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 방랑벽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서평] 길 위의 사진가가 찍고 쓴 <걷다 보면>

등록 2014.07.13 16:59수정 2014.07.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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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정의 가운데 마음에 드는 표현이 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갖는 것" 소설 <어린 왕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1900~1944)가 했던 말이란다. 여행을 떠날 때 동행자마냥 카메라를 꼭 챙기는 홀로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길 위의 사진가로 불리는 김진석의 <걷다 보면>은 생텍쥐페리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 포토 에세이다. 저자가 홀로 걷고 또 걸으면서 찍은 사진과 짧은 에세이가 곁들여져 있어, 독자도 마치 같이 그 길을 걷는 것처럼 책장을 천천히 넘기게 되는 책이다.


걷기를 한없이 싫어하던 저자가 제주올레를 만나면서 걷기를 시작했고, 홀연히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400㎞ 순례길인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루 코엘류가 걷고 나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운명의 길부터 제주 올레길, 히말라야, 투르 드 몽블랑, 규슈 올레까지. 책에 펼쳐진 풍경과 걷는 사람들, 찰나의 순간 속에는 저자가 깨달은 새로운 시선들이 가득하다.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것은 사진에 담긴 이들의 기쁨, 고통, 슬픔,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걷고, 먹고, 자며 조금 더 진실 되게 그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나를 보고 느낀다. 결국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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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걷다 보면> 책 표지 ⓒ 큐리어스

맨몸으로도 걷기 힘든 카미노 순례길을 20kg이 넘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걷는 그를 보고 한 노부부는 '카미노 데 포토그래퍼'(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저자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 작업을 한단다.

책 속엔 걸어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바람, 물, 그늘, 풀, 벌레, 돌멩이···. 그리고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의 기쁨과 고통, 슬픔, 희망을 느린 걸음과 함께 찬찬히 사진 속에 담아냈다.


걷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사실 그냥 걷기만 해도 좋다. 걷다 보면 사진도 찍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 그런데 이 책 <걷다 보면>을 보면 누구나 걷다 보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걷는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일이다. 멋진 순간이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은 도보 여행가에게 저자가 정리한 '카메라와 함께 걷는 법'은 그래서 꼼꼼하게 읽힌다.

"사진에 갇히지 말고 그냥 걷는 일 자체를 즐겨라, 핸드폰이라도 좋다 내 몸에 맞는 카메라를 선택해라, 이미지의 선입견을 지우고 보이는 걸 찍어라, 관심을 갖고 오감을 열어 두리번거려라, 풍경과 인간이 하나가 되도록 배경을 먼저 보라, 걸어갈 길을 상상하고 미리 걸어보면 그 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책 속엔 힘든 걷기 여행 가운데에서도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와 눈길을 끈다. 저절로 찍히는 멋진 풍광의 사진과 달리, 어떤 방법을 썼길래 여행자들을 활짝 웃게 만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의 비결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정수를 찌르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으려면 내가 먼저 환하게 웃으면 된다. 인물사진을 잘 찍는 특급 비결은 찍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마음의 거리만큼 카메라의 거리도 가까워지기 때문이겠다.

중요한 건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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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능선의 저 야크처럼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 저자의 말. ⓒ 김진석



"왜 카미노를 걷기로 했는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걸으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늘 답을 찾을 수 없다면, 내일 생각해보자. 그래도 안 떠오르면 그 다음 날, 또 다음 날..." - 본문 가운데

처음부터 그가 걷기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는 달라졌다. '길 위의 사진가'로 거듭났던 것이다. 그는 이제 걷기 전도사가 되어 걷고 또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누구에게나 지금 이대로 살아가고 있는 게 괜찮은 건지 묻고 싶은 순간이 온다. 작가가 이때 찾는 곳이 길이다.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저절로 정리돼서란다.

"중요한 건 한 걸음을 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책 속 순례자의 말이 마음을 흔든다. "걷다 보면 결국 종착역은 나"라는 그의 말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고 답하는 길을 걷는 이가 건네는 사진과 짧은 글은 독자의 마음속에 무게감 있게 실린다.

사실, 걷기 특히 저자처럼 혼자 걷는 여행은 무척이나 고독한 행위다. 하지만 걷기에 중독된 이에게 때로는 고독이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친구는 '자신'만으로 충분하게 될 때, 비로소 고독이 주는 완벽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그때의 여행이란 십중팔구 '홀로 걷기 여행'이지 싶다.

홀로 걷는 사진가인 저자 김진석의 포토 에세이는 일반 책보다 작고 얇지만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책이다. 사람도 걷고 동물도 걷는다. 손안에 들어오는 사진 갤러리로 삼아 곁에 두고 일상적으로 봐도 좋겠다. 다만, 산티아고, 제주 올레, 히말라야, 투르 드 몽블랑, 규슈 올레, 아프리카의 길들을 자주 보면 방랑벽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망한다.

덧붙이는 글 <걷다 보면>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 김진석 찍고 씀 / 큐리어스 펴냄 / 2014년 7월/ 1만 4500원

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큐리어스(Qrious), 2014


#걷다보면 #김진석 #걷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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