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같은 뼈와 살 그대로, 꼭 돌아오시라

[기다림의 버스 ①] 살아남은 자의 할 일

등록 2014.07.05 19:16수정 2014.07.0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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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서는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살아 돌아오진 못 했지만, 이렇게라도 돌아와줘 고맙다"는 가족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은 팽목항이 이대로 잊히는 게 두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란 리본을 달고 생존자를 기다리던 시민의 첫 마음을 이제 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팽목항은 잊히고 있습니다.

"팽목항을 잊지 않겠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다"는 약속의 마음을 모아, 6월 첫 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무박2일 일정으로 진도 팽목항을 찾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버스 문의 및 신청 : http://jindo.sewolho416.org)

<기다림의 버스>에 탑승한 분들의 글을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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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된 아들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부모들이 갖다 놓은 물건이 놓여 있다. ⓒ 권우성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는 다섯 시간 만에 전남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더 달려서야 팽목항에 닿았다. 한때 항구를 가득 메웠던 천막이 하나둘 빠져나간 후 휑해진 그곳은 짙은 해무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다 위에서 끼익끼익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빈 여객선과 그 옆에 색색의 과일로 차려진 제사상이, 이 적막한 항구가 연일 뉴스를 도배했던 현장임을 알려줬다.

방파제에는 노란 리본이 빼곡했다. 배를 타고 한참 더 나가야 한다는 사고 해역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사람들은 방파제 끝까지 나가 그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을 것이다.

'내 새끼야, 보고 싶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제 그만 돌아와 다오' '내가 엄마의 아들이어서 행복했어요' '네가 나의 아들이어서 고마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은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어 그 난간에 매달아 놓았다. 멀리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천막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 6월 8일 이후 아직 저 천막을 거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다. 11명. 아직 11명이 저 검은 바다 속에 갇혀 있다. 이제 성별조차 가리기 힘들 만큼 변한 시신을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팽목항으로 가는 버스

더딘 구조 작업에 가슴을 쥐어뜯던 유족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간 자식을 한 번 안아주고 보내게 해달라던 비명같은 요구도 더는 이뤄질 수 없다. 

방파제의 끝에 서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따라 불러본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잠수사의 손을 잡고 나와 가족의 품으로 인도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악몽 같은 장례가 어서 끝나기를.

나는 비명에 죽은 자식의 영정을 끌어안은 부모의 심정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유가족들의 마음은 안다. 꿈인 듯해 어서 깨어나기를 바라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가슴이 내려앉고 눈물이 터지기를 반복하는 상실의 시간. 8년 전, 단 며칠이었으나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시간. 내 언니의 장례였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묵묵히 끌고 나간 언니와 형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친정으로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장례를 치르는 내내 상복은커녕 검은 옷조차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죽어 사라졌는데 그 따위 의식이 다 무언가 싶기도 했지만,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했다.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어차피 꿈이 아니라면 어서 이 장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장례식은 정말 꿈결 같아서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장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에 흐르던 그 무거운 정적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쓰러지듯 잤다. 3일 만에 자는 잠은 슬프고 달았다.

다섯 살 위 언니와 나 사이에는 놀랍도록 추억이 없어서 나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이래도 될까' 싶을 만큼 아프지 않았다. 온몸이 마취된 것처럼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나는 불쑥 혼자 울었다. 내 피와 살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불쑥불쑥 흘러나오는 존재. 그것이 혈육인가 보다, 생각했다.

마취가 풀린 후 통증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영구차 기사가 언니의 유해를 얼른 뿌리고 오라며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 한 인간의 마지막 흔적을 고작 상조회사의 기사가 아무런 의미 없이 가리킨 야산에 뿌려 없앤 것이, 그녀의 32년 삶을 단숨에 압사 시킨 차주의 보험사가 과연 그 삶을 제대로 정산했는지 따져 묻지 않은 게 두고두고 가슴 한켠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은, 채 식지도 않은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얼굴을 만지며 "아직 따뜻한데요. 살아있는 거 같은데요. 안 죽은 거 아입니까?"라고 의사를 붙들고 물었다는 아버지가 떠오를 때다. 혹시라도 의사가 너무 일찍 자신의 딸을 포기한 게 아닌지, 그 순간 아버지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32년 전, 세게 쥐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한 생명을 손에 안아본 후 아버지는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고 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비빌 언덕도 없어 마음 둘 곳 없었던 가난했던 남자에게 그녀는 뿌리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떠난 후 "자식이 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뿌리가 잘린 듯한 통증을 느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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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권우성


돌아오지 않은 그들, 우린 무얼 할 수 있나

방파제에 매달린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본다. 모두 얼마나 귀한 존재들일까. 지금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을까.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은 손을 뻗고 있다던데, 어둠 속에서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을까. 새끼들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 까맣게 돌이 되어 가는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우리는 무얼 해야 할까.

구조작업을 하는 잠수사에게 "승무원복 입은 우리 아들, (단원고) 학생들과 구분하지 말고 같이 구조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적힌 쪽지를 건네며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가족을 잃은 슬픔도 모자라 무뢰한들에게 난도질당한 외상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그것만이 지금 우리가 온몸으로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혈육의 죽음도 잊는 나약한 인간이 추억 한 가닥 없는 이들의 죽음을 잊지 않을 도리는 없다. 바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다 보면 잊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어느새 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야만적인 세상에 그저 무력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한없이 슬픈 날, 그 마음 그대로 팽목항에 가보시라. 마음이란 걸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간절한 마음으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의 선체로 들어가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시라. 너무 많이 변한 그들의 얼굴에 놀라 고개 돌리지 말고 두 눈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사람들과 그들을 구하러 내려간 사람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해야 한다.

'항구엔 따뜻한 옷과 밥을 챙겨놓고 그대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까맣게 굳어가는 사람들이 돌이 되기 전에 당신의 눈물 같은 뼈와 살 그대로 꼭 돌아오시라. 하루라도 빨리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편히 잠들어 꿈에서라도 그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기어이 말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잠수사가 들어가 마지막 남은 이들의 손을 잡는 그날까지 옆에서 함께 기다리겠다고.
덧붙이는 글 글을 쓴 홍은전씨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입니다.
#기다림의 버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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