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가족에게 보내는 편지희생된 단원고 친구들의 유가족을 떠올리며 쓴 듯한, '아들 딸의 빈자리 저희가 채워드리겠다'는 글귀도 보인다.
서부원
얼마 전 교직원 회의 시간을 빌어, 전 학년 아이들과 함께 분향소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교육부로부터 1학기 중 모든 교내외 행사를 '자제'하라는 긴급 공문이 하달된 바로 직후였다. 주지하다시피, 그 이후, 추모 집회 참석을 금지하라는 등의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부쩍 강조하는 공문이 쏟아졌고, 학교 안팎으로 교실수업을 제외한 일체의 교육활동은 모두 사라졌다.
5월은 학교에서 교내외 행사가 가장 많은 달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이 크겠지만,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등 기억할 만한 기념일이 많아, 여느 달에 견줘 이른바 '교육적 활용 가치'가 큰 때다. 학교마다 소풍도, 체육대회도, 문학기행 등 학부모활동도, 동아리활동이나 진로탐색활동 같은 체험학습도 대부분 5월에 집중적으로 편성돼 있다. 그런 '5월'이 학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고3이라 주말에도 공부해야 하니... 우리 스스로 분향소를 만들자"교육부의 '추상같은' 공문이 아니었다면, 단언컨대, 전국 학교마다의 5월은 세월호 참사의 추모 물결로 넘실댔을 것이다. 관행에 따라 학교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죽인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제대로 추모하는 방법이라 여긴 교육부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 지침은 교사와 아이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군대 조직을 방불케 할 만큼 교육부 공문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국의 모든 학교의 계획된 1학기 행사를 순식간에 중지시켜버렸다. 행사의 교육적 가치를 운운하는 건, 추상과 같은 정부의 명령을 거역하는 짓이며, 졸지에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패륜아'로 치부될 판이었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무한 책임'을 그 공문 한 장으로 확실하게 학교에 전가시켜버렸다.
분향소로 소풍 가자는 제안에 많은 동료교사들이 교육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며 동조했지만, 끝내 시행되지는 못했다. 어떻든 공문에 적시된 교육부의 지침을 거역하기는 곤란하다는, 뿌리 깊은 관행이 작용한 결과다. 예컨대, 아무리 좋은 취지라지만 분향소로 가다 아이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사뭇 '억지스러운' 두려움마저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다.
상급기관의 책임마저 일선 학교에 떠넘기는 무능한 교육부와, 그런 행태를 너무나 잘 알기에 공문 내용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공문이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학교가, '어른'이랍시고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부와 학교가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를 욕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참사는, 교사와 학부모, 심지어 아이들에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부 공문을 받고 교사들은 움찔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는 와중이지만,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학교에 분향소를 차릴 생각을 할 만큼 성숙해있다. 아이들 앞에서 먼저 추모의 본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그들이 차린 가로수 분향소에 찾아가 '숟가락을 얹는'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어른'이라는 말조차 부끄러운 시절, 그렇게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다. 그날은 애꿎게도 스승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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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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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로수 분향소' 만든 아이들... 어른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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