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호텔'이란 이 병원, 대체 어떤 곳이기에

[서평]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신의 호텔>

등록 2014.06.29 20:57수정 2014.06.3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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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의 아침은 보통 이렇다. 이른 시간에 의사들이 회진을 돈다. 대학병원의 경우 이 때 교수가 레지던트, 인턴, 의대 실습생들까지 한 무리의 부대를 이끌고 병실을 누빈다. 회진을 알리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환자들이 일제히 침상에서 일어나 의사를 맞을 준비를 한다. 꼭 무슨 군대 점호 시간 같다.

회진 중에도 교수는 환자랑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대신 옆에서 차트를 들고 서 있는 주치의(레지던트 2, 3년차)의 보고를 듣는 데 열중한다. 필요하면 환자에게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한다. 침상별로 의사가 환자에게 머무는 시간은 1~2분이 채 되지 않는다. 모든 병실을 한꺼번에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에 한 번쯤 입원해 보면 안다. 담당 의사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운지를. 늘 시간에 쫓기듯 진행되는 회진 시간에는 의사와 편안하게 대화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따로 면담을 하려면 간호사를 통해 미리 신청을 해야 하고 시간을 조율해야 한다. 입원 기간 내내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의사보다는 간호사들이다. 간호사들은 한두 시간 단위로 병실을 계속 점검하고 환자들의 활력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대단히 멀다. 그나마 가까이에 있는 간호사들은 어떤가. 화장실 갈 시간,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의 노동 강도에 시달리니 환자와의 관계에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다. 병원은 효율성을 위해 정해놓은 규칙대로 기계처럼 돌아간다. 대형화되고 선진화된 병원일수록 인간미는 사라지고 시스템만이 남는다.

'비효율성의 효율성'이 만든 작은 기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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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호텔> 책표지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 와이즈베리

여기 현대적인 병원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한 병원이 있다. 약물 과다 투여와 과잉 진료 대신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느린 의학'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는 곳.

과도한 서류와 행정업무 대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의료진과 환자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곳. "거주자가 최우선이다"라는 모토 하에 병원 전체가 '간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미국의 마지막 남은 빈민구호소인 샌프란시스코의 공공병원 '라구나 혼다'이다.


높은 의료 장벽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라구나 혼다'는 '신의 호텔'이라고 불린다.

이 책 <신의 호텔>의 저자인 내과의사 빅토리아 스위트는 임시직으로 두 달만 머무를 예정이었으나 '라구나 혼다'의 '느린 의학'에 매료되어 20년을 근무했다. 빅토리아 말고도 이 병원의 의료진들은 1~2년 있으려다 수십 년 눌러 앉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잡아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신의 호텔>은 저자가 '라구나 혼다'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중심의 진정한 의학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해 나가는 여정을 담았다.

최고의 의사는 당신과 함께 약국까지 걸어가서 당신이 그 약을 먹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봐주는 의사다. 이들은 전이와 역전이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는 결국 '관계'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결국 처음 라구나 혼다에 왔을 때 커티스 선생에게 들었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의 호텔은 진정 축복이었다. (417쪽)

10만 명 당 1명 꼴로 발병한다는 급성 횡단성 척수염을 앓는 환자는 극심한 감염과 욕창으로 최악의 상태를 보이다 결국 '라구나 혼다'에 왔다. 이 병원의 의사들은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는 것과 같이 환자의 자연적인 치유력을 가로막는 요인들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돌본다.

먼지, 불결함, 냄새 나는 옷, 불필요한 약 처방, 두려움, 우울증, 절망. 이 모든 것이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가로막는다. 필요한 것은 평화와 휴식, 그리고 시간이다. 환자의 몸에서는 어느새 썩은 부위가 문드러지고 새 살이 돋기 시작한다. 갈 곳 없는 희귀병 환자가 넘쳐나는 '라구나 혼다'에서는 '흔치 않은' 기적이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빅토리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보통 내 환자들은 처음 들어올 때는 15~20가지 정도의 약물을 복용하는데, 나중에는 보통 6~7가지 정도로 줄어든다. 그 자체로는 아무리 값싼 약이라 해도 사실 따지고 보면 비싸다. 부작용에 따르는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임상검사, 역효과 등으로 인한 비용이 추가되고, 약사, 의사, 간호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준비하고, 복용시키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다 따지면 각각의 약물에 하루 6~7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라구나 혼다의 느린 의학은 효율적이라는 보건의료보다 적어도 하루에 70달러 정도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잉투약과 과잉진료는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망칠 뿐만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도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빅토리아는 "좋은 간호와 비효율성은 맞물려 있다"며 "결국 진정 효율적인 것은 죽음밖에 없다. 보건의료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며 비용 면에서 봐도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110쪽)고 강조한다.

종합병원에 라구나 혼다의 느린 의학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테스트 해볼 병동을 세워 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효율적 보건의료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2년짜리 실험을 진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저 병동 하나만 내주고, 비 오듯 쏟아지는 서류처리와 행정적 규제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발생하는 비용과 절감액을 추적해줄 컴퓨터 프로그램만 있으면 된다. 나는 흑자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156쪽)

구조조정의 파고에 맞서

주립병원에서 거부 당해 아무리 갈 데 없는 사람이라 해도 '라구나 혼다'에 오면 그를 위한 자리를 찾아 줄 수 있었다. 개방형 병동에서 의사들은 매일 환자를 찾아갔고 간호사들은 세심한 간호를 했다. 환대의 정신, 공동체 정신, 자선의 정신을 중요시 하는 '라구나 혼다'에서 정성을 다하는 간호만으로도 환자의 상태는 호전되거나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 낡고 구식이라는 '라구나 혼다'의 단점은 결국 환자에게 장점이 된 셈이다.

물론 '라구나 혼다'도 효율성을 내세운 구조조정의 압력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낡은 건물 대신 현대식 시설이 들어섰고, 의료진의 대폭 감축과 의료 체계 개편이라는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다. 의료진이 줄어드는 만큼 많은 환자들도 병원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구조조정을 따르면서 병원이라는 하나의 마을 안에서 재현되었던 의사와 환자, 환자와 환자 사이의 작은 이웃 관계도 단절되어 갔다.

수십 년 근무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은 '라구나 혼다' 앞에 놓인 최대한의 도전이다. 이 변화 앞에서 빅토리아는 "과연 신의 호텔의 정신이 죽을지, 아니면 살아남을지 알수 없다"고 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티베트 '라다크 마을'이 신자유주의 개방의 파고 앞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듯이 '라구나 혼다'도 고유의 정신을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

의료 민영화를 밀어부친다는 것은 '라구나 혼다'와 같은 병원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효율성이라는 '정언 명령'이 지배하는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노동 강도는 더욱 세지고 환자와의 관계는 단절될 것이다. 돈의 많고 적음이 환자가 병원 문턱을 넘느냐 못 넘느냐를 좌우한다.

'인간 중심 의료'가 아닌 '돈 중심'의 진료가 불러 올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99%가 아닌 지불능력이 있는 1%뿐이다. 이것이 국민의 70%가 돈벌이 목적의 영리 병원을 반대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신의 호텔> / 와이즈베리 / 빅토리아 스위트 지음, 김성훈 옮김 / 16,000원

신의 호텔 -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빅토리아 스위트 지음, 김성훈 옮김,
와이즈베리, 2014


#신의 호텔 #라구나 혼다 #의료 민영화 #의료 공공성 #영리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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