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노사, 연봉제 폐지 잠정합의

도입 10년 만에 한계 드러내... "1사 1노조, 통합의 성과"

등록 2014.04.04 20:55수정 2014.04.0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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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노사가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바꾸기로 잠정합의했다. 지엠이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2003년부터 도입한 연봉제를 11년 만에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노사는 지난달 31일,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연봉제에서 '연공급제(이하 호봉제)'를 기초한 새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큰 틀에서 연봉제 폐지에 합의한 뒤 수개월 동안 논의를 거쳐 이번에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는 이달 16~17일 총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대다수 조합원이 바랐던 것이라 무난히 가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식 연봉제 밀어붙인 지엠, 결국...

지엠은 대우차를 인수한 뒤 처음에는 과장급 이상 사무직에게만 미국식 연봉제를 실시하다 2003년 모든 사무직에게 확대 적용했다. 2006년에는 개인별 성과주의를 강화했다. 일정 기간의 능력과 성과를 수익률처럼 환산해 임금 인상 때 반영한 것이다. 이는 직원 간 불신과 경쟁심리를 초래했고, 직원 간에 업무협조도 잘 안 되는 등의 역효과가 심각했다.

이재수 사무지회 교육선전실장은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팀장 개인의 평가로 인한 역효과는 심각했다. 성과급이 0~10%까지 벌어지니까 직원들이 서로 돕지 않는 문화가 생겨났다"며 "심지어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를 엉터리로 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무지회는 지난해 7월 조합원을 포함한 전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조사 결과에서 연봉제의 폐해는 그대로 나타났다.


'회사의 임금제도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는 물음에, 설문조사 참여자의 83.1%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또한 '회사의 승진제도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도 81.3%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회사의 평가제도는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는 물음에 긍정적 답변은 18%에 불과했다.

한국인의 정서와 조직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한경쟁을 강조한 지엠의 경영철학인 '성과에 따른 보상'은 이제 사라지게 된 셈이다. 다만, 각종 수당은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한국지엠 전체 임직원 1만 000여명 가운데, 사무직은 6000여명에 달한다. 한국지엠의 이번 결정은 여러 의미가 있다. 대규모 사업장이 연봉제를 포기했다는 의미 이외에도 현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에 경종을 울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고용노동부는 40대 중반 이후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전체적으로 호봉제 대신 성과급을 늘리는 방식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부가 내놓은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매뉴얼이 사용자만을 위한 편향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한국지엠)에서도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에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한국지엠의 연봉제 폐지 의미를 설명했다.

노조 "1사 1노조가 만든 성과"

사무지회는 수년 동안 연봉제 폐지와 '호봉제로 임금체계 전환'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 요구는 좀처럼 힘을 얻지 못했다. 회사 쪽은 논의 석상에 나오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 11월 노조의 현장조직과 사무조직이 전국금속노조의 '1사 1노조' 원칙에 따라 통합했다. 조직 통합 후 연봉제 폐지 요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한국지엠지부는 2012년부터 연봉제 폐지와 호봉제로 임금체계 전환을 임금·단체협약 협상 등에서 주요 요구 사항으로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이창훈 사무지회장은 "크게 보면 '1사 1노조'의 힘 때문에 잃어버린 권리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함께 하니 힘을 더 받은 것 같다"고 평가한 뒤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압도적 가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지부 관계자도 "1사 1노조의 힘 때문에 사측을 테이블에 앉혀 잘못된 호봉제를 개선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분리된 노동조합이 통합됨에 따라 노동자들의 요구가 힘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지엠 #연봉제 #호봉제 #한국지엠 사무지회 #1사1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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