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대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북 추정 무인기와 부품들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사진은 배터리.
사진공동취재단
파주, 백령도, 삼척 등 전국 각지에서 발견된 무인기 문제로 정국이 시끄럽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는 군사 목적을 위한 무인기에 보급형 DSLR이 사용된 것에 대한 의문부터 엔진에서 연료 연소 시 나오는 검댕이 기체에 묻지 않아 실제 비행했던 것이 아니지 않으냐는 RC 마니아들의 주장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잠시 각종 문서(Document)를 검색·관리하기 위한 전산업에 종사했고, 이후 각종 폰트와 각종 문서 형식에 관심이 있는 필자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배터리에 붙여진 라벨이었다.
국방부는 지난 3일 파주 추락 무인기 배터리에 '날자'라는 글자가 포함된 라벨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당시 국방부는 남한에서 사용하는 '날짜'와 표기법이 다른 '날자'가 북한 사전에 등재된 표현으로 이것이 무인기가 북한에서 왔다는 증거라고 밝힌 바 있다.
문서가 증거가 되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과연 그럴까? 간단한 가정을 해보자. 만약 배터리에 아랍어로 날짜에 해당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으면, 이건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까? 그것이 성립하려면 문서 보안의 기본 원칙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서 관리 측면에서 보면 날짜가 쓰여진 이 라벨도 일종의 문서다. 이 문서가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유일성(Unique)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다른 복제품이 있어서 안 되며, 설사 있더라도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문서보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위조불가(unforgeable), 자신이 서명(혹은 작성)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도록 하는 부인 방지(non-repudiation), 문서 내용을 인증(authentic)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군사용 무인기, 그것도 외신들이 '장난감'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무인기 배터리 라벨에서 이런 원칙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다. 하지만 무인기에 포함된 다른 문서들은 그런 정보를 갖고 있다. 카메라 제조 일련번호가 대표적이다.
카메라 제조 일련번호는 제조사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번호이며, 이를 변경할 경우 흔적이 남을 뿐더러 제조사를 통해 생산일시, 판매경로 등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있다. DSLR 마니아들이 국방부에 카메라 일련번호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터리 라벨은 이러한 기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기용날자'가 한컴 바탕체일까? 글쎄?그럼 배터리 라벨은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는 않다. 서체(폰트)에는 많은 정보가 숨어 있다. 하지만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과연 '기용날자'는 한컴바탕체로 만들어진 글자일까? 안타깝게도 현재 언론에 보도된 크기의 사진으로는 '기용날자'의 서체를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