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옮긴이 김영수/역사의 아침/2014.3.30/1. 2만 8000원, 2. 3. 각 2만 5000원)
역사의 아침
<백양 중국사 1. 2. 3>(지은이 백양, 옮긴이 김영수, 역사의 아침)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에 빗대어 불리는 저자 백양(본명 곽의동)이 1968년 3월 7일, '인민과 정부의 감정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투옥되어 1977년 4월 1일 출옥할 때까지 9년 여간 옥중 집필해 출옥 후 펴낸 책입니다.
책은 전체 3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1권에서는 '중국의 기원부터 동한 왕조의 멸망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화로 전해지는 '신화시대', 전설로 전해지는 '전설시대', 역사적 기록이 미비한 '반역사 시대' 그리고 역사적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시대'인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의 중국 역사가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내용으로 장황하면서고 세세하게 펼쳐집니다.
이 책의 특징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중국 연호, 연호로 기록되어 있는 무수한 중국 역사를 세기별로 구분하고 구분한 세기를 다시 10년 단위로 정리해 기록함으로 중국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태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로 시작하는 중국 역사는 창힐이 문자를 발명하고, 누조가 누에치기를 발명하고, 옷을 만들고, 집을 짓고, 수레와 배를 만드는 기술 등을 축적해 가며 기원전 시대를 열어갑니다.
기원전 841년. 곧 공화정치 첫해는 중국 역사의 문자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하는 해다. 이때부터 20세기까지 기록은 끊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인류 문명에 남긴 위대한 공헌 중 하나이다. 동시대 다른 문명고국들은 근본적으로 기록이 없거나 기록이 있었다 해도 벌써 없어져 오로지 고고학자의 힘든 발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백양중국사 1> 250쪽-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숫한 문자 중 그 문자의 창제자와 창제시기 그리고 창제원리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뿐이라고 합니다. 비록 전설 속 인물인 창힐이 발명한 문자지만 중국은 한자를 통해 제자백가 시대를 맞이하며 역사를 더해갑니다.
중국역사가 펼쳐지는 무대는 역시 중국이라는 국토입니다. 책에서는 연극이 펼쳐질 무대를 소개하듯이 제일 먼저 중국의 지리적 특성과 지형 등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중국 국토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펼쳐지는 중국 역사를 보다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국토 소개에 이어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 특징을 소개하듯이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중국인(종족)들의 외형적 특성은 물론 정신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 한 마디로 반복하는 흥망성쇠 2권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원 정부의 건립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등을 통해 귀에 익숙한 유비와 조조 등이 활약하던 3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중국 역사가 펼쳐집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송나라 역사를 3권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세민의 장점이 가장 주요한 요소였다. 그는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하면서 무한 권력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독이빨과 접촉하지 않았으며, 정말 듣기 어려운 귀에 거슬리는 충고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관리들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군주가 스스로 남들보다 총명하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군다면 부하들은 틀림없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 들 것이다. 그 결과 군주는 나라를 잃고 부하들은 자신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 수 왕조의 재상 우세기虞世基는 양광에게 아부만 하면서 자신의 부귀를 가졌지만 결과는 죽음이었다. 모두 이를 경계로 삼아 국가의 큰일에 각자의 의견을 내고 반드시 나에게 보고하라!"-<백양중국사 2> 242쪽-중국 제2의 황금시대를 열어간 당 왕조, 이연의 둘째 아들인 이세민에 대한 기록 중 일부입니다. 태평세대를 열어간 지도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독선적이지 않고 남의 말을 충분히 귀 기울여 듣는 소통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역사상 총 559명의 제왕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83명이 비명횡사했다. 그중에서 전지가 가장 비참했다. 요치가 왜 그렇게 잔인하게 전지를 다루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지의 존엄이라는 뼈대가 요치의 자존심을 너무 큰 상처를 입혔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백양중국사 1> 451쪽-어느 나라나 우여곡절의 역사적 배경을 비슷비슷하게 두르고 있겠지만 중국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흥망성쇠의 점철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들이 공통분모처럼 들어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추앙받는 지도자들이 갖는 인품과 지도력, 역사적으로 지탄받는 권력자들이 보인 폭력적 결과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제각각인 듯싶지만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그 유사성이 보입니다.
청군입옹(請君入瓮, '자 항아리 안으로 드시지', 무조 때 혹리였던 주흥이 아주 절친했던 친구를 항아리에 넣고 사방에서 불을 때 허위 자백을 받아낸 형벌)이라는 사자성어를 읽을 때쯤이면 무자비한 권력의 잔인함에 치가 떨릴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어떤 조작이나 날조로도 가려지지 않는 다는 걸 실감13세기 이후, '명 왕조의 흥기부터 청 왕조의 명망까지'는 3권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는 부산을 제외한 조선의 전 지역이 회복되었다. 다른 대국이라면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조선을 한 입에 삼켰을 것이다. 중국은 조선 국왕 이연에게 망명하지 말고 한성으로 돌아가도록 권했고 이연은 복권에 당첨된 기분으로 신이 나서 환도했다. -<백양 중국사 3> 151쪽-조공을 오면 중국 정부는 반드시 풍부한 답례품을 딸려 보냈는데, 그 값어치는 조공으로 가져온 공물의 몇 배가 되었다. 조선은 중국이 답례품으로 내린 비단이 너무 많다며 계속 불만을 터뜨렸는데, 그 이유는 중국산 비단이 너무 많이 풀려 국내 방직업이 파산하고 결국은 농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답례품 외에 사절들은 조공을 바치는 동시에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한바탕 큰 거래를 했다.(사실은 이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 국가들은 전쟁과 같은 압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조공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백양 중국사 3> 311쪽-책에는 우리나라(조선)와 관련한 내용도 몇 군데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기록하는 입장에 따라 역사적 사실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였던 도피 행실을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무능한 권력자가 주변국 역사에 얼마나 수치스럽게 기록되는 지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