는 안달루시아 정부의 명의 이전 신청에 대해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1차 대답을 한 상태다. 상호간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으나 아직 그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으로 한 역사적 건물을 찾았을 때 단순히 하나의 오래된 건물로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읽고 느끼면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단순히 '누구 소유인가'란 문제가 아닌, 그 공간이 오늘날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온전히 담고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할 때다.
#메스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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