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엄지 손가락을 잃은 깜언씨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깜언씨는 아직도 손가락이 달려 있다는 착각과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기복
인도네시아 출신 깜언(가명)씨는 지난해 9월 XX산업에 입사한 당일 오후 2시에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전체가 절단됐고, 다른 손가락들도 모양이 일그러졌다. 충남 천안에 소재한 XX산업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깜언씨는 서울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궂은 날씨만 되면 절단 부위에 통증을 느낀다.
3개월간 입원 및 통원 치료를 받은 후 그는 공장에 복귀했다. 이후 페인트 도장 업무를 하다 지난 6월 말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퇴사했다. 그런데 깜언씨는 뒤늦게 회사에 산재 처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가 근무한 XX산업은 유명 자동차 그룹의 계열사 업체로 산업설비 제작설치 분야에서 국내 최고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다. 해당 회사는 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외국인력 고용이 제한되는 기업이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의하면 대기업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다. 현행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제조업의 경우 상시 근로자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의 중소기업만 외국 인력을 쓸 수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 제조업 분야의 외국인 고용 허용 인원은 상시 근로자 101∼150명인 업체는 20명 이하, 201∼300명인 업체는 30명 이하, 301∼500명인 업체는 40명 이하다. 건설업은 연평균 공사금액을 기준으로 신규 고용한도를 설정한다. 최대 30명 이내에서만 고용이 가능하다. 이런 규정은 내국인 고용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는 사업장은 드물다. 대기업 계열 사업장에서도 쉽게 이주노동자를 목격할 수 있다. 대기업이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청업체 혹은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장기간 고용한다. 흔히 말하는 불법파견·비정규직 문제가 이주노동자 고용에서도 발생한다.
회사가 산재처리 대신 공상처리한 이유깜언씨는 XX산업에서 작년 9월부터 금년 6월 말까지 근무했다. 치료를 위해 쉬었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7개월 이상 일을 한 셈이다. 그러나 사업주는 깜언씨를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XX산업 직원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깜언씨가 산재 처리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XX산업에 전화를 했지만, 회사는 깜언씨를 고용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하청업체는 깜언씨를 고용노동부 고용센터가 아니라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채용했기 때문에 고용 사실마저 숨기려고 했다.
원청업체가 하청 혹은 인력파견업체의 노동자를 자신의 작업장에 데려와 쓰는 것을 '파견'이라고 한다. 깜언씨는 XX산업의 하청업체에 채용됐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XX산업에서 일하면서 해당 사업장의 업무 지휘감독에 따라 일을 했다. 사실상 불법 파견이다.
원청 XX산업은 근로계약서상 고용한 적이 없다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깜언씨를 고용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깜언씨는 우리와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다"라며 "며칠 일을 해보고 고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구두 계약한 상태에서 첫 날 사고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그는 병원비도 지급받았고, 퇴원 후 석 달 동안 사측으로부터 휴업급여도 받았으니 손해 본 것이 없다"며 "오히려 원청 눈치도 봐야 하고, 인력관리에 애로가 많은 우리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근로자가 근무 중 상해를 입었을 경우 이처럼 고용주 임의로 근로자에게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을 통상 '공상' 처리라고 한다. 노동자는 공상 처리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거한 '산재' 처리 중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보상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시 깜언씨는 두 제도의 차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고, 회사로부터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 회사가 병원비를 주겠다고 해서 받았을 뿐이다.
깜언씨는 산재 처리를 할 경우에만 해당 업체에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깜언씨는 피해 보상과 장해 수당을 요구하고 있지만 XX산업은 산재 처리를 거부하고 있다. 깜언씨처럼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상당히 많다.
근로계약 체결하지 않아도 원청 책임 있어지난해 12월 8일 대법원은 "파견 근로자가 산업재해를 당한 경우, 근로자를 고용한 하청회사뿐만 아니라 실제 근로자가 일한 원청회사에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사용사업주가 자신의 작업장에 근로자를 파견 받아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경우, 근로자를 위한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전제했다.
사법부는 원청업체가 근로자를 파견 받아 지휘·감독하던 과정에서 근로자의 생명·신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필요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노동자와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원청회사에도 업무상 재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인정한 셈이다.
깜언씨의 경우에는 이미 하청업체와 구두 계약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구두 계약도 계약으로서 유효하기 때문에, 작업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깜언씨는 산재보험에 따라 장애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 양측 회사에 별도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제도는 미흡하고, 기업은 무시하고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들은 대체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린다. 영세업종이든 규모가 큰 기업이든 내국인 고용이 어렵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각 업체에서는 이주노동자를 더 배정해 달라고 관계기관에 로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는 무관심하다.
오는 8월이면 외국인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만 10년이 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고용허가제 입국 이주노동자는 23만 명이 넘었고,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동포는 22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임금과 퇴직금 체불은 여전히 일상적이다. 근로계약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인권침해 및 차별 문제는 누누이 지적돼 왔다. 욕설·성희롱과 관련한 하소연에 귀 기울이는 고용주는 드물다. 산업현장에 배치된 이주노동자 담당자들의 인식은 10년 전과 비교해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우 역시 현대판 노예제라고 까지 비판받던 산업연수생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들은 사업주 동의가 없으면 사업장도 변경 할 수 없다.
사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표면상의 이유로 '인력난'을 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주는 내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저렴한 인건비·인력 확보의 용이함 등의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고집한다. 내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려는 고용주는 드물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을 잠식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지적이 온당하지 않은 이유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다른 사업 영역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한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 역시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 중 하나다. 이주노동자 권익 보호가 기업과 사회 나아가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하다는 인식 개선이 없다면 깜언씨의 불행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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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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