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없는 빵... 우리 모두 그 맛을 봐야합니다

[서평]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등록 2014.06.26 14:16수정 2014.06.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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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표지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 더숲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바뀐다.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씩 배워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역린>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책장을 덮는 순간 이 대사가 떠올랐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면서도 오직 천연균으로만 발효시킨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바치는 시골 빵집 주인 와타나베. 그의 지극한 정성은 단순히 좋은 빵을 만드는 기술 습득에 머물지 않고 빵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 경지에 이르렀다.

와타나베는 천연균 발효를 이용해 이스트와 같은 인위적인 발효에 기대지 않으면서 설탕, 버터, 우유, 계란도 넣지 않은 자연 중심의 빵을 만들어냈다. 천연균의 생리를 통해 마르크스의 명제를 해석해내는 이 책은 그 어떤 자본론 해설서보다 '독창적'이다. 그는 책상머리의 딱딱한 이념이 아닌 참다운 삶의 가치로 자본론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르크스가 살아서 이 책을 보았다면 감탄사를 연발하며 변방의 시골 빵집 주인에게 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한 손에는 '천연균'을, 한 손에는 '자본론'을

와타나베는 아내와 함께 오카야마 현 북쪽의 '가쓰야마'라는 작은 마을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정리하고 '진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4년 반 동안 기술을 배워 빵집을 열었다. 작은 빵집을 하며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탈출'하고자 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세계 시장의 곡물 가격 변동에 따라 재료 구입 가격도 널뛰기를 하며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이 세계에,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그 점을 따져보지 않고서는 독립해서 빵집을 열었다고 한들 예전과 다름없이 시스템 안에서 살아야 했다. 내 가계를 가지고도 예전의 그 회사처럼 어느새 시스템에 말려들 게 뻔했다. (34쪽)


시골 빵집마저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한 가운데'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절감할 즈음, 운명적으로 마르크스를 만났다. 마르크스와 천연균의 만남에서 이타루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통찰해낸다.

그가 보기에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발효'와 '부패'를 통해 시간이 지나면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발효와 부패는 균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발효와 부패는 모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은 빵이 억지로 일정기간 썩지 않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부패하지 않는 균'이다. 부패하지 않는 균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든다.


부패하지 않는 음식은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싸구려 먹거리는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시키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써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 간다. 이 세계에는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돈은 '부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이윤을 낳고 금융을 매개로 하여 신용창조와 이자의 힘으로 점점 불어난다. 형태가 있는 물질은 언제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계의 거스르기 어려운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돈은 애초에 그 법칙에서 벗어나 한없이 몸집을 불리는 특수한 성질을 가진다...(중략)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과 경제를 '부패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발효의 힘을 빌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빵을 만드는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발상이었다. (82~83쪽)

시골빵집이 찾아낸 '부패하는 경제'의 핵심

와타나베의 시골빵집에서는 천연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균 본위제'로 빵을 만든다. 균에게 걸맞은 최적화된 환경으로 공방을 만들고 배양균과 같은 외부의 힘을 빌리기 보다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천연균의 자생력을 존중하는 방식을 택한다. 균과 재료는 그 지역, 그 고장의 것끼리 어울려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덕분에 와타나베의 빵집은 재료를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들여온다. 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실천함으로써 빵을 매개로 지역 내 농산물을 순환시키고 지역의 먹거리와 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이 빵집은 일 주일에 사흘을 쉬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다. 경영이념은 '이윤 남기지 않기'다. 와타나베는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등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돈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올바르게 쓰고, 상품을 정당하게 '비싼' 가격에 팔 것"이라고 말했다.

토양이 메마르면 작물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랄 수 없어 비료를 필요로하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역이 척박해지면 지역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키울 수 없어 외부에서 무언가를 보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다. 먹거리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외부에서 무언가를 보태거나 빌려와서는 안 된다. 내부의 힘이 빛을 발하게 해야 한다.

시골빵집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천연균과 자연재배를 만났고 다시 한 번 지역통화라는 발상이 자연의 섭리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통화 같은 빵을 만들고 싶다. 만들어서 팔면 팔수록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지역의 자연과 환경이 생태계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되찾는 빵. 우리는 지역통화라는 발상을 빵집 나름의 모습으로 수정, 발전시켜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중이다. (178~179쪽)

와타나베의 시골 빵집이 찾아낸 부패하는 경제의 핵심은 네 가지다. 발효, 순환, 이윤 남기지 않기, 빵과 사람 키우기. 단순함을 지향하는 시골 빵집은 만드는 자에게는 직업으로서, 소비하는 자에게는 먹거리로서의 풍성한 즐거움을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비효율적일지언정 더 많은 정성으로 공을 들여 빵을 만들고 이윤과는 결별한다.

착취없는 경영이야말로 돈이 새끼를 치지 않는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다. 와타나베는 "이윤을 남기는 대신 빵속에 수 많은 생각을 담는다"고 했다. 그의 빵 만들기 철학은 최근 대안으로 부상중인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경제의 정신과도 통한다.

경제여, 부패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대화되면 자본주의는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모순이 극대화된다는 것은 썩을 대로 썩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예상은 빗나갔다. 자본주의는 부패해 소멸하는 대신 '금융'이라는 신형 엔진을 장착하고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투입해 경제를 뒤룩뒤룩 살찌게 한다. 내용물이야 어떻든 이윤만 늘면 된다. GDP만 키우면 된다. 주가가 오르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비만이라는 병에 걸린 경제는 거품을 낳고, 그 거품이 터지면 공황이 찾아온다. 거품붕괴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살쪄서 비정상이 되어버린 경제가 균형을 되찾는 자정작용이다. 그런데 부패하지 않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공황도 거품붕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등의 재정출동이나 제로금리정책과 양적완화 같은 금융정책을 통해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수법을 써서 한없이 경제를 살찌우려고만 한다. (147쪽)

분명하게도 한계는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증폭 시켰다. 성장 일변도로 내달려온 자본주의 경제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변화와 환경 재앙을 만든다는 사실도 변화를 추동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남은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영원한 성장은 없다. '부패해야' 산다. 성장의 바퀴를 멈추고 호혜와 연대, 공존과 공생의 방식으로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재구성해야 한다.

최근 새로 내정된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 부자들의 주머니 속에 돈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나라 경제를 끌고 가겠다는 그의 발상에 벌써부터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실종되고 단기부양에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사실 아니던가.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일본 변방의 작은 시골 빵집 주인인 일으킨 '소리없는 경제 혁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경환 후보자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다. 과연 그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더숲 /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14,000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 2014


#자본론 #자본주의 #마르크스 #시골빵집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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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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