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가 말하는 불복종의 권리

[김성호의 독서만세④] <시민의 불복종>

등록 2014.05.17 14:50수정 2022.10.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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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이레'에서 나온 <시민의 불복종> 표지 ⓒ 이레

우리의 사회에 불의의 법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엔 세 가지가 있다. 법이기에 그 법을 지키는 것. 법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폐지되기 전까지는 준수하는 것. 마지막으로 법을 부정하고 어기는 것이다. 헨리 소로우는 여기서 세 번째 선택을 한 사람이다.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계약에 의해 구성한 단위이다. 이 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개인들은 헌법이라는 규범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 규범과 구조, 체계 등을 성립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제정된 헌법은 개인들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고 그 국가에 소속된 개인은 이 헌법을 준수할 의무를 지게 된다.    <시민의 불복종>에서 소로우는 불의의 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다고 행하는 일을 하는 것을 당대의 법이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은 정의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법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 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시민의 불복종, 본문 13P)




사람들은 그에게 법이 일면 악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필요악일 것이라고 설득한다. 법이 없다면 소로우처럼 정부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이 너무나 쉽게 정부에 대한 의무를 거부할 것이며 법이라는 강제적 규범을 갖지 못한 정부는 존립자체가 위태로워 질 것이라고.



그러나 소로우는 부당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와 정의를 숭상하는 국가가 그 스스로 노예제를 긍정하고 부당한 멕시코전쟁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는 식의 저항은 한 미약한 지식인이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정당한 행위라고 그는 부르짖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동안조차도 정부의 방침과 기조에 대해 알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는 이 미국 정부 또는 그 대리인인 주 정부를 일 년에 딱 한 번 세금 징수원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것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정부를 대면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 때 정부는 '나를 인정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때 당신이 정부에 대해 만족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효과적이며 또 현재의 조건에서 가장 불가피한 방식은 바로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다."(시민의 불복종, 30P)



"오히려 나는 이 나라의 법에 순종할 구실을 찾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언제라도 기꺼이 그 법을 따를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의심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세금 징수원이 찾아올 무렵이면 나는 그에 순응할 구실을 찾기 위해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취한 각종 조치와 그들이 처한 입장, 그리고 국민의 기본정신을 살펴보는 것이다."(시민의 불복종, 51P)



이와 같은 내용은 소로우가 무조건적인 불복종입장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소로우가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정부 체제의 모순 때문이다. 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정의로운 규칙을 지키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좇아 자신들의 국가기조와 어긋나는 노예제를 인정하고 멕시코 전쟁을 주도함으로써 이미 그 자유와 정의라는 숭고한 선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또한 양심있는 지식인이 이러한 부정의에 대해 항거할 수 있는 통로조차 만들어 놓지 않아 소로우는 불복종 이외의 항거 방안을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양심과 선을 지키기 위하여 정부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저항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혁명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1775년의 혁명은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한다."(시민의 불복종, 16P)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majority of one)'라는 개념은 이러한 상황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 말은 단 한 사람이라도 도덕적으로 우위이면 그는 다른 여러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는 뜻으로 다수결을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큰 개념이다. 당시 소로우는 미국 정부의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였고 스스로 '한 사람으로서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소로우를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였다는 명목으로 투옥하였고 그에게 어떠한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스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정의롭지 못한 단체의 일원이기를 거부한 소로우의 행위는 그가 국민 이전에 한 양심적인 개인으로서 택할 수 있었던 가장 효율적이며 불가피했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부당한 국가의 행위에 반대하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통로들이 18세기 당시에 비해 보다 넓게 열려있기에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복종이 시대를 초월한 법칙으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오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면 소로우의 불복종이 주는 교훈이 더는 책 속의 낡은 교훈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로우의 긍정적 영향과 우리의 지향   소로우가 주장한 시민불복종이라는 개념은 현대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이상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수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는 바로 이 점들을 주시해야 한다.   헨리 소로우가 쓴 이 글에서 시민불복종이란 전체 법질서의 정당성은 긍정하면서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개별법령이나 정책을 부정하는 소극적 저항을 말한다. 이 개념은 대영제국의 침탈에 항거한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미국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시민불복종에서 파생된 이러한 비폭력 운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앞으로도 많은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와 개인을 분리해 생각하기 보다는 서로의 연관을 인정하고, 사회를 발전시킴으로써 개인의 삶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불의에 대한 저항을 무조건적인 불복종이 아닌 보다 새롭고 민주적인 방법을 통하여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사회 일반이 동의하지 않고 동의할 수도 없는 야만의 정부라면, 그를 타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마련해두어야 할 테지만.
덧붙이는 글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이레 펴냄, 1999년 8월, 212쪽, 7000원)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이레, 1999


#시민의 불복종 #헨리 소로우 #멕시코 전쟁 #노예제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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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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