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엄지세대?... 난 그래도 좋아요"

[서평]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이 쓴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등록 2014.04.02 11:23수정 2014.04.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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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책표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책표지.라파고스
장면 하나#. 어느 중학교. 수업 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복도를 오가며 소란스럽게 놀던 아이들이 후닥닥 교실로 뛰어 들어간다. 잠시 후, 교무실 문이 열린다. 교사들이 느긋한 걸음으로 각자 수업이 있는 반으로 들어간다. 뒤늦게 화장실에 다녀오던 아이들 몇이 복도를 재빠르게 달려온다. 한 교사가 부른다.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사가 주먹으로 주는 알밤을 받는다. 교사는 의기양양하게 교실 문을 들어선다. 조용하다.

장면 둘#. 같은 학교. 수업 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복도를 오가며 소란스럽게 놀던 아이들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잠시 후, 교무실 문이 열린다. 교사들이 시간에 늦을세라 종종걸음으로 각자 수업이 있는 반으로 들어간다. 뒤늦게 화장실을 다녀오는 아이들 몇이 복도를 느긋하게 걸어온다. 한 교사가 부른다. 아이들은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교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교사는 의기소침하게 교실 문을 들어선다. 소란스럽다.


두 장면 사이의 분기점을 언제쯤으로 잡으면 좋을까.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후쯤으로 하면 되려나. 대충 맞을 게다. 그즈음 이후부터 '막장 교실'이니 '교실 붕괴'니 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이 본격화한 지금은 거의 절정기 수준이다.

'막장 교실'... 스마트폰이 본격화된 지금이 절정기

많은 교사가 처음에는 럭비공 같은 그 아이들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전히 몽둥이와 험한 말로 진짜 막장을 향해 치닫는 교사가 있었다. '요새 아이들은'을 차갑게 뇌까리며 월급쟁이 교사 생활에 만족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아이들이 왜 그런지, 그런 아이들에게 교사인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는 교사는 별로 많지 않았다.

교사들뿐이었을까. 고색창연한 '군사부일체주의'에 물든 이 땅의 많은 어른은, 진짜 속이야 어떻든 그런 아이들을 막돼먹은 철딱서니로 취급했다. 기성 언론은 교사에게 대드는 아이를 불문곡직하고 천하의 패륜아처럼 매도했다. 매 맞는 교사를 통해 교권 붕괴와 학교의 위기를 널리 외쳐대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자문해 보자. 우리는 정녕 그 아이들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가. 아이들의 그 좌충우돌과 철면피를 세상의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조명해보려고 애쓴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각자의 단견과 편견 속에서 아이들을 이해시키는 데만 매달리지 않았던가.


<엄지 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바로 그 아이들을 다룬다.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통해 고리타분한 훈계나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깊은 애정 속에서 함께 살피자고 권유하는 방식이다. 놀랍게도 저자는 철학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랄 수 있는 인식론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다.

프랑스의 자랑이기도 한 노철학자가 엄지세대로 부른 신인류는 어떤 이들인가. 세칭 'Z세대'로도 불리는 이들 세대는 사고 방식, 거리·시간에 대한 관념, 세계 인식, 언어 등에서 이전 세대 어른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생을 살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래서 저자는 엄지세대의 출현을 '호미네상스(hominescence)'라 부르기까지 한다. 호모사피엔스에서 또 다른 인류로 진화해가는 단계를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과거 체제나 기성 질서와의 단절이 전면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일 게다.

시도 때도 없이 찧고 까부는 젊은이를 곱게 봐주는 어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로 불리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올해 82살이 된 저자는 '이기적'이고 수다스러운 그들을, 종교나 국가를 가능하게 하는 집단의식이나 소속감으로 무장된 이들보다 훨씬 사랑하며, 자신은 단호히 그들의 편이라고 말한다.

엄지세대는 당당하게 묻는다. 어린 자기들처럼 딴짓을 하고 웅성거리는 사람이 없는 어른들 모임이 있으면 어디 한 번 꼽아보라고. ··· 부모님은 내 이기주의를 나무라지만 나한테 이기주의의 모범을 보인 사람은 누구였죠? 나한테 개인주의를 가르쳐준 사람은 또 누구였느냐고요? 부모님들은 여럿이 팀이 되어 일하는 방법을 잘 아시나요? 부부로 사는 방법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해서 이혼을 하시잖아요. 정당을 창립하고 그 정당을 오래도록 키워나가는 법은 제대로 익히셨던가요? 지금 정당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쪼그라들었는지 좀 보시라고요. (117~121)

저자에 따르면, 지식이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던 시대는 끝났다. 엄지세대가 출현해서다. 왜 그런가. 저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초대 주교로 선출한 드니 주교 이야기를 꺼내든다. 로마 군대에 체포당해 고문을 받은 드니 주교는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로 오르는 중간쯤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형 집행 담당 병정이 게을러서 꼭대기에서 참수하는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목이 잘려 나간 드니 주교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나뒹구는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 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병정은 경악하며 꽁무니를 뺐다. 그뒤로 드니 주교는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엄지세대는 드니 성인이 목에서 떨어져나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던 것처럼 예전엔 몸과 하나였던 인식 기능을 자기 몸 밖으로 꺼내서 들고 다닌다. 머리가 잘려나간 엄지세대라니, 예전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 최근 들어 우리 모두는 엄지세대처럼 드니 성인이 되었다. 뼈와 신경으로 이루어진 머리에서 우리의 지능이 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컴퓨터 속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능력'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들어 있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이것들을 자유자재로 기능하게 만들 수 있다. (63쪽)

이들 신인류와 함께할 새로운 미래 사회를 저자는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저자는 우선 권위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노동에 대한 관점 변화도 저자가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책의 해제에 따르면, 현재 사회에 진출한 20~30대인 Y세대는 평균 4.4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꾼다. 엄지세대인 Z세대는 일생을 살면서 열아홉 번이나 직업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인용한다.

엄지세대인 Z세대, 일생에 열아홉 번 직업 바꾼다?

학교에서 들려오는 혼란스러운 웅성거림과 같은 엄지세대의 수다에 대해서도 저자는 긍정적이다. 저자가 '새로운 시대의 소리'이자 '보편적 발언권'으로 극찬한 엄지세대의 수다는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저자는 새롭게 태동하는 지식민주주의나 상호 소통하는 새로운 교수법을 이와 관련해서 이해한다.

저자는 지금 프랑스 파리의 센 강 우안, 에펠탑 건너편에 가상의 나무 가꾸기 공동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인식의 나무'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딱딱하고 피라미드적이며 경직되어 있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에펠탑과 대조적으로 공동의 관심사에 따라 늘 변화하고 움직이며 살아 있는 모습을 갖는다. 과거 같은 방식의 소속감이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한다.

교사가 교실 문을 들어섰는데도 아이들이 계속 떠들고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미셸 세르식 해석법에 따르면, 이는 지식이 민주화하는 과정이나 그 결과에 따른 현상이다. 옮긴이는 이러한 움직임이 교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동심원처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다고 해석한다.

결국 이것은 지식이나 정보, 권력, 권위 등의 '집중'이 '분산'하고 있는 증표인 셈이다. 학교가 없어지겠느냐며 편하게 정년 퇴임을 기다리는 교사가 아니라면 새겨 보아야 하는 진단이 아닐까.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이 나라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지각 있는 어른들까지 포함된다면 더욱 좋겠다.
덧붙이는 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14. 2. 10. / 163쪽 / 8,8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세르의 신인류 예찬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송은주,
갈라파고스, 2014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 #미셸 세르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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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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