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제안자 용혜인 학생지난 23일(금) 오후 3시 눈 뜰새 없이 바쁜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 용혜인 학생을 경희대 정문에서 만났다.
배도현
용씨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무렵 '전원구조' 됐다는 오보에 연이은 자극적인 보도, 과장된 구조상황, 탄로 난 거짓말을 지켜보면서 무기력하고 괴로웠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뉴스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침몰 현장을 뉴스 뒤 배경으로 하여 생중계하고 있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 용씨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체 방송을 뉴스에서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세월호에서 수많은 학생을 죽게 만든 말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용인됨과 동시에 사회적 명령처럼 생각하고 있던 말이기도 하잖아요. 단순히 세월호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함의라고 생각했어요." 용씨는 우리 사회의 정해진 길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능공부만 하다가 대학가면 취업준비, 취업 후에는 취집이라는 말까지 '삶'을 요구받는 우리사회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용씨는 세월호 사고를 사회적 시스템 문제로 빗대었다.
세월호 사건 초반에 선장이야기로 가득할 때, 적은 임금으로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선장, 선원의 고용계약 시스템을 먼저 봤다. 여객선 제한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면서 안전 보강한 것은 없는 현실, 54만 원의 안전교육비와 대비되는 6000만원의 접대비를 보면서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에게 맴돌았다. 비용 절감이 기업의 미덕, 경영자의 미덕이지만, 그 비용이 국민의 생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크게 실감한 모습이었다.
그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로 휴학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해 4학년 1학기로 재학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낮은 학점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관심을 갖던 지난달 19일(토) 분노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려고 진도로 걸어갔었잖아요. 근데 그때 경찰들이 사고 현장에서 가장 '유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경찰버스를 동원해서 실종자 가족들을 막아서고···. 그때 너무 충격 받았어요."용씨는 그 길로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던지겠다고 생각하며 3-4명의 친구들과 준비했다.
그렇게 지난달 29일(화) 청와대 게시판에 침묵시위를 하자고 글을 쓰며 다음날인 30일(수) 모이자고 제안했다. 30명 정도 모이면 많이 모인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날 침묵행진에 250명 가량이 참여했다.
"사회적 명령에 대한 화두를 던졌을 뿐인데, 이 같은 반응에 깜짝 놀랐어요. 침묵행진의 의미는 간단한데, 우선 추모의 의미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침묵행진은 지난달 29일(수)부터 지난 24일(토)까지 매주 200여 명씩 꾸준히 함께하며 잊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34년 만에 반복된 5·18의 기억매주 토요일마다 침묵행진이 열리지만, 지난주는 5.18을 기념하고자 예외적으로 일요일인 18일에 열렸다. 추모행진은 집회신고가 필요 없지만 경찰의 일정부분을 협조하려고 동화면세점 앞은 집회신고를 했다. 이후 청계 광장에서 공식 행진을 마무리 짓고, 용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청와대 앞으로 행진했다. 추모집회에 평화적 시위로 일관한 시위대를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그 날 함께 행진한 100여 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연행 과정부터 유치장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더니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사지가 다 잡힌 연행과정에서 팔목을 아프게 꺾기에 꺾지 말라고 했더니 경찰이 웃으면서 더 꺾었다고 한다. 지금도 욱씬거린다며 팔목을 내비쳤다.
"땀을 흘린 상태에서 연행되니 연행된 날부터 씻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틀 동안 못 씻게 했어요. 사식 또한 저희가 돈 내고 먹으려고 차감한 것을 적었는데 경찰이 저희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취소시키기도 하고···."조사과정에서는 유도심문이라 볼 수 있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알바노조 위원장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며, 유령단체 '세월호 추모 청년 모임'의 회원인지 물어보는 등 사건과 상관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했고 그는 진술거부 했다. 이에 형사가 '진술 거부한다는 것은 물어본 질문을 인정하는 것이냐'고 재 질의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연행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참여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단체나 조직으로 묶으려 한 것으로 보였어요. 심지어 18일 아침에 통화한 기자들이 '세월호 추모 청년 모임'을 언급하는 등 의심가는 징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