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기다리겠습니다"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에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희훈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왕조시대나 독재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이상함이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석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 추모제가 열렸다. 필자도 그 취지를 공감하며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참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큰 충돌 없이 무사히 추모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삼촌, 이건 아닌 듯..." 종종 경제나 사회 문제를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조카의 문자였다. 모 대기업에 갓 입사한 20대의 나름 건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라 생각한다. 이 조카의 요지는 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집회나 시위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묻느냐 하는 것이다.
나름 건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20대가 물어오는 질문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필자에겐 충격적이고 낯선 경험이었다. 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가 있다.
첫째,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부나 대통령은 주인된 국민의 주권을 잘 지켜 달라고 세금을 내고 고용한 공무원일 뿐이다. 주인이 잠시 동안 주인의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탁해준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은 우리를 잘 다스려줄 지배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잘 지켜 줄 유능한 고용인을 선발하는 면접시험과 같은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고용인과 주인의 관계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민주주의의 당연한 참 명제라 생각한다.
고용된 자가 주인으로부터 위탁받은 권리를 남용하고 오용한다면, 주인된 자가 고용인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그 진의를 가려서 부족하다면 더 유능한 고용인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주인된 자의 정당한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고용인이 자신의 과오에 대하여 일체의 사과의 말도 없이 오히려 자신들의 과오를 축소하고 은폐하려 한다면, 주인은 그 고용인에 대하여 국민의 힘과 권력으로 징계하고 처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처사다. 여기에 왜 의문부호가 생기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의문부호가 생기는 원인을 필자는 아직도 대한민국이 독재의 그늘에게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여러 독재자를 거치면서 충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민주공화국의 개념은 상실한 채 오랫동안 살아 왔다. 물론 수많은 선열들의 피의 대가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그 잔재의 청산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사회에 있어서 집회나 시위는 지배자에 대한 모반이나 반역이 아니라, 부당함에 대하여 권력의 주인이 정당하게 드는 회초리인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갖는 모든 의문부호는 아직도 봉건과 독재에 머물고자 하는 정신적 노예근성이고,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에 대한 철학적 부제에 지나지 않는다.
일인 왕조 통치나 종교적 집단 혹은 다른 소수의 지배집단들이 재화를 독식하는 지배구조를 다수의 국민이 재화를 공유하는 구조로 바꾼 것이 민주주의이다. 수천 년의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이 값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금 허상의 지배계층에 반납하려는 무지의 소치가 이 의문의 정체인 것이다.
노예로 머물겠는가, 아니면 주인이 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당연한 답이 나오는 질문을 왜 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민주주의 일원임에 틀림이 없는데 왜 의문부호를 찍는지 필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 수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