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없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있을 뿐

<데미안>이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

등록 2014.08.27 11:51수정 2014.08.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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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윤 일병 살인사건은 한국의 군대문화가 얼마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입해온 지 얼마되지 않아 말 그대로 맞아 죽은 윤 일병의 참담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들이 과연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하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어디 윤 일병 뿐이겠는가. 윤 일병 살인사건 이후 불거진 군대 내 폭력사건 및 가혹행위 사례들을 보면 경악할 만한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다.

악마. 흔히 천사와 대비되어 묘사되는 악마는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고 온갖 악을 행하게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를 꾀어 타락시키는 메피스토텔레스가 바로 악마의 전형이다.

그런데 영화나 소설 속의 존재인 줄만 알았던 악마가 우리사회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다. 유영철, 조두순, 강호순 등 흉악한 방식으로 연쇄살인과 성폭력을 저지른 이들이 나타날 때면 흔히 악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인면수심의 살인마이고 악마적 성도착자이며 비인간적 사이코패스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선 사람들이 공유하는 도덕률이 내재되어 있지 않으며 양심이 없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각엔 맹점이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태어나고 길러졌다는 점이다. 윤일병 살인사건도, 작혹한 범죄내용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김해 여중생 살인사건도, 그 밖에 온갖 흉악한 범죄들 모두가 우리사회가 낳고 기른 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악마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모든 문제가 그들 개인의 악마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사회구조적 문제일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물론 어떠한 잘못도 그 최종책임은 잘못의 당사자에게 있다. 이들 가해자들 역시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이들의 범죄행위를 오직 개인의 악마적 본성 때문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늘날 한국은 군대 뿐 아니라 학교, 나아가 사회 전반에 걸쳐 폭력이 만연해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은 폭력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폭력사건의 가해자들이 한 때 폭력사건의 피해자였다는 조사결과는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아프락사스로 상징되는 선과 악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몸 안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존재하고 신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머리가 둘 달린 신, 아프락사스. 이는 한 사회와 개인이 선과 악의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선은 악이 없음이 아니라 선을 키운 것이고 악 역시 선이 없음이 아니라 악을 드러낸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우리 자신도 이와 같다. 잔학한 범죄행위의 가해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들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로부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선과 악의 가능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키워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악마가 없다면 그들 역시 악마가 아니고, 그들이 악마라면 우리 역시 악마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괴테 #파우스트 #메피스토텔레스 #헤르만 헤세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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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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