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와서 처음 본 모텔촌, 충격적... 밤에는 피해가요"

학교 앞 호텔 건립 규제 완화 놓고 논란... '모텔촌' 둘러싸인 중학교 현장은?

등록 2014.04.01 08:47수정 2014.04.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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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촌을 이 학교 입학하면서 처음 봤어요. 사방이 다 모텔이라 처음엔 충격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친구들끼리 '야, 저거 봐'하면서 웃고 장난쳐요. 특히나 하굣길에 지나가면 바닥에 여자들 사진 뿌려져 있고 다들 술 취해서 비틀거리고... 교육적으로는 별로인 것 같아요."

31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방이중학교 앞에서 만난 장아무개 학생(15)의 말이다. 장 군은 학교 인근 모텔촌에 대해 "친구들도 (모텔촌이) 뭐하는 데인지 다 안다"며 "일자리도 좋지만 교육적으로는 별로인 것 같다, 이제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1일 찾은 송파구 방이중의 모습. 장아무개 학생은 "모텔촌을 거치지 않으면 빙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에 늦었을 때는 그냥 (모텔촌을) 지나서 간다"고 말했다. 송아무개 학생(15)은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31일 찾은 송파구 방이중의 모습. 장아무개 학생은 "모텔촌을 거치지 않으면 빙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에 늦었을 때는 그냥 (모텔촌을) 지나서 간다"고 말했다. 송아무개 학생(15)은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성애

교육부가 지난 27일, 현행 학교보건법상 훈령을 정비해 올해 내로 초·중·고등학교 근처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청년층 실업이 심각한데, 시대착오적인 편견으로 청년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관광호텔)를 막고 있는 건 죄악"이라고 말한 뒤 일주일만의 일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학생과 학부모 등 당사자들은 "규제 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보다 교육 환경이 먼저"라며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속옷만 입은 여성 찍힌 전단지 등... "규제도 봐가면서 풀어야죠"

8호선 몽촌토성역에 위치한 서울 송파구 방이중학교는 대표적인 '호텔 난개발 지역'으로 꼽힌다. 1985년 개교한 후, 차례로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외국인 숙박시설 부족을 해소한다는 명목 아래 수십 개의 호텔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31일 찾은 방이중학교 후문 앞에는 10m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약 50여개의 호텔·모텔들이 있었다.

기자가 직접 지하철역부터 학교 정문까지 약 450m를 걷는 동안 지나친 모텔 수만 15개에 달했다. 바닥에는 "장소 선택 후 연락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속옷만 입은 여성이 찍힌 전단지·대출권유 전단지 등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황금욕조·대실시간 무한제공' 등의 선전문구는 물론 19세 금지 성인영화 포스터 등도 모텔 외벽에 붙어있었다. 모텔촌 한가운데에는 성인나이트클럽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 방이중학교는 수십 개의 모텔에 둘러싸여 대표적인 '호텔 난개발 지역'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27일, 올해 내로 초·중·고등학교 근처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방이중학교는 수십 개의 모텔에 둘러싸여 대표적인 '호텔 난개발 지역'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27일, 올해 내로 초·중·고등학교 근처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화면캡쳐

 학생들이 등하굣길로 이용하는 해당 모텔촌 샛길에는 성인나이트클럽도 있었다. 예비학부모 김경숙씨는 "유해 환경에 아이들이 노출될까 걱정돼 이사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등하굣길로 이용하는 해당 모텔촌 샛길에는 성인나이트클럽도 있었다. 예비학부모 김경숙씨는 "유해 환경에 아이들이 노출될까 걱정돼 이사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유성애

문제는 학생들이 등·하굣길로 해당 모텔촌 샛길을 이용하면서 유·무형의 유해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 방이중에 다니는 장아무개 학생은 "여길 거치지 않으면 빙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학교에 늦었을 때는 그냥 (모텔촌을) 지나서 간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송아무개 학생(15) 또한 "친구들과 올림픽 공원에 놀러갈 때면 모텔촌을 지날 수밖에 없다"며 "단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많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학교 앞 호텔 규제 완화'에 대해 방이중 인근 주민들은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방이동에서 10년 넘게 살아온 주부 김은영(43)씨는 "규제도 봐가면서 풀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김씨는 "선정적인 전단지 등을 볼 때마다 애 키우는 엄마로서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며 "제 주위 학부모들은 다들 모텔이 없어지길 바란다, 일자리 창출도 좋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먼저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방이중학교 후문 앞에는 10m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약 50여개의 모텔들이 있다. 기자가 직접 지하철역부터 학교 정문까지 약 450m를 걷는 동안 지나친 모텔 수만 약 15개에 달했다.
방이중학교 후문 앞에는 10m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약 50여개의 모텔들이 있다. 기자가 직접 지하철역부터 학교 정문까지 약 450m를 걷는 동안 지나친 모텔 수만 약 15개에 달했다. 유성애

 방이중 입구에는 "학습과 학교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는 행위 및 시설을 해서는 안되는 지역"이라고 써있지만, 실제 현장에는 10m도 안되는 거리에 수십개의 모텔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근 주민들은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이사하거나, 아예 학교를 옮겨달라는 민원을 인근 교육청에 하기도 한다.
방이중 입구에는 "학습과 학교보건위생에 나쁜 영향을 주는 행위 및 시설을 해서는 안되는 지역"이라고 써있지만, 실제 현장에는 10m도 안되는 거리에 수십개의 모텔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근 주민들은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위해 이사하거나, 아예 학교를 옮겨달라는 민원을 인근 교육청에 하기도 한다. 유성애

자녀가 방이중에 진학 예정인 김경숙(송파구 방이동·40)씨는 유해환경을 피해 아예 이사를 고려 중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김씨는 "취객들도 많고 모텔이 성행 중인 곳에서 아이가 미리부터 유해한 것만 배울까 걱정된다"며 "실제 주변에서 중학교 때문에 이사를 가는 엄마들도 있다, 저 역시 주소지 이전까지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대통령께서 자녀분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아이들 친환경 급식 운운하면서 이렇게 (학교 앞 호텔 건립) 규제 완화를 말한다는 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걱정이 김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송파구 강동교육지원청 심세진 주무관은 "(방이중에 배정 받으면) 인근 중학교로 보내달라거나, 아예 학교를 옮겨달라는 민원이 학부모들로부터 들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도 인정한 '학교 앞 호텔 규제 완화' 부작용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교 정문에서 50m 이내는 '절대정화구역', 50~200m는 '상대정화구역'으로 호텔 건립과 관련해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는 '상대정화구역'의 심의 기준을 완화해 관광호텔을 허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관광호텔 건립이 추진 중인 학교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영등포구 당산초등학교 등이다.

지난 20일 규제개혁회의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방이중학교에 직접 가 봤는데, 상당히 교육적으로 유해한 전단지 등을 많이 볼 수 있었다"며 규제 완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서 장관은 그러면서도 "학교 환경과 투자 활성화가 균형 있게 추진되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한편, 오는 4월 중 관련 훈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6일 논평을 내고 "학교 정화구역 안 호텔건립은 학습권 침해이자 정부가 선언한 성폭력, 학교폭력 등 4대악 근절대책과도 배치된다"면서,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비교육적 환경을 감수하라는 것이 오히려 죄악"이라고 비판했다.
#관광호텔 허가 #규제완화 #상대정화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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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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