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범죄를 날조하는 '경전'도 있었다

[서평] 통째로 꿰뚫어 읽는 <백양 중국사>

등록 2014.04.09 14:56수정 2014.04.09 14:56
0
원고료로 응원
 중국 역사는 만리장성 만큼이나 길고 깊지만 <백양 중국사>를 통해 통째로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역사는 만리장성 만큼이나 길고 깊지만 <백양 중국사>를 통해 통째로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임윤수

억울한 범죄를 날조하는 '경전'까지 있었다고 하니 정말 없는 게 없는 역사 속 중국입니다.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당사자로 지목돼 검찰 조사를 받던 국정원 대공수사국 요원이 자살 기도 이후 '기억상실증'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왕 조작하려고 나설 거라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억울한 범죄를 날조하는 경전일 거라는 '나직경' 정도는 통달했어야 이런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단, 쥐도 모르고 새도 모르게 조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어떤 경우도 역사의 눈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서 말입니다. 


억울한 범죄 날조하려면 '나직경' 정도는 통달해야

'나직경'은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황제였던 무조(측천무후)시대에 기용한 혹리(酷吏)중 한 명인 내준신(來俊臣)이 혹형(酷刑)을 자행하며 나름대로 정립한 이론입니다

내준신은 실행가일 뿐만 아니라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가 지은 <나직경羅織經>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억울한 범죄를 날조하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범죄 날조 과정은 모두 일곱 단계인데 다음과 같다.

① 먼저 대상을 확정한다.
② 특무들이 사방팔방으로 관련 기관이나 권력을 쥔 인물들에게 비밀 문서나 검거 문서를 보낸다.
③ 관련 기관이나 권력자가 이 문서를 본 뒤 사건을 조사하라고 명령하기를 기다린다.(후략)
④하달된 문서를 근거로 대상을 체포, 심문한다.
⑤심문 때 혹형을 사용하여 이상적인 진술을 얻어낸다. 주의할 것은 자백을 거부하고 혹형 때문에 죽으면 원래의 죄에 '죄가 두려워 자살했다'는 죄명이 추가 된다는 것이다. 피고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는 없다. 자백하거나 혹형에 죽거나. 사실 모든 피고에게 혹형을 할 필요가 없다. 재상 적인걸狄仁傑은 매조차 대지 않는다. 그저 협조하지 않을 경우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려주는 것만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
⑥ 심문 때 피고에게 연루자들을 자백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사회로 확대하여 관련자의 숫자와 범위를 권력자나 혹리가 결정할 수 있게 한다.
⑦피고들의 자백을 정리하여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게 한다. 이렇게 과정이 끝나면 모반이라는 반국가적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선언한다. -<백양 중국사 2> 286쪽-

실제 이 나직경의 내용과 비슷한 대도살이 14세기 명조 주장원에 의해 한꺼번에 수만 명을 처형하는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졌으니 잘못 된 권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고 참혹하게 해칠 수 있는 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신화시대부터 20세기까지, 중국 역사를 통째로 꿰뚫은 <백양 중국사>

 <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옮긴이 김영수/역사의 아침/2014.3.30/1. 2만 8000원, 2. 3. 각 2만 5000원)
<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옮긴이 김영수/역사의 아침/2014.3.30/1. 2만 8000원, 2. 3. 각 2만 5000원)역사의 아침

<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 옮긴이 김영수, 역사의 아침)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에 빗대어 불리는 저자 백양(본명 곽의동)이 1968년 3월 7일, '인민과 정부의 감정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투옥되어 1977년 4월 1일 출옥할 때까지 9년 여간 옥중 집필해 출옥 후 펴낸 책입니다.


책은 전체 3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중국의 기원부터 동한 왕조의 멸망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화로 전해지는 '신화시대', 전설로 전해지는 '전설시대', 역사적 기록이 미비한 '반역사 시대' 그리고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인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의 중국 역사가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내용으로 장황하면서고 세세하게 펼쳐집니다. 

이 책의 특징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중국 연호, 연호로 기록되어 있는 무수한 중국 역사를 세기별로 구분하고 구분한 세기를 다시 10년 단위로 정리해 기록함으로 중국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태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시작하는 중국 역사는 창힐이 문자를 발명하고, 누조가 누에치기를 발명하고, 옷을 만들고, 집을 짓고, 수레와 배를 만드는 기술 등을 축적해 가며 기원전 시대를 열어갑니다.

기원전 841년. 곧 공화정치 첫해는 중국 역사의 문자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하는 해다. 이때부터 20세기까지 기록은 끊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인류 문명에 남긴 위대한 공헌 중 하나이다. 동시대 다른 문명고국들은 근본적으로 기록이 없거나 기록이 있었다 해도 벌써 없어져 오로지 고고학자의 힘든 발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백양중국사 1> 250쪽-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숫한 문자 중 그 문자의 창제자와 창제시기 그리고 창제원리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뿐이라고 합니다. 비록 전설 속 인물인 창힐이 발명한 문자지만 중국은 한자를 통해 제자백가 시대를 맞이하며 역사를 더해갑니다.

중국역사가 펼쳐지는 무대는 역시 중국이라는 국토입니다. 책에서는 연극이 펼쳐질 무대를 소개하듯이 제일 먼저 중국의 지리적 특성과 지형 등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중국 국토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펼쳐지는 중국 역사를 보다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국토 소개에 이어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 특징을 소개하듯이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인(종족)들의 외형적 특성은 물론 정신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 한 마디로 반복하는 흥망성쇠

2권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원 정부의 건립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등을 통해 귀에 익숙한 유비와 조조 등이 활약하던 3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중국 역사가 펼쳐집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송나라 역사를 3권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세민의 장점이 가장 주요한 요소였다. 그는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면서 무한 권력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독이빨과 접촉하지 않았으며, 정말 듣기 어려운 귀에 거슬리는 충고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관리들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군주가 스스로 남들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군다면 부하들은 틀림없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 들 것이다. 그 결과 군주는 나라를 잃고 부하들은 자신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 수 왕조의 재상 우세기虞世基는 양광에게 아부만 하면서 자신의 부귀를 가졌지만 결과는 죽음이었다. 모두 이를 경계로 삼아 국가의 큰일에 각자의 의견을 내고 반드시 나에게 보고하라!"-<백양중국사 2> 242쪽-

중국 제2의 황금시대를 열어간 당 왕조, 이연의 둘째 아들인 이세민에 대한 기록 중 일부입니다. 태평세대를 열어간 지도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독선적이지 않고 남의 말을 충분히 귀 기울여 듣는 소통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역사상 총 559명의 제왕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83명이 비명횡사했다. 그중에서 전지가 가장 비참했다. 요치가 왜 그렇게 잔인하게 전지를 다루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지의 존엄이라는 뼈대가 요치의 자존심을 너무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백양중국사 1> 451쪽-

어느 나라나 우여곡절의 역사적 배경을 비슷비슷하게 두르고 있겠지만 중국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흥망성쇠의 점철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공통분모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지도자들이 갖는 인품과 지도력, 역사적으로 지탄받는 권력자들이 보인 폭력적 결과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제각각인 듯싶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그 유사성이 보입니다.  

청군입옹(請君入瓮, '자 항아리 안으로 드시지', 무조 때 혹리였던 주흥이 아주 절친했던 친구를 항아리에 넣고 사방에서 불을 때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형벌)이라는 사자성어를 읽을 때쯤이면 무자비한 권력의 잔인함에 치가 떨릴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어떤 조작이나 날조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는 걸 실감

13세기 이후, '명 왕조의 흥기부터 청 왕조의 명망까지'는 3권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는 부산을 제외한 조선의 전 지역이 회복되었다. 다른 대국이라면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조선을 한 입에 삼켰을 것이다. 중국은 조선 국왕 이연에게 망명하지 말고 한성으로 돌아가도록 권했고 이연은 복권에 당첨된 기분으로 신이 나서 환도했다. -<백양 중국사 3> 151쪽-

조공을 오면 중국 정부는 반드시 풍부한 답례품을 딸려 보냈는데, 그 값어치는 조공으로 가져온 공물의 몇 배가 되었다. 조선은 중국이 답례품으로 내린 비단이 너무 많다며 계속 불만을 터뜨렸는데, 그 이유는 중국산 비단이 너무 많이 풀려 국내 방직업이 파산하고 결국은 농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답례품 외에 사절들은 조공을 바치는 동시에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한바탕 큰 거래를 했다.(사실은 이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 국가들은 전쟁과 같은 압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조공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백양 중국사 3> 311쪽-

책에는 우리나라(조선)와 관련한 내용도 몇 군데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기록하는 입장에 따라 역사적 사실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였던 도피 행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무능한 권력자가 주변국 역사에 얼마나 수치스럽게 기록되는 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 멱사의 한 페이지, 북경에 있는 천제단
중국 멱사의 한 페이지, 북경에 있는 천제단임윤수

조공을 받치지 못해 안달이라도 한 듯 보이는 기록들도 보이지만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입장이 다른 중국 역사에서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 다시는 그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으면 될듯합니다.

중국 역사는 매우 길고 복잡합니다. 그러함에도 차례대로 읽어가는 <백양 중국사>, 중국 역사를 세기별로 간추려 정리하고 있는 중국 역사는 신화나 전설을 읽는 만큼이나 재미있습니다. 권력을 쟁취하거나 유지해 나가는 과정은 칼싸움으로 섬광이 번쩍거리는 무협지를 읽는 만큼이나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역사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어떤 사실을 날조하려는 집단이나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목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떤 음모, 정말 쥐도 모르고 새도 모르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행하고 있을지라도 역사적 진실은 어떤 조작이나 날조로도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백양 중국사>를 통해 다시금 실감하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옮긴이 김영수/역사의 아침/2014.3.30/1. 2만 8000원, 2. 3. 각 2만 5000원)

백양 중국사 2 - 삼국시대부터 원 정부의 건립까지

백양 지음, 김영수 옮김,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14


#<백양 중국사> #백양 #김영수 #역사의 아침 #나직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