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피자 이야기

[출퇴근 길의 추억]

등록 2014.06.17 21:09수정 2014.07.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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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나는 미국에 살았었다. 그때 난 학교 카페테리아 피자집에서 일하는 시급 8.5달러짜리 점원이었다. 유리로 들여다 보이는 가판대엔 치즈피자, 야채피자, 페퍼로니 피자와 슈퍼 슈프림 피자가 사이즈별로 놓여 있었다.


큰 사이즈는 조각으로, 작은 사이즈는 통째로 팔았다. 한 조각에 3달러 정도, 작은 팬 피자와 콜라 세트는 7달러 정도였다. 남은 피자 도우로 만든 브레드 스틱도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곳에서 오전 10시부터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2시까지 일했다.

당시 나는 학교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다운타운 끝자락 니콜렛 에비뉴 (Nicollet Ave)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다. 마치 서울의 삼성동 같이 키가 큰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는 다운타운을 지나면 힐튼 호텔이 나온다.

호텔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술집, 바비큐 레스토랑, 오래 된 미장원, 색 바랜 벽화가 그려진 유치원을 지나면 비로소 허름한 2,3층짜리 아파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서 또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낡은 갈색 벽돌 아파트들이 나온다. 그 곳이 내 집이었다.

아침 9시, 나는 직장인들로 가득한 다운타운 중심을 피해 차가 덜 다니는 골목길로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길가엔 거리에서 밤을 보내고 모여든 노숙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덕지덕지 눌어붙은 머리에 계절을 잃은 옷차림이 어수선했다.

드문드문 앳된 얼굴과 빼빼 마른 개들도 눈에 띄었다. 신호를 받고 옆에 서 있던 행인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인근 병원에 헌혈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고 했다. 아마 헌혈하고 나눠주는 설탕 범벅 쿠키를 바라는 것일 테다.


그날은 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5월 초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금발에 거구인 로즈는 피자를 구운 지 5년 된 베타랑이었다. 그녀는 계산대에 손님이 뜸 하자 나를 주방으로 불러 이것저것 시키기 시작했다.

계산대의 동전을 만지던 손을 씻고, 피자 판을 갈고 종이컵을 채우다 손님이 오면 다시 계산대로 향했다. 한 시간에 손을 스무 번도 더 씻었다. 벽에는 직원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규칙들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뽀얀 밀가루들 사이로 피자 반죽을 밀고, 숙성 된 도우에 야채며 치즈를 휘날리듯 채우는 로즈의 손놀림은 기계 같았다. 내 시선을 의식하며 계속 잔일을 시키던 그녀는 '피자를 구워 전시해 둔 지 30분'이 지나자 칼같이 팔리지 않은 피자들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었다. 세달 동안 계산대에만 있느라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처음 목격한 나는 기겁했다.

"로즈, 멀쩡한 피자들을 왜 버리는 거야? 계속 이렇게 버려온거야?"

그녀는 나를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본다는 듯이 쳐다보며 "뭐라고? 당연하지. 30분 지나면 굳어지고 신선도가 떨어지니까 버리지. 규칙도 몰라?"라고 말했다.

로즈는 뒤돌아 궁시렁대며 다시 반죽을 밀기 시작했다. 손님이 적어 쓰레기통에 들어간 피자가 팔린 피자들보다 많았다.

"로즈. 이제 그만 만들어! 냉동실에 두었다 손님 오면 데우면 되잖아"

로즈는 "네 일이나 해. 이건 내 일이고 내가 알아서 해" 직역하니 역시 딱딱해 보이지만, '난 너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과 함께 영어로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에 강도는 이보다 훨씬 더 셌다. 버려지는 피자들을 가져 갈 수 있다면 내 식비도 줄일 수 있고 노숙자에게 줄 수 있을 텐데.

싸늘한 그녀에게 나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다. 30분 뒤 여덟 8조각의 피자가 더 버려졌고, 손님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나는 로즈와 불편한 공기를 공유하며 꾸역꾸역 할당 된 시간을 마쳤다. 오는 길에 피자가게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학기말이라 학생들이 줄었으니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남은 피자를 직원들이 가져 갈 수 있게 하는 게 어쩠냐고 했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처음부터 지켜 온 '영업 규칙'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노숙자들에게라도 기증하자고 했다.

그는 우리 가게에서 먹은 피자로 인해 식중독이나, 배탈 등의 '위생 관련 이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런 문제들이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지냐는 말과 함께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에만 집중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를 끌고 돌아오는 길, 치즈의 온기가 녹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처박힌 피자들이 눈에 밟혔다. 학교 근처 피플 서빙 피플(People Serving People)이라는 '노숙자를 위한 집'을 지나갔다.

그곳엔 음식을 받거나, 혹은 서로 어울리기 위해 편한 장소를 찾은 노숙자들이 즐비했다. 네모난 가방을 든 회사원들과, 장 보러 나온 깔끔한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언제부터 이곳에 머무는지 모를 노숙자들이 같은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경찰들은 조용히 그 간극을 메우고 있다. 나는 이 어울리지 않는 사각구도를 이방인의 마음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보니, 미국인의 합리성은 분명히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가 일하는 피자 가게 같은 음식점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규칙 덕분에 손님들은 늘 신선한 음식을 제공 받을 수 있다.

일개 아르바이트생도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자신이 맡은 분야에만 신경 쓰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멀쩡한데 버려지는 피자들과, 규칙이라는 이름하에 그걸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원칙주의, 그리고 먹을 게 없어 구걸을 하거나, 피를 뽑아 파는 노숙자들의 허기짐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까? 고즈넉한 다운타운 거리를 관통하는 괴리감이 생경하다.

미국이 내세우는 합리성이란 어쩌면 늘 강자가 먼저 정한 규칙에 약자들을 구겨 넣은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굶주리는 노숙자들을 모두 포동포동하게 만들 수도 있으나 버려지는 피자들은 마치 '합리'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불합리'의 상징 같다.

미국에서 떠나는 날까지 내 의식을 갉죽였던 이 고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합리성은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불합리를 먹고 태어난 것임을, 합리성이 적용되는 범위 내에 있지 못 한 채 겨우 숨 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덧붙이는 글 출퇴근길의 추억
#미국 #피자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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