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후보자, 이렇게 오래 버틸 줄 몰랐다"

[여의도본색] 문창극 총리 후보자와 청와대의 선택

등록 2014.06.23 20:58수정 2014.10.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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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취 고심하는 문창극 후보자 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퇴근하며 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유성호


23일, 낮 12시 29분. <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특종'이라고 이름 붙인 기사가 올라왔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조부가 일제 시대 독립활동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독립유공자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기사의 출처(source)는 '국가보훈처 관계자'였다. 이 관계자가 23일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 후보자의 조부가 동일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한독립단은 지난 1919년 3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기 위해 의병운동 계열의 인사들이 결성한 단체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 관계자에 따르면, 문 후보자는 총리로 지명된 이후에서야 국가보훈처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문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손자인 그가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문의하고, 뒤늦게 국가보훈처를 통해 보도된 점은 좀 석연치 않다.

문남규 선생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때는 지난 2010년 11월이었다. 당시 문 후보자는 <중앙일보> 대기자와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문남규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임시로 보관해왔다고 하는데, 지난 1989년 사망하기 전 문 후보자 부친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국가보훈처가 유족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나 문 후보자가 조부의 훈장 추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석연치 않은 상황 때문에 정치적인 해석까지 나왔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에서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정면돌파 사인을 넣고 있는 것인지, 문창극을 달래서 퇴로를 열어주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만약 정면돌파라면 한번 해보라"라고 꼬집었다.

문창극의 버티기가 교착국면 이끌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문 후보자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비법조인, 비영남, 청렴도 등을 헤아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식민사관 강연 등을 두고 논란이 크게 일자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이 계속 늦어졌다. 지난 21일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대통령이 늦어도 23일에는 그의 거취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관측이 많았다.


심지어 당권 도전에 나선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오후 경남 창원 두대체육공원에서 연 '미래로 현장 투어 돗자리 공감마당'에서 "국민 여론의 70%가 문 후보자를 반대하고 있다"라며 "문 후보자가 청문회 전에 사퇴할 것이다, 사퇴 시기는 23~24일께가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지 13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청와대가 지명철회와 자진사퇴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청와대에서는 어떤 결정도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한 인사는 "저조차 어떤 방침이 마련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서청원 전 대표가 자기가 문창극 후보 사퇴를 촉구한 후 박 대통령이 마음을 바꿨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가발전의 성격이 짙다"라며 "청와대 내부적으로도 그전부터 문 후보자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문 후보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버틸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문 후보자가 물러나면 다음 후보자를 빨리 지명해서 다음 국면으로 바로 넘어가야 하는데 (후보 선정이) 얼마나 준비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을 때 문 후보자가 '감(感)'을 잡고 자진 사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얘기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 후보자의 버티기가 지금의 교착국면을 끌고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버티는 문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기도 힘들다. 인사검증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지명철회는 '김기춘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기춘 실장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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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함께 입장하는 모습. ⓒ 연합뉴스


이 청와대 관계자는 "허태열 비서실장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으니 김기춘 비서실장이 사실상 비서실 1기 체제다"라며 "그래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안 바뀌면 뭘 바꾸든 청와대는 '새출발'할 수 없고, '1기 체제'를 못 벗어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석을 몇 명 바꾼다고 해도 (김기춘 실장이 안바뀌면) 비서실 체제는 1-1, 1-2 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라며 "그런데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비서실장이라면 대통령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대통령 주변에 누가 있나.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김 실장이 밖으로부터는 화살을 많이 맞는데 내부적으로는 비서실 장악력이 대단하다. 청와대가 이만큼 돌아가는 것도 김 실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아마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이는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지명철회'를 강행할 가능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결국, 남은 것은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이거나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이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현재 상황을 헤아릴 때 전자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국회 인사청문회 강행을 의미하는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징후는 앞서 언급한 <조선>의 '특종보도'일 수도 있다. 문 후보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과 훈장 추서를 뒤늦게라도 알림으로써 '식민사관 논란' 등을 물 타기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강행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고 시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무성 의원 등 극히 일부를 뺀다면, 여당에서 문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이미 잦아들고 있다. 
#문창극 #김기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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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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