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도 마음도 세월호에 데어버렸다. 화물기사 최재영(49)씨는 7월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앉아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날 입은 중증 화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단원고 학생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최씨는 이날 증언 도중 울먹였다.
"어차피 다쳤던 몸은 다시 회복해서 일하면 되는데, 저한테 지금 제일 힘든 부분은…. 그 여학생 3명과 마지막에 눈빛 교환을 했던 것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 그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4월 16일 최씨는 오전 8시 30분쯤 일어나 동료들(한승석씨 등)과 함께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기 위해 매점에 갔다. 뜨거운 물을 받는데 갑자기 배가 오른쪽으로 선수가 틀어지더니 왼쪽으로 넘어가버렸다. 최씨는 동료와 얼른 온수통을 잡았다. 하지만 곧바로 '콰콰쾅' 소리가 나면서 배는 50도 정도로 기울어져버렸다. 최씨는 이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면서 엉덩이부터 발까지 화상을 입었다. 그는 지금도 병원에 입원 중이며 앞으로 1년 이상 더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고 당시에는 1~2분 후에야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씨는 "계산대 위로 올라가서 발을 보니까 껍질은 다 벗겨지고, 피도 났다"며 "그 상태에서 의자를 밟고 안내데스크 앞쪽으로 넘어가서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승무원 강혜성씨와 박지영씨가 있었고, 식당 앞에 있던 소파 근처에 여학생 3명과 어른 1명, 남학생 2명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S-1번방과 S-2번방, S-3번방 쪽으로 누워 있는 학생들까지 해서 30~40명 정도가 눈에 보였다"고 했다.
최씨는 우선 동료 화물기사 한승석씨에게 조난신고를 하라고 말했다. 또 박지영씨에게 "이 배에서 제일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사람이 선장이니까, 선장 명령이 제일 중요하니까, 조타실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전을 쳐보라"고 했다. 박씨는 여러 번 무전 교신을 시도했지만 "응답 없이 지지직 소리"만 났다.
배가 기울고 30분쯤 지났을 때, 헬기 소리가 크게 들렸다. 최씨는 "구명보트 소리도 들려서 저희들이 같이 나자고 했다"며 "좌현 갑판 쪽 출입문으로 기어 나왔다"고 말했다. 이미 배가 많이 기울어진 터라 해수면과 난간의 높이 차이는 30~50cm 정도로 보였다. 최씨는 구명조끼를 안 입었지만, 배가 곧 침몰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30m 정도를 헤엄쳐 해경 구명보트에 올랐다.
이후 최씨는 해경에게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고 증언했다. 구명보트가 세월호에 근접했을 때, 좌현 갑판 쪽 난간에는 자신이 구명조끼를 양보했던 여학생 1명과 구명조끼를 못 입은 여학생 2명이, 기둥에는 남학생 2명이 매달려 있었다.
남학생들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눈을 마주쳤다. 여학생들은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공유하기
"뛰어내리지 못한 여학생들 눈빛, 잊을 수가 없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