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현장의 움막농성장 철거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한 가운데, 통합진보당 김재연 국회의원이 찾아와 움막 안에서 쇠사슬로 몸을 묶고 있는 주민들을 격려하고 있다.
윤성효
지난 11일 새벽,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 한 통에 잠이 확 달아났다. '현장상황'이란 머리말로 시작한 문자는 밀양 송전탑 '카톡방'에 올라온 글이었다. 장문의 글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인터넷과 SNS를 떠돌며 밀양 관련 정보를 찾아 헤맸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목격한, 쇠사슬을 몸에 칭칭 묶은 이는 분명 내가 아는 그 '덕촌할매'였다. 곁에 있던 수녀님의 허리춤에도 쇠사슬이 돌돌 감겨 있었다. 그 시각,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사진이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걱정도 앞섰지만, 두려움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포털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다.
'송전탑 농성장 경찰 2000명 투입... 주민 극렬 반발'지난 10일 회오리바람이 일산을 강타한 다음날,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예정지엔 공권력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다. 11일 오전 6시께 밀양시와 경찰, 한전 등이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곧이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을 담은 사진이 온라인에 주르륵 올라왔다. 그 사진을 내 눈으로 마주하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5개월여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밀양의 얼굴들난 지난 1월 한 달 동안 밀양에 머물며, 송전탑 갈등 문제를 취재했다. 기억하건대 밀양은 '송전탑 갈등'만 빼면, 참 살기 좋은 동네였다. 지명 그대로 햇볕이 잘 들어서 한겨울임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덕분에 내가 바리바리 챙겨간 내복은 짐 가방만 무겁게 만든 무용지물이 됐다.
시골의 정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이따금 찾아간 도서관 근처 커피숍 아저씨는 얼굴을 알아보고 반겼고 허기를 달래준 식당에선 주인장의 후한 인심에 배가 불렀다. 고장 난 휴대폰 케이블을 새로 사러 갔다 물건이 없자 명함 한 장 달랑 받고 자기 것을 빌려준 휴대폰 대리점 아줌마, 파전을 부쳐주고 "갈 때 묵으라"며 주머니에 사과까지 찔러 넣어주던 할매 등... 모두, 5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얼굴들이다.
특히 승객이 오를 때마다 안부를 묻던 버스기사의 얼굴은 송전탑 갈등을 빚기 전, 화목했던 마을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 가슴이 뭉클했다. 밀양에 가기 전 언론 등을 통해서만 본 밀양의 모습과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