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끝에 돌아온 나, 그는 용서하지 않았다

[치느님은 언제나 옳다②] 치킨 전성기를 보냈던 그때가 그리워

등록 2014.08.16 16:55수정 2014.08.1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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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삭한 튀김 껍질 안에는 하얀 속살이 들어 있다
바삭한 튀김 껍질 안에는 하얀 속살이 들어 있다 김다솜

"나를 영접할 때는 그 어떠한 때라도 경건함을 잃지 말지니라."
"나의 다리는 가장 성스러운 것이니 가장 노고가 큰 자에게 그 영광이 돌아갈지니라."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치느님(치킨+하느님) 십계명'이다. 이뿐이랴, '1인 1닭', '치타쿠(치킨+오타쿠)' 등 치킨을 찬양하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치킨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백하건대 나는 신실한 치킨 신자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 놀랍게도 본래 치킨은 내게 별 의미가 없는 음식이었다. 웰빙을 쫓던 부모님은 음식 간을 항상 싱겁게 했고, 치킨 같은 배달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풍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도 치킨에 목매는 학창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치느님의 은혜를 입게 된 건 대학생부터다.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방에 놀러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치느님'을 부르짖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기름덩어리를 먹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쫄깃한 식감과 바삭한 튀김 껍질이 언제나 옳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고학년이 될수록 자취방을 찾는 친구들의 발길은 줄었다. 다들 취업 준비에 매진해서다. 치킨을 함께 먹어줄 누군가가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1인 1닭'이 가능한 경지에도 이르렀다.

짧은 치킨 전성기... '외도'에 빠져버렸다


 둘이서도 다 먹을 정도로 맛있었던 무뼈 닭발 2번 세트. 못 먹은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둘이서도 다 먹을 정도로 맛있었던 무뼈 닭발 2번 세트. 못 먹은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김다솜

'1인 1닭'은 약과였다. 본격적인 치킨 전성기는 올해 대학원생이 된 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맞이했다. 치킨 메이트(?)가 생겼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기숙사 통금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내게 룸메이트는 치킨 메이트나 다름없었다.

"치킨 파티원 구함."
"B603으로 오셈!"
"갈릭 반, 간장 반으로 부탁드려요~."


오후 11시. 기숙사 통금 시간이 가까워 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같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원 동기들의 전체 카톡방 상황이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기숙사 생활은 밤마다 야식의 향연이었다. 먹고 싶을 때마다 치킨을 먹을 수 있다니! 

누구든 제안만 하면 벌떼같이 달려드는 야식 파티였다.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중국 대륙에선 치맥(치킨+맥주) 열풍이 불고 있다고 했던가. 내가 살던 기숙사에도 치맥 열풍이 불었다. 치킨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맥주는 하루의 피곤함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치맥은 빡빡한 대학원 생활 속 유일한 기쁨이기도 했다. 덕분에 몸은 무거워지고,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불어버린 몸뚱아리도 가벼워진 주머니도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은 서울로부터 2시간 떨어진 아주 작은 도시(?)에 있다. 대학원 주변 상권은 거의 없다. 야식이라 해봤자 '치킨'이 거의 유일하다는 거다.

문득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닭다리살을 보고 진절머리가 난다면 당신은 치느님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치킨'이란 단어만 들어도 설렜던 내 마음은 점점 식어만 갔다. 치킨과 찰떡궁합이라 생각했던 맥주도 함께 말이다.

치킨 전성기에도 끝은 있었다. 바로 '외도'. 치느님과의 행복한 나날이 저물어갈 때쯤 내가 만난 건 기숙사 문 앞에 붙어 있던 '닭발'집 전단지였다. 조리 방법만 다를 뿐이지 같은 닭이니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나름 신선한 만남이었다.

매콤한 양념이 발린 쫀득쫀득한 닭발은 날 흥분시켰다. 치느님에게서 돌아선 뒤 나는 '무뼈 닭발 2번 세트'와 친해지기로 했다. 무뼈 닭발 2번 세트는 계란찜과 오돌뼈 주먹밥, 그리고 무뼈 닭발이 같이 왔는데, 거기에 소주 한 병을 시키면 치킨에 질려버린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합이었다.

방학은 날마다 임시 휴업일? 나는 어쩌라고

 자주 시켜 먹던 단골 치킨집. 갈릭 반, 간장 반을 제일 좋아했다. 지금은 잦은 임시 휴업일로 만나보기가 힘들다.
자주 시켜 먹던 단골 치킨집. 갈릭 반, 간장 반을 제일 좋아했다. 지금은 잦은 임시 휴업일로 만나보기가 힘들다. 김다솜

문제는 여름방학이 되면서부터다. 기숙사에서 처음 맞이한 방학은 내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치킨집 대신 가깝게 지냈던 닭발집이 문을 닫았다. 그 외에도 학교 앞에 몇 개 없는 술집과 음식점은 거의 다 문을 닫았다. 하물며 배달 음식점은 어떠랴. 역시나 많은 곳이 방학동안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방학이 되자 텅 비어버린 캠퍼스를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 도시에 있는 우리 학교의 경우 방학이면 학생들 대부분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윤이 남지 않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결국 나는 닭발과의 외도를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치느님은 외도를 하다 돌아온 나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오늘은 임시 휴업일이니 다음에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잠시 닭발에 한눈을 판 사이 치느님은 나와 '밀땅(밀고 당기기)'을 하고 싶으신지 규칙없는 임시 휴업일을 만들어내셨다. 대다수의 배달음식점이 문닫은 것도 내겐 너무 잔인한 일인데, 흔하다고 생각했던 치킨집마저도 쉬는 날이 잦다니!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치킨이 정말 먹고 싶어 전화를 걸면 임시휴업일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치킨 메이트와 방학 동안 쿠폰 10장을 모아 순살 후라이드를 시켜 먹자는 약속은 지키기 어렵게 됐다. 학기 중에는 치킨 쿠폰 모으기가 누워서 침뱉기였는데, 방학 이후에는 한 장밖에 모으지 못했다.

치느님을 영접할 기회가 적어지니 애틋함은 더해졌다. 치킨 메이트는 치느님을 만나는 날이면 "현기증이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계를 보며 치느님을 마주할 시간을 재는 모습이 마치 기숙사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같다. 살도 빠졌다. 몸무게 유지 혹은 증가 비결이었던 야식이 날아간 지금,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로 거울을 마주할 일도 줄었다.

혹여나 치느님께 소홀한 당신이 있다면 꼭 당부하고 싶다. 있을 때 잘하란 소리는 사람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걸 잊지 마시길!
#치느님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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