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9시 58분, 창문 밖은 바다 속이었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⑤] A학생의 법정 증언

등록 2014.07.29 01:26수정 2014.08.1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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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30일 오후 11시 50분]

참사 104일 만에, 단원고 생존 학생 가운데 첫 번째로 증인석에 앉은 A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약 30분 동안 진술을 하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목에는 'remember 0416' 노란 팔찌가 걸려 있었다.

4월 16일 그는 아침식사를 마친 뒤 숙소 SP-1번방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확 기울었던 배는 점점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28일 검찰이 법정에 제시한, A학생이 사고 당일 오전 9시 58분 찍은 선실 창문 밖 풍경은 그저 퍼렇기만 했다. 이미 바다 속에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A학생은 방에 물이 차올랐을 때 캐비닛 안에 잠깐 갇혔다가 빠져나왔다고 했다.

당시 겁을 먹은 학생들은 캐비닛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넘어지면서 캐비닛이 쏟아지는 바람에 학생들은 그만 그 속에 갇혀 버렸다. A학생은 캐비닛을 치운 다음 잠깐 물에 잠겼지만, 구명조끼 덕에 곧바로 몸이 떠올라 복도로 탈출할 수 있었다.

다음은 A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다"

[검찰 측 신문]


"사고 당일에는 밥 먹고 방에 있었다. 갑자기 배가 기울면서 주변이 그냥 한쪽으로 다 쏠렸다. 창문 쪽(좌현)으로. 컨테이너가 떠있는 것도 봤다. 쿵하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안내방송에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처음 나왔던 시각은 기억나지 않는데, 계속 방송이 나왔다. 다른 내용도 있었다. 주변에 잡을 것 있으면 잡고, 구명조끼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착용하라고. '특히 단원고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에서 대피하라거나 어디로 해서 탈출하라고 하는 말은 없었다. 나중에 온 해경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구명조끼는 입고 있었다. 반장 친구가 줬다. 방송이 나오기 전에 입으라고 해서 입었다. 그리고 계속 (안내를) 기다리다가 방에 물이 막 차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다."

9시 58분, 창밖은 이미 바다... "방에 물이 차서 나왔다"

"(검사가 제시한 사진을 보고) 배가 기울어서 창문이 바다 속에 잠긴… 내가 그날 9시 58분쯤에 촬영한 것 맞다. (창문을 보면 이미 바다 속인데도 왜 기다리고 있었냐는 물음에) 기다리라고 해서…."

"물이 방안까지 다 찬 다음에는 친구들이 밑에서 받쳐줘서 (선실 밖으로) 올라왔다. 친구들이 따로 지탱할 건 없었고 그냥 팔 힘으로 이렇게 조금씩…. 나와서 복도를 걸어갈 때는 아예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바닥이 되어서 힘들진 않았다."

"배에서 나가는 중에 선원이나 해경이 도와준 적은 없었고. 딱 나갔을 때, 밖에 (누군가) 있었다. 해경인지 누군지는 모르는데 바다에 빠진 애들 건져 올려주는…. 계속 친구들끼리 도와주면서 나왔다(계속 증인석 밑에서 옆자리에 앉은 친구 손을 잡은 채 대답함)."

"나올 때 발가락이 약간 까졌는데,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상황이 자꾸 생각나서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다 생각나진 않는다…. 선원들은 엄벌에 처해 달라."

"(선실에 있던 캐비닛을 탈출에 이용했냐고 묻자) 이용한 게 아니라 저것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가 더 힘들었다. 원래 저 밑에 공간으로, 배가 좀 많이 기울었을 때 창문 쪽이 무서워서 그쪽으로 안 가려고 들어가 있었다. 근데 물이 조금씩 들어오다가 나중에 (밀려오면서) 캐비닛이랑 물건들이 다 쏟아지고, 캐비닛끼리 부딪치면서 물이 내 머리까지 올라갔다(손으로 머리 위에 물이 찼다는 시늉을 함). 캐비닛이 떠올라서 놀라서…. 그냥 발버둥 치니까 치워졌다."

"방에 물이 천장까지 찼을 때 나왔다. 구명조끼를 입었으니까 (몸이) 떠올랐다. 처음에 캐비닛 안에 갇혔을 때는 숨을 잘 못 쉬었는데, 치우고 나왔을 때는 구명조끼를 입어서 떠올랐다. 물에 몇 초 동안 잠기기도 했다. 다시 몸이 떠올랐을 때는 문 쪽으로 올라와서 (복도로) 나왔다."

"'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카카오톡 보냈다"

[변호인 측 신문]

"(사고 당일 9시 18분에서 9시 21분 사이에 '나 죽을지도 몰라, 배에 있던 화물들 바다로 다 떨어지고 난리 났다, 전기도 다 나갔다'는 내용으로 카카오톡 보냈던 상황을 물으며) 안내방송이 이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나왔는지 후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카카오톡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처음에 SP-1번방에 몇 명이 있었는지, 물이 차서 방에서 나올 때엔 몇 명 남아 있었는지도 모정확히는 모르겠다."

"사고 당시 기울기도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에는 배가 기우는 줄 몰랐는데, 조금씩 기울다가 창문에 (바다가) 가까워졌을 땐 그전보다 빨리 기울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말고, '10분 또는 5분 후에 구조선이 도착한다, 헬기 또는 구조선이 도착했다, 배에서 탈출하라' 이런 방송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관련 기사]

[생존 학생 증언①] "비상구 문 열어준 사람은 해경이 아니라 친구였다"
[생존 학생 증언②] "왜 친구들이 그렇게 됐는지 근본적인 이유 알고 싶다"
[생존 학생 증언③] "파란바지 아저씨가 나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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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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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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