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소설집 <더블>을 훑어보는 가수 전인권.
온북TV
"네. 그렇군요. 소설가 박민규가 전인권을 그만큼 좋아하는군요...""아뇨. 이젠 내가 박민규를 더 좋아합니다."파격적이었다. 록그룹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60). 그가 46살이던 2000년, <오마이뉴스> 열린 인터뷰를 시작으로 그간 4~5번 정도 인터뷰를 했고, 강원도 춘천교도소에 수감 중일 땐 면회를 갔으며, 2~3번에 걸쳐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함께했다.
그 적지 않은 만남에서 나는 전인권이 "누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그는 우리가 상상하던 것처럼 '길들여 지지 않는 사자'였고, '마초형의 사나이'였으며, '간지러운 말을 못하는 직설가'였다.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무한복제된 예쁘장한 걸 그룹이나 보이 밴드와는 그 격을 달리하는.
허나,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세월 탓일까? 가장 최근에 만난 전인권은 뾰족한 모서리가 자연스러운 풍화로 깎여나간 부드러운 돌처럼 변해 있었다. 지난주 문화계의 리더로서 온북TV '오봉옥 시인의 책치' 녹화장을 찾은 전인권은 박민규도 모자라 또 한 사람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아우라 가수와 숨어 사는(?) 소설가의 만남10대 후반에 노래를 시작해 앞서 언급한 들국화의 보컬로서는 물론, '전인권'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한국 가요사'의 부정할 수 없는 우뚝한 산맥으로 자리를 지킨 전인권. 그가 14살이나 아래인 조카뻘의 소설가 박민규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야기는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인권은 대마관리법 위반을 비롯한 마약 전과 5범. 이는 스스로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바다. 그가 4번째로 수감됐을 때다. 가족 면회 시간에 아내 대신 생면부지의 낯선 사내가 면회실로 불쑥 들어왔다. 그가 바로 소설가 박민규. 아래는 전인권이 기억하는 당시 둘의 대화다.
"누구세요?""저는 글을 쓰는 박민규라는 사람인데요.""그런데 왜...?""형님, 걱정말고 건강만 챙기세요. 제가 책임지고 소설가들의 석방탄원서를 받아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박민규가 발품팔며 받아온 문인들의 석방탄원서 수백 장은 재판부의 '전인권 석방 결정'에 작지 않은 이유가 됐을 듯하다.
사실 박민규는 그가 써온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소설과는 달리 외향적이기보단 내성적인 쪽에 가까운 작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 발표 후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J. D. 샐린저처럼 '은둔형 작가'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어째서 전인권의 일에는 스스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는 미루어 짐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