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세월호 사고 첫날 살아있었다"

여수 찾은 세월호 가족대책위... '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촉구

등록 2014.07.03 09:36수정 2014.07.0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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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족대책위 10명과 간담회가 열린 여수 청소년수련관 모습 ⓒ 오문수


지난 2일 오전 11시,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아래 세월호가족대책위) 10명이 세월호 진상규명특별법제정 1000만 서명운동과 7월 내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전국버스 순회 도중 여수를 찾았다.

여수시 학동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에서는 여수지역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4시부터 두 시간 동안 간담회가 열렸다. 여수시 세월호추모위원회 이정민 상황실장의 보고에 따르면 여수에서 세월호 추모집회(4월 25일부터 5월 15일까지)에 참석한 인원은 총 2만9000명으로 모금액은 2267만 원에 달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안산 단원고 2학년 10반 이아무개군의 어머니였다.

"저희들은 언론을 믿지 않습니다. 첫날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당연히 살아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정부에서는 구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서 살기 싫습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국민을 위해서, 더 안전한 나라를 위해서 특별법제정을 원합니다. 앞으로 살기 좋은 대한민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게 저희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정부의 발표, 그대로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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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족대책위원들이 청중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오문수


이어 고 이해봉 교사(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담임)의 고등학교 은사인 여수시민협 이현종 상임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대부분 참사가 보상 차원에서 끝나는 것을 봤을 때 국민들이 권력 마음대로 하게 놔두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이 아픔을 삭이며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정권이 국민을 함부로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또 다른 희생자의 어머니가 발언에 나섰다.

"사고 첫날 뱃머리만 남아 있었어요. 그날 당연히 국가가 나서 우리 아이들을 구해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딸의 휴대전화를 건져내 정부에서 복구한 동영상을 봤습니다. 딸은 사고 당시 갑판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습니다. 마침 다른 학생의 디지털카메라가 복구됐는데 (동영상 속) 배는 90도로 기울어져 있었고, 제 딸은 살아있더라고요. 그런데도 (정부가) 구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잠수부가 죽은 아이를 건져왔을 때, (딸은) 갑판에서 입었던 옷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어요. 사고가 나자 누군가가 배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을 것이고, 물에 젖은 옷을 배안에서 갈아입었겠죠. 그러면 구조하지 않고 흘렀던 시간에 아이들은 살아 있었던 게 분명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정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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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오는 가운데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한 시민들이 서명하고 있다. ⓒ 오문수


간담회를 마친 일행은 구 송원백화점 사거리와 신기동 부영3차 아파트 사거리에서 서명운동에 나섰다.

동부와 서부 두 팀으로 나눠 전국을 순회하며 서명운동에 나선 일행은 오는 12일까지 전국 대도시를 순회하며, 1000만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은 뒤 12일 서울에서 해단식을 열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세월호특별법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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