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향나무 꽃. 고무래 정(丁)자 모양의 꽃의 향기가 짙어 정향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다.
최오균
우리나라에서 반출된 미스김라일락은 일반 라일락보다 향기가 더 진하고 꽃이 더 오랫동안 피어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토종인 이 식물은 1970년대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묘한 운명을 지니게 됐다.
설악산 하고도 천불동계곡 해발 1000m 고지에서 바라본 정향나무 꽃은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 향기도 은은하게 퍼져와 나는 한동안 정향나무 향기에 취해 넋을 잃고 있어야 했다.
라일락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던가? 프랑스에서는 라일락을 '리라꽃'이라고 부르는데, <베사메 무초>라는 노래에 나오는 꽃이 바로 이 꽃이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피는 밤에 / 베사메 베사메 무초 /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 다오' 사랑하는 연인을 리라 꽃에 비유하여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라일락 향기가 가슴 가득히 전해 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그만 올라가야지.""하하, 그래야겠군.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저 정향나무 꽃은 너무 아름답질 않은가? 이 깊은 산중에 은은하게 피어나 사랑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으니 말일세.""잘 보존해서 더 많은 정향나무 꽃이 설악산에 피었으면 좋겠어.""암, 그러길 바라야지…."
설악산 빗물의 운명을 가르는 무너미고개우리는 정향나무 꽃향기를 뒤로 하고 숨을 헐떡거리며 '무너미고개'에 도착했다. 해발 1060m. 무너미고개는 '물 나눌 고개'의 우리말이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설악산의 물을 이곳에서 둘로 갈라진다. 대청, 중청, 소청에서 같은 빗물로 태어났지만 이들의 운명은 무너미고개에서 정반대의 길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