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사고 16일째인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권우성
좋다. 정부여당은 그렇다 치자. 야당이 문제다. 도대체 지난 보름 동안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뭘 하고 있었나.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찔끔찔끔 논평이나 정부 비판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나 정부 고위 관료들의 부적절한 언동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같은 구설에 휘말리지 않을까 몸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당의 역할이 그게 다인가.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능력이 형편없을 때 야당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향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지 청사진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향후 위기대응체계는 어떻게 바꿀 것이며, 어떤 예산을 얼마나 늘릴 것이며, 관련 전문 인력은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각종 안전 관련 규제들을 전면 재검토해 규제를 강화하는 등 어떻게 안전성을 확보할 것이며, 돈벌이와 비용절감에 혈안된 기업 풍토는 어떻게 바꿀 것인지, 정부와 업계의 유착 구조는 어떻게 근절할 것인지에 대한 야당 나름대로 전략을 준비하고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선장과 주요 승무원들은 정규직으로 한다든지, 이들에 대한 안전훈련과 교육은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일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론 눈치나 살피고, 대통령의 사과 같지 않은 사과에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비판을 자제했다가 국민 여론이 좋지 않자 뒤늦게 성토에 나서는 야당, 국정조사야 당연히 해야 하지만, 국민 눈에는 뻔해 보이는 주장이나 하고 있으면 그게 무슨 수권능력을 갖춘 대안정당이란 말인가. 정부여당처럼 전략적이지도 않고, 새정치의 기풍도 없다.
지금 국민들이 슬퍼하고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 한없이 무기력감을 느끼는 이유는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권 보위에 여념 없는 정부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조차 비겁하고 무기력하다. 시민단체도 무기력하며 과거의 영향력과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일부 양심적이고 좋은 언론들이 있으나 그들의 힘은 미약하며 정부에 장악된 방송과 기득권신문들의 왜곡보도와 여론 호도가 넘쳐난다. 도대체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과 전문가 그룹들은 뭘 하는가. 관련 업계에서 나오는 용역비, 정부의 각종 용역과 학술진흥재단 연구비, 대학 평가 등에 얽매여 제 목소리 하나 못 내고 숨죽이고 있는 건가.
지금 국민들이 절망하는 것은 사고 첫 날 이래로 생존자 수가 단 한명도 늘지 않았고, 그것이 거대한 유착과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것을 생생히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사고가 일단락돼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다음에 또 다시 이런 사고가 어딘가에서 되풀이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구조를 고치거나 과감히 문제제기하는 신뢰할 만한 정당도, 세력도, 집단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녕 대한민국은 죽었는가.
이번 사고, 국가 시스템 근간 뒤흔드는 문제이번 사고는 국가 시스템의 근간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뿌리째 허물어져 있으며,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절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이 문제야말로 여야 가리지 않고 정당이 나서야 하며, 이념과 학문적 입장 가리지 않고 지식인과 전문가 그룹이 발언해야 하는 사안 아닌가.
이번 일을 당하고도 대한민국이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깊은 절망과 냉소주의로 흐를 것이며, 이 나라는 어쩌면 퇴행을 거듭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형태는 남아 있되, 실제로는 망해버린 나라가 된다.
그렇다고, 비관할 일만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근본적 개혁에 나설 힘을 축적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찰스 두히그 <뉴욕타임스> 기자의 저서 <습관의 힘>에서 소개된 철강기업 알코아의 CEO를 역임한 폴 오닐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백악관 직속 관리예산국(OMB) 국장을 역임한 이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철강업체 알코아의 CEO를 역임했던 폴 오닐은 당시 경쟁력이 뒤처져 있던 사양기업 알코아를 되살리기 위해 '안전사고 제로'에 도전했다.
안전사고가 제로가 되려면 철저한 공정관리와 품질 관리가 수반될 수밖에 없고, 직원들을 최우선시하는 회사 방침이 직원들의 사기를 고양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고 실제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관리자를 바로 해고하는 등 조직의 습관이 바뀔 때까지 강력하게 목표를 추진했다. 그 결과 알코아는 전세계에서 산재율이 가장 낮은 기업이 됐을 뿐만 아니라 폴 오닐의 재임기간 동안 알코아의 수익은 15배나 증가했다.
물론 기업 차원의 사례를 곧바로 국가 수준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화두 하나로 전체 조직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 나라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개발도상국으로 급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뿌리 내린 생명경시와 안전경시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지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말로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도 관련 예산은 줄이고, 두 달 여 전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를 겪고도 국가 위기대응 및 재난관리시스템을 다시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은 박근혜정부가 '말 따로, 행동 따로'였음을 보여준다. '안전'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임기 내내 이 같은 인명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폴 오닐이 그랬던 것처럼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내세워 끈질기게 추진하기 바란다.
그것이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생때 같은 이 땅의 아이들을 숨지게 한 데 대한 최고 국정책임자의 당연한 의무이자 최소한의 도리다. 야당도 환골탈태해 이 사고의 근원을 뿌리까지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식인과 전문가 그룹들은 양심과 전문성에 기초해 어떤 개혁이 필요한지 제시해야 한다.
여야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이번 사태의 문제점과 재발 대책을 각 전문 분야별로 정리해 공감을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제발 응답하라, 책임 있는 자들이여! 이 나라와 우리 아이들이 더 죽어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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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권, 사라진 야당...대한민국은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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