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통일의 원칙'은 왜 지켜지지 못했나

[주장] 세월호는 우리나라의 자화상이다

등록 2014.05.08 10:50수정 2014.05.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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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가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여객선이 침몰했다. 7일 해경 집계 결과, 탑승객 476명 중 구조자 172명을 제외한 3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나는데 가족들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다.

사고 첫날 세월호 선장이 학생들과 승객들은 침몰하는 배에 남겨두고 도망쳤다는 기사를 들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선장 맞아?' 자신만 살겠다고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깊은 바다 속으로 빠뜨린 그에게 마구 돌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친구가 "그 선장이 계약직, 비정규직이래. 비정규직을 차별하니까 문제가 터지지. 그게 문제야"라고 했다. 나는 조금 화가 나서 "선장은 어쨌든 선장이지. 비정규직이라고, 선장이 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놔두고 내려? 그래선 안 되지. 이건 비정규직, 정규직의 문제가 아니야"라고 했다.

그런데 계속 비리가 터져 나왔다. 해경의 부실한 초동대처, 수명이 다한 낡은 배의 무리한 증톤 및 개조, 기준보다 3배 많은 화물 적재, 선주인 청해진해운의 각종 비리, 한국선급의 부실한 안전점검, '해피아'라고 불리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관련 기관들의 이권밀착, 중앙정부의 재난안전체계 미작동 등 각종 비리와 부패가 썩은 쓰레기처럼 꼬리를 물고 계속 끌려나온다.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다음 날 세월호의 실질적인 지휘는 정규직인 1급 항해사가 했다는 말이 들렸다. 사고가 났을 때 청해진해운에 처음 전화를 한 것도 항해사였다.

조직설계 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명령통일(Unity of Command)의 원칙'이 있다. '부하는 한 명의 상관으로부터만 명령을 받는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조직의 최고 명령권자는 한 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한명의 상관은 '진격'을 명령하고, 다른 상관은 '후퇴'를 명령하면 그 부대는 전멸한다.


전쟁이라든가 항해하는 배의 경우에는 특히 예기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어디보다 명령통일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세월호에서 선원들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지휘권자는 정규직인 1등 항해사였다.

그렇지만 사고가 나자 항해사나 선장은 청해진 해운 해무담당자들의 명령을 기다렸고 해무 담당자들은 사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배안에는 이 상황을 책임질 수 있는 최고 명령권자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은 나의 일이 아니니까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고 학생들은 전원 구조했다는 보도를 들었다. 그 순간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오보로 밝혀져 충격이 더 컸지만 말이다. 동시에 '저 배 증축한 것 아니야'하는 의심이 들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최근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사고를 접하면서 은연 중에 트라우마가 생겼나보다.

몇 년 전 재난사고 이후에 TV에서 안전과 관련한 다큐를 보도했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싱가포르에서 수주를 받아 빌딩을 짓는 현장이었다. 지반을 구축하고 2층까지 건물을 지었는데, 싱가포르 감독이 건물을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건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 이유는 "건축 설계도면에 철근이 25cm 간격으로 되어 있는데 왜 20cm간격으로 했느냐. 과학적으로 실험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안전을 고려해 설계도면을 만든 건대 왜 원칙대로 하지 않느냐. 10년, 20년 후에 건물이 붕괴되거나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현장 감독은 "시멘트보다 철근이 더 비싸고 튼튼하니까 3층부터는 25cm로 건축하겠다"고 했다. 끝까지 거부하던 싱가포르 현장 감독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해를 여행할 때 배를 탄 적이 있다. 갑판에 서서 드넓고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니 움츠려졌던 가슴이 짝 펴졌다. 배로 여행하는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쇠로 만든 이렇게 육중한 배가 가라앉지 않고 바다에 뜬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배들이 바다에서 뒤집혀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를 안전하게 설계해야할 뿐만 아니라 배안에 평형수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세월호의 경우 일본에서 18년을 사용한 노후 한 배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세월호를 우리나라 선주인 청해진해운이 사온 것이다. 그런데 돈을 더 벌기 위해 승객을 더 태울 수 있도록 수직증축을 하고,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를 뜯어내고 증톤을 한 것이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에는 규정된 화물 적재량의 3배를 싣고 출항을 했다. 과적한 화물을 제대로 묶지도 않은 채 말이다.

재난이 일어나면 분초를 다투어 급구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이다. 배의 설계도는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비해 안전을 고려해 만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설계 도면과 다르게 변경을 하면 반드시 균형이 깨진다. 그래서 변경을 하면 신고를 하고 다시 안전점검을 받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바다를 오가는 배라든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이나 아파트를 불법으로 증축하거나 개조를 한다. 그리고 정부, 사회, 그리고 심지어 개인들도 마음 좋게 묵인을 해준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말이다. 배의 침몰이나 건물 붕괴의 일차적인 원인인데도 지금 당장은 나의 일이 아니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양건모 기자는 정의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세월호 침몰 #이준석 선장 #비정규직 #명령통일의 원칙 #정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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