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같은 농장은 안 해... 아들 이름 걸었다"

제1호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 전남 해남 '강산이야기' 강민구 대표

등록 2014.06.10 10:54수정 2014.06.1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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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 있는 양돈농장 '강산이야기'의 강민구 대표가 농장 잔디밭에서 새끼돼지들과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이돈삼


"물론 어렵지요. 돈도 많이 들고. 그래도 공장 같은 농장은 안 만들려고요. 동물도 행복을 누려야 하고, 그게 사람한테도 안전할 것 아닙니까. 아들 이름(강산)을 걸고 복지농장의 모델로 만들려고요."


'땅끝마을' 전남 해남에 있는 양돈농장 '강산이야기'의 강민구(37) 대표의 말이다. 친환경 양돈을 실천하는 농가들이 모여 만든 영농조합법인 '강산이야기'는 대한민국 제1호 동물복지 양돈농장이다. 최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인증을 했다.

동물복지 농장 인증은 열악한 사육환경에 놓인 동물의 복지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인증 조건이 까다롭다. 새끼를 밴 돼지(모돈)의 철제 우리 사육을 금지한다. 짚풀도 의무적으로 깔아줘야 한다. 관행적으로 해오던 새끼돼지의 꼬리나 송곳니를 잘라서도 안 된다. 사료에 항생제 같은 첨가물을 넣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강산이야기는 이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켰다. 이렇게 기른 돼지를 도축한 경우 돼지고기에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붙여 팔 수 있다.

해남 양돈농장 '강산이야기'의 돼지 축사 모습. 돼지들이 톱밥이 두둑하게 깔린 축사에서 뒹굴고 있다. ⓒ 이돈삼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강산이야기'의 양돈농장. 농장이 모내기를 끝낸 논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보인다. ⓒ 이돈삼


강산이야기는 겉보기에도 다른 농장과 다르다. 아기돼지들이 톱밥 두툼하게 깔린 우리에서 자유롭게 뛰논다. 운동량이 많다. 스트레스도 낮다. 농장의 공기도 쾌적하다. 다른 양돈장과 달리 악취가 거의 없다. 항생제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미생물이 분뇨를 제대로 발효시킨 덕분이기도 하다.

이 분뇨는 퇴비로 논밭에 뿌려진다. 작물도 쑥쑥 자라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준다. 농산 부산물은 다시 동물에 공급돼 자연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축사도 개방형이다. 아침엔 가림막을 올려 햇살이 들게 한다. 한낮에는 일정 부분 내려 강한 햇볕을 막아준다. 환기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외부인의 축사 출입은 엄격히 통제된다. 어쩔 수 없다면 철저한 방역을 거쳐야 한다.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도 낀다. 전염병을 막고 쾌적한 사육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해남 양돈농장 '강산이야기'의 축사 내부. 어미돼지와 새끼돼지가 함께 노닐고 있다. ⓒ 이돈삼


축사 내 환경도 여유가 묻어난다. 보통 3.3㎡에 네댓 마리씩 넣어 옴짝달싹 못하는 데 반해, 여기는 두 마리씩 들어가 있다. 몸놀림이 그만큼 자유롭다. 새끼 밴 돼지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선 발걸음마저도 사뿐사뿐 내딛는다.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배려다. 철제 우리도 없다. 널찍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다.

바닥에는 톱밥이 두툼하게 깔려 고슬고슬하다. 새끼를 낳을 돼지들이 사는 곳엔 출입 자체를 막는다. 새끼돼지들은 개방형 우리에서 맘껏 뛰논다. 어린 돼지의 습성 그대로 몰려다닌다. 바닥에 깔린 톱밥 덕분에 다칠 염려도 없다.

먹이도 항생제를 치지 않은 사료만 준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논에서 나온 볏짚과 부산물로 영양도 챙긴다. 소화가 잘 되면서 살이 토실토실 오른다. 병치레도 없다. 면역력이 높아진 덕분이다. 그만큼 품질로 차별화된다.

돼지의 본능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돼지 축사의 모습. 돼지들이 철제 우리 안에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살을 찌우고 있다. ⓒ 이돈삼


알만 낳도록 가둬 사육되고 있는 양계장의 모습. 실내까지 캄캄하게 해 시도때도 없이 알만 낳도록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돼지고기 유통업을 할 때였어요. 한 농장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죠. 어미돼지가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서 새끼만 낳고 있더라고요. 햇볕 한 줌도 못 보고요. 이렇게 자란 돼지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싶더라고요."

강 대표의 말이다. 그가 동물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지난 2007년이었다. 그날 이후 강 대표는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에 대해 고민했다. 최소한의 생존조건은 갖춰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의 복지농장 자료도 뒤적였다.

축사를 직접 설계했다. 건강한 돼지를 직접 키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듬해 말 황산면에 새로운 개념의 축사를 지었다. 동물복지 농장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송호리와 일신리 2곳에서 돼지 290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해남 양돈농장 '강산이야기'의 축사 모습. 새끼돼지가 어미돼지를 따라 다니며 젖을 물고 있다. ⓒ 이돈삼


'강산이야기'의 새끼돼지들. 강민구 대표가 풀어놓은 농장 앞 잔디밭에서 한때를 보내고 있다. ⓒ 이돈삼


강산이야기는 유통에도 직접 나섰다.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사업장의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도 받았다. 유통은 정육과 가공육으로 이뤄진다. 판매는 직영 매장과 생협연대 등 친환경 매장, 서울의 일부 백화점을 통해 하고 있다.

값이 조금 비싸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다. 육질이 부드럽고 맛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떡갈비와 훈제, 햄, 소시지 등도 자체 공장에서 가공해 학교급식 등에 납품한다. 공장은 농공단지에 들어서 있다.

"축산물도 이젠 품질과 안전을 먼저 생각하잖아요. 동물복지형 친환경 축산으로 가야 해요. 앞으로 사육에서 판매까지 동물복지 기준을 적용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입니다."

강 대표의 말에서 동물복지형 축산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강민구 '강산이야기' 대표가 농장 잔디밭에서 새끼돼지들과 놀고 있다. ⓒ 이돈삼


#강산이야기 #강민구 #동물복지농장 #동물복지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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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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