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규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공무원의 감사원 감사를 면제하도록한 조항이 정부 입법안에서 삭제되자 재검토를 지시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감사 면제 조항이 헌법상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됐는데도 박 대통령이 사실상 해당 조항을 부활시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안건으로 올라온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국무위원 간 토론이 벌어졌다. 안건 처리 직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규제개혁 추진 공무원의 감사면제 조항이 삭제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최경환 "감사 면제 삭제, 아쉽다"... 박 대통령 "다시 생각해야"최 부총리는 "감사원에서 헌법상 직무감찰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삭제된 것 같은데 아쉽게 생각한다"라며 "법은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입법정신이 반영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정부에서 규제개혁을 외쳐본들 실제 규제를 집행하는 감사가 두려워서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규제완화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규제를 완화해도 경제활동에서 전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라며 "감사원이 그런 입법정신이 관철될 수 있도록 특별하게 감사 법률을 집행해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법이 그렇게 안돼 있다 하더라도 취지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했는데 법이 그렇게 안돼 있는데 취지를 무슨 방법으로 살리겠느냐"라며 "이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상 감사원을 질책하면서 내각에 감사 면제 조항을 다시 살리라는 지시를 내린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20일 열린 규제개혁장관 회의에서도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무원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규제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다) 나중에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사에서 면책해 주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규제 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법령 해석과 이에 따라 업무를 추진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감사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부처 논의 과정에서 감사원이 '헌법상 직무감찰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논의 끝에 결국 이날 국무회의에는 감사면제 조항이 삭제된 개정안이 상정됐다.
"혁명적 조치해야"... 위헌 우려로 삭제됐는데 부활 지시한 대통령이날 국무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는 "일선의 얘기를 들어보면 감사가 두려워서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예를 들어 감사원에 '이것을 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사전감사 지도제를 도입한다든지, 일하지 않고 행정을 몇 개월째 지연시키는 사람, 적극적인 행정을 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한 감사도 이뤄져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중요한 말씀인데 감사원의 감사가 어떤 식으로 되느냐에 따라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공무원의) 모든 행동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어 "일선에서 '의욕적으로 하려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하고 주저하게 된다면 우리가 노력해도 소용이 하나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런 경우에는 감사원이 조금 혁명적인, 과감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라며 "조금 더 다시 의논을 공무원들의 위축된 마음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공무원들이) 법대로 '안돼요'가 아니라 법대로 안되더라도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되게 해주는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라고도 말했다.
결국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감사 면제 조항이 삭제된 채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박 대통령의 지시로 해당 조항을 다시 포함시키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공무원들은 제도적인 보호가 있다고 해도 두려움을 버리기가 어렵고 이게 소극적 행정을 하는데 빌미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다"라며 "감사원과 정부가 협의해서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위헌 우려 때문에 삭제된 법 조항을 다시 법에 넣으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는 초헌법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헌법의 가치 보다 '규제 완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맹목적인 '규제 완화 만능주의'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감사원의 반대가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도 있지만 감사 면제를 법 조항에 넣을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등 부작용 우려도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것(공무원의 소극적인 자세)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절대 안 고쳐진다"라며 "규제로 죽고 사는 판인데 심각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감사원 "면책 제도 이미 내부 정비 끝내"이날 감사원은 이미 행정면책 요건을 구체화하고 그 기준도 완화하는 등 내부 규정을 정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행정면책 제도가 요건이 까다롭고 추상적이라고 해서 요건을 용이하게 했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없고 사전검토를 통해 결제절차를 거쳤다면 적극 면책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다"라며 "그 이후에 면책 건수가 상당히 확대됐다"라고 말했다.
또 김 사무총장은 "어떤 때 적극 행정으로 상을 받고 어떤 때 소극 행정으로 처벌을 받는지 사례집을 만들었다"라며 감사가 규제개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감사를 통해 규제 완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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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의 규제완화? 박 대통령 '감사 면제' 부활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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