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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우리 문장 올바로 쓰는 방법

등록 2014.05.27 18:42수정 2014.06.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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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데, "나? 나는 나지"라고 대답하면 좀 황당할지도 모른다. "그럼 인간이란 뭐지?"라고 재차 물었더니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인간이야 당연히 인간이지."

성철 스님이 생전에 남긴 '말씀'이 있다. 누군가 그 어른에게 '산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산이라고 했단다. 그럼 물은 무엇입니까? 마찬가지 대답이 돌아오더란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이다. 앞서 제시한 문답과 비슷한데 이건 경우가 좀 다르다. 정리하면 이렇다.

천지간 삼라만상이 섭리에 따라 저마다의 가치를 갖고 존재하는 법이다. 산을 물이라고 우기지 말라. 물을 산이라고 억지를 부리지도 말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나'와 '너' 또한 같지 않음을 인정하라. 그래야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 세상 또한 밝아질 것이다. 성철 스님의 '말씀'에 담긴 뜻이다.

말씀은 말씀이고, 문장은 문장이다. '이 노래는 가왕 조용필이 부른 노래다'라는 문장의 틀은 '산은 산이다'나 '물은 물이다'와 같다. 이건 어떤 사실을 전달하려고 쓴 문장이다. 이 문장의 주어는 사실 전달의 대상인 '이 노래'다. 그런데 서술어에도 같은 말이 보인다. 서술어의 '노래'를 빼고 '이 노래는 가왕 조용필이 불렀다'라고 써야 맞다. '이건 가왕 조용필이 부른 노래다'라고 써도 무난하다.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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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화면이다. 주어와 서술어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잘못된 문장이다. ⓒ 송준호


위 그림에 적힌 건 우리 눈에 익은 문구다. 우리나라 TV 방송사에서는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직전에 예쁘게 디자인한 문구를 시청자들에게 먼저 보여준다.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시청해도 무방한 연령대를 미리 지정해 안내해주자는 뜻일 게다.

그런다고 그걸 지키는 어른이나 애들이 어디 있을까. 어떤 '19금' 딱지도 아랑곳하지 않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런 걸 말하자는 게 아니다. 쓰려거든 우리 문장의 규칙에 맞게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서 하는 소리다.


이 문장은 그림에 적혀 있는 것처럼 특정 TV 방송사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여러 공영방송에서 지속적으로 써온 문장이다. 설마 내로라하는 공영방송에서 뭘 잘못 썼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림에 적힌 문구를 읽어보자.

'이 프로그램은 12세 미만의 어린이가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므로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한 프로그램입니다.'

앞서 제시된 '이 노래'처럼 이 문장의 주어는 '이 프로그램은'이다. 서술어는 물론 '프로그램이다'다. 어떤가. 주어와 서술어에 모양이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지 않았는가. 둘 중 하나를 빼고 다음과 같이 써야 완전한 문장에 다가갈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므로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렇게 써도 잘못은 남아 있다. '시청'이라는 말을 두 번 썼기 때문이다.

하나의 짧은 문장에 이렇게 똑같은 말은 주어와 서술어가 아니라도 반복해서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 중 하나를 빼면, '어린이들이 시청하기에'를 '어린이들에게'로 간략히 쓸 수 있다. 차라리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낫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하므로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하므로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따로 있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이상은 누구나 시청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12세 미만의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합니다. 이처럼 과감히 줄이면 된다.

누구일까, 엉터리 문장을 바로잡을 이는...

또 있다. 각종 컴퓨터 게임에 적힌 안내문이다. 일반적으로 안내문에는 '본 게임물은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으로서 사행성이 우려되며 18세 미만의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용하기에 부적절한 게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하나의 문장 안에 '게임'을 세 번이나 썼다. '이용불가'나 '이용하기에 부적절'도 같은 뜻 아닌가. 한자말 '본'(本)도 거슬린다. '이 게임물은 사행성이 우려되므로 18세 미만의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용하기에 부적절합니다'라고 쓰면 훨씬 간명하다. '이 게임물은 사행성이 우려되므로 18세 미만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부적절합니다'라고 쓰면 더 좋다.

유치환이 쓴 <깃발>이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아! 누구인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걸 좀 바꿔본다.

'아, 누구인가? / 이런 엉터리 문장을 만들어서 / 맨 처음 TV 화면이나 컴퓨터 게임 모니터에 과감하게 띄울 줄 안 그는….'
'아, 누구일까? / 이 문장의 잘못을 맨 처음 수정해서 / 바르게 사용하게 될 TV 방송사나 컴퓨터 게임 제작자는….'
#문장 #주어 #서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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