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절집 우도 금강사 주위 풀들을 제거하는 처사님의 보시는 행이었습니다.
임현철
풀이 무성합니다. 무심했었습니다. 바삐 지낸 탓입니다. 지난 22일, 식전(食前)부터 "애~~~ 앵" 날카로운 기계음 소리가 진동합니다. 밖을 살피니, 한 처사가 풀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절집의 어지러운 마당이 많이 거슬렸나 봅니다.
새벽 예불 후, 서예 연습에 몰두하였을 덕해스님(제주도 우도 금강사)도 머리를 문 밖으로 쏙 내미시고는 빙그레 웃습니다. 이심전심의 염화미소였습니다. 벌써 이럴 것임을 알았던 게지요. 그 모습이 어찌나 자애롭던지, 반할 지경이었습니다.
"일찍 오셨습니다.""아침에 풀 베어 놓고 일 가려고요."부지런한 손놀림입니다. 읽던 책을 접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스님은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상 못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생각하는 순간 몸이 움직인 게지요.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에서 불상을 배치하는 원리를 떠올렸습니다.
불상은 대개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쪽에 보현보살이 자리합니다. 사자를 새긴 관을 쓰신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합니다. 또 코끼리 문양의 관을 하신 보현보살은 행(行)을 나타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가 함께 움직여야 이상적인 걸 일깨우기 위함이다"고 합니다.
"절집 주위가 점점 깔끔합니다." 그가 뜻하지 않은 칭찬에 미소 지었습니다. 제주도 우도봉과 성산 일출봉을 배경 삼아 움직이던 그가 관음보살상 및 동자승과 나란히 선 모습에서 부처를 생각했습니다. 부처가 어디 따로 있던가요. 행하면 그게 부처님이신 거죠. 그가 지나간 자리에 널브러진 풀의 흔적들은 스님께서 정리하셨습니다.
마치 '살생부'를 손에 든 '한명회' 같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