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병장만 잘못했다? 대안은 대체복무제다

[주장] 청춘의 죽음, 더 이상 볼 수는 없다

등록 2014.06.25 18:23수정 2014.06.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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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GOP에서 동료 병사들을 살해한 뒤 무장탈영한 임모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였던 지난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22사단 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고로 인해 다섯 장병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또 일곱 명의 장병이 부상을 당했다. 임아무개 병장의 자살 시도와 생포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임아무개 병장을 포함해 세 명이 추가로 총상을 입었다.

현재까지 임 병장의 명확한 범행동기나 심경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은 3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 재작년에는 이른바 '노크귀순'으로 논란이 됐었던 부대라는 점, 임 병장은 '관심사병'이었다는 점 등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임 병장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고, 그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은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게 만든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사건은 비단 22사단이나 임 병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굵직한 사건만 떠올려보더라도 2005년 연천에서도 내무반 수류탄 투척 및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고, 2008년 철원에서도 GP 내무반 수류탄 투척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 알려진 주요 사건들 중 2000년 대 이후만 보더라도 2005년, 2006년, 2008년, 2011년, 그리고 2014년에 각각 사고가 있었다.

총기 난사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지 않더라도 그보다 얕은 수준의 크고작은 사고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2005~2012년 사이 복무 중 자살·총기·폭행 등으로 발생한 사망자 수만 648명에 이른다. 국방부가 발표하는 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사망에 이르지는 않은 비공식 사건·사고들까지 합한다면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사고, 근본 원인은 '강제징집제도'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의 주류적인 시각은 언제나 '개인'에게 화살을 돌렸다. 문제를 일으킨 해당 병사 그리고 평소 원인을 제공한 선임병들이나 해당 부대의 복무 환경을 탓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왔다.


그러니 해당 병사를 전출시키거나 관련자 징계·부대환경 개선 등의 미시적인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개인이나 해당 부대의 문제라면, 그가 전역하면 문제는 해결되고 다른 부대에서는 비슷한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부대를 막론하고, 전국의 군 부대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구조의 문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조직 구성원의 대부분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군 생활을 시작한 20대 극초반의 어린 청년들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합숙하며 엄격한 통제 생활을 지속하는 데에서 오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 등을 끊임없이 견뎌내야 한다. 군대 문화도 (선진 강대국 군대에 비해) 비교적 수직적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 갈등 요인들이 잠복해 있다. 효과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면 언제라도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의 병사가 전역하더라도, 문제를 양산하는 구조는 여전히 남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였던 한 병사의 아버지는 지난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아…, 참 착잡하더라고요. 그 사람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 있겠다, (중략)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이면 웬만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그런 조건 속에서, 그 사람이 거기에 적응할 수 있게끔 교육과 다른 것 또 적절한 치료 이런 것들이 됐어야 되는데…. 과연 임 병장이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받았는지…. 임 병장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움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접근과 동시에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여기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짚고 해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러한 사고는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근대적인 '강제징집제도'에 있다(단순히 '징병제'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식 강제징집제는 징병제 중에서도 매우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다드?

서구의 역사에서는 경제성장과 문화의 발전에 따라 시민의식과 인권 감수성이 진화하면서,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들은 사라져갔다. 그중 가장 심한 '강제징집제'는 직업군 모병제로 전환되거나 대체복무를 폭넓게 허용함으로써 철폐됐다. 요즘은 기술 발전과 현대전의 양상 변화에 따라 모병제 전환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국방의 의무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신성한" 의무이니 토 달지 말고 충성하기를 요구한다. 얼마나 평등했던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장관 후보자는 군복무중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찌된 일인지 고위층이나 재벌가 자손 등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군면제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46인의 장병은 모두 서민의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의사·교수 같은 중산층의 자녀조차 없었다. 모두 기피하는 근무를 '돈 없고 백 없는' 장병들로 채운 것이다.

물론 그들의 격려에 힘입어 청춘을 바쳐도 보상 따위는 없다. 혜택이 고작 0.1%에게도 안 돌아간다는 비판이 있는 군가산점 카드나 만지작거리는 게 전부다. 심지어 복무 중 사망해도 순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들의 '주술'과 달리 군 복무는 이미 평등한 제도가 아니다.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여러 가지 불평등한 복무 형태가 존재한다. 운동선수는 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면제되기도 한다. 신체등급 판정기준은 강화되는 쪽으로만 바뀌어온 탓에, 현역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이 현역으로 바뀌는 일도 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성에게는 (국방세·대체복무·사회복무 등) 그 어떤 형태의 국방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

공론장의 실종과 분단 프레임

하지만 한국에서 강제징집제에 관한 담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분단의 현실' 한 마디로 일축된다. '분단' 프레임에 갇혀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 모병제는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평가 절하되고, 대체복무제는 '안보불감증'이나 '병역기피심리'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이러니 생산적인 토론이 될 리가 없고, 제대로 된 여론 형성 과정도 생략된다. 이 영역에서는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조차 없는 것이다. 마침내, 다양한 견해와 갈등의 존재가 정상인 민주 사회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획일화된 견해로 통일되었다.

'분단'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언어는 '휴전'이다. 언어의 표면을 제거하고 나면, '적국과 대치 중'이라는 의미만 남는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적대국 대치 여부'가 과연 해당 국가의 '병역제도 형태'를 규정짓는 절대적 요건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 최강인 미국은 곳곳에서 전쟁을 주도하거나 참여해왔지만, 그들은 1970년대 월남전 패배 직후 모병제로 전환하고 줄곧 패권을 지켰다. 반면 핀란드처럼 평화롭지만 징병제를 택하는 나라가 있을 수도 있다. 대만은 중국과 '양안 대치'중이던 2002년부터 모병제를 추진하여 2015년까지 전환하기로 했다. 각국은 오히려 국방력 '강화'를 위해 모병제 전환을 추진하는 추세다.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적으로 전쟁과 테러, 시가전이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모병제와 징병제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모병제여도 전시에는 징집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병제는 가난하거나 인구가 적은 국가는 시도하기 어려운  선진국형 제도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오류가 있다.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약하다'는 잘못된 전제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는 이 명제가 맞았다. 일제의 수탈과 전쟁을 겪었기에 나라가 가난했고 기술도 미약했기에, 병력의 양적 규모가 곧 군사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첨단 기술의 발전과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따라 모병제가 더 강한 군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3년 130만 이라크(징병제) 대군은 18만 미군에 17일 만에 완패했다. 2011년 나토군은 리비아에 (육군 없이) 폭격만으로 4일 만에 제공권을 장악했다. 현대전의 템포는 갈수록 빨라지고, 질이 담보되지 않은 병력의 양적 규모는 의미가 줄고 있다.

'북한의 위협' 공포 마케팅

2014 세계군사력순위 50가지 이상의 군사적 요소로 각국의 군사력을 지수화해 평가한 순위 ⓒ globalfirepower 갈무리


남한은 전쟁 이후 66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을까? 가능한 최신 자료를 들여다보기 위해 발췌한 글로벌파이어파워(Global fire power)의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한국은 9위 북한은 35위이다.

양적 비교이므로 북한에 유리할 법도 한데, 북한 순위는 해마다 떨어져 올해 35위까지 급락했다. 반면 한국은 수년 이상 세계 10위 안팎을 지키고 있다. 수치상으로 미국-한국의 격차(2.5배)만큼, 남-북 격차도(2.3배) 벌어져 있다. 질적 비교를 한다면,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한의 위협'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공신력 있는 다른 여러 자료를 통해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반면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44배의 국방비, 38배의 경제력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자본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현대전의 양상인 정보전, 기술전, 미사일전을 뒷받침하는 것 역시 '돈'이다. 2013년 기준으로 남한은 북한보다 44배나 많은 국방비(34조 3500억 vs. 7600억~1조원으로 추정)를 쓰고, 경제력 격차는 38배(1279조5600억 vs. 33조4800억,GNI 기준)로 추정된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신형 무기 수입이 거의 없었다. 기름이 없어 전투기와 군함을 절반도 채 띄우지 못하고, 훈련조차 제대로 못 하는 상태라고 한다. 스텔스전투기와 글로벌호크 도입이 논의되고, 나아가 국산 무기를 세계로 수출하는 한국과 비교도 안 된다. "북한과 1대1로 싸우면 진다"고 외치고 다니는 패전 장수들만 없다면, 우리가 압도할만한 격차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14위권의 경제 대국인 한국이 아직도 가난한 북한에 밀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마 미스터리가 되지 않을까.

대체복무제, UN으로부터도 이미 여러 차례 권고 받았다

군을 겪어본 몇몇 사람들은 한 명의 '관심 병사'가 부대 전체의 분위기나 사기를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볼멘소리마저 나온다. 전투력의 손실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직업군인 모병제 아래서는 적어도 이러한 문제는 원천적으로 제거된다.

점진적인 모병제 전환도 어렵다면, 우선 대체복무제의 도입만이라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극소수 몇이 군에 안 간다고 전선이 무너질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어차피 자신에게 돌아올 모든 불이익을 감당하면서까지 '총 대신 감옥을 택하겠다'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강제로 입대시킬 수단도 없지 않은가.

그동안 한국은 UN인권이사회,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으로부터 대체복무제 도입을 여러 차례 권고 받았다. 그들이 남북 대치 상황을 몰라서 권고했을까? 사실 대치 수준이 아니라 실제 전쟁(교전) 와중에도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나라는 많다. 우리도 7년 전에는 도입하려고 했었다. 참여정부 시절이었던  2007년 국방부가 대체복무제 도입을 발표(2008년 시행 예정)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백지화됐다.

만약 대체복무제가 예정대로 시행됐더라면, 임 병장 같은 이는 입대하지 않았을 것이 유력하다. 복무기간을 점진적으로 18개월까지 단축시키는 국방개혁 계획을 이명박 정부가 21개월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현재 전역을 3개월 앞뒀다는) 임 병장은 이미 전역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군 복무 단축 공약을 이렇게 빨리 파기하지 않았더라면, 임 병장은 아마 지금쯤 제대를 한 달 반 앞두고 말년휴가를 기다리는 '왕고참'이었을 수도 있다.

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할까

현재 18개월 넘게 복무하는 나라는 25개국 정도만 남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중 한국처럼 대체복무제도 없이 강제징집하는 국가는 북한을 포함해 약 9개국뿐(북한, 쿠바, 앙골라, 차드, 에리트레아, 아르메니아, 투르크메니스탄, 예멘, 베트남)이다. OECD 국가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대부분 가난하거나 인구가 적은 후진국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경제 규모 14위, 5000만 인구로, 그런 나라와 비교조차 불가할 정도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강제징집제도가 존치되는 한, 군부대 내에서의 사건·사고는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논의와 대책마련이 시급한 이유이다. 해마다 군기사고(자살, 총기, 폭행, 기타)로 70~100명이 사망한다. 대체 얼마나 많은 청춘이 더 죽어야 하는가.
#총기 난사 #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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