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레기'의 탄생

등록 2014.08.29 19:18수정 2014.08.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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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레기'의 탄생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쓰레기 같은 기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이들을 '만드는' 주체는 대체 누구인가? 아침에 일어나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면, 오늘도 소위 '검색어 기사'가 넘쳐나고 기사 말미에는 출처도 없는 '네티즌 반응'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깊은 성찰도, 믿을 만한 근거자료도 없는 기사에는 '기레기'를 욕하는 댓글이 줄을 잇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기사의 조회수를 올려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기자의 사회적 위신이 이렇게도 낮아진 것이 단지 기자 개인들의 '자격 부족' 때문일까? 나는 조금 더 구조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페이지뷰에 목매는 인터넷 신문... 언론도 '장사'다

모 일간지 인터넷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생 A씨는 요즈음 고민이 많다고 했다. 기자의 꿈을 품고 인턴을 시작했는데, 막상 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 A씨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가볍고 흥미를 유발할 만한 짧은 기사를 써내는 것이다. 기사의 출처는 대부분 국내·외 개인 블로그다.

"신기하거나 예쁜 사진이 있으면 더 좋아요. 그러면 조회수 올리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얼마 전에는 반나체로 돌아다니는 해외 여배우 사진도 갖다 썼어요."

A씨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A씨 본인 말고도 한 명의 인턴기자가 더 있다고 했다. 각 언론사마다 인터넷팀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수많은 인력이 이런 수준 낮은 기사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은 페이지뷰(조회수)로 먹고 산다. 신문의 광고수입이 판매 부수로 결정되듯, 인터넷 언론 매체는 조회수가 생명이다. 때문에 독자를 끌어당길 각자의 무기가 필요한데, 여기서 기존 매체(신문, 방송)와 인터넷의 차이가 갈린다. 전통적인 신문·방송 미디어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흔히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보수언론이고 경향신문·한겨레는 진보성향이라고 일컫지 않나.

이처럼 성향이 뚜렷하고 고정 독자가 있는 매체는 전달하는 메시지의 깊이, 정보의 참신함 등 언론 본연의 기능 수행 여부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 기사는 보도의 질로 승부하기엔 너무나도 순환 속도가 빠르다. 독자들이 점점 긴 기사를 정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 상의 가벼운 뉴스거리가 이용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시간은 기존 매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따라서 인터넷 신문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이미지와 문구를 동원해 조회수를 올리고, 독자로 하여금 재빨리 다른 페이지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익이다.

대학생 홍준영(23)씨는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볼 때는 중요한 기사만 읽거나 제목만 보고 넘어간다. 사실 연예나 스포츠 기사를 많이 보는 편인데, "기레기 기사"임을 알면서도 자극적인 사진이 있으면 클릭하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터넷 미디어 시장에는 오로지 '속도'와 '페이지뷰'라는 절대 가치만이 존재하게 되었고, 매체는 점점 더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충격'이라는 저서를 낸 더글러스 러시코프 교수(뉴욕대)는, '호메로스 이래 인류는 이야기로 세상과 역사를 이해했으나, "포스트 내러티브(post-narrative)"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뉴스에도 스토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미디어가 기사거리를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할 시간이 없기에 뉴스를 바로 바로 쏟아낼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인턴기자 A씨가 쓴 '기사'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단연 반나체의 해외 여배우 기사였다.

해결책은 결국 컨텐츠의 질 향상

이쯤되면 인터넷 신문이 자극적인 소재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현실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레기 공해'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살 것인가? 페이지뷰에 죽고 사는 인터넷 신문의 특성상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국의 사례가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신문사는 인터넷판을 유료화했다. 뉴욕 타임스는 2011년 자사 온라인 컨텐츠를 유료화한 이후 꾸준히 구독자 수를 늘려 왔다. 도입 후 2년 동안 구독자 수가 16%나 증가했다. 또한, 이와 별도로 자사 콘텐츠에서 사설과 칼럼만을 떼어내 구독료를 받는 'NYT 오피니언'(NYT Opinion)을 출범했다. NYT 오피니언은 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에서 자사 신문 사설란에 실린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인데, 이를 구독하면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들과의 질문과 답변(Q&A)에 참여할 수 있고, 편집인들이 엄선한 각종 온라인 논평들을 확인할 수 있다.

뉴욕 타임스가 인터넷 기사를 유료화했음에도 구독자가 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낸 돈이 아깝지 않은' 컨텐츠가 보장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 타임스는 수준높은 기사와 칼럼으로 유명하다. 국내 언론사들도 인터넷판에 대한 인식을 대폭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 선정적인 이미지, 자극적인 문구로 단기적인 주목을 끌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인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사례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겠지만, 참고할 만한 선례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제는 '기레기 공해'에서 벗어나고 싶다

공해성 기사에 대한 피로감은 결국 한국 독자층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근거가 확실한 기사, 깊은 성찰이 담긴 칼럼에 대한 수요가 올라감에 따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터넷 기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기레기 공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독자들의 열망을 새롭고 건전한 구독자층 확보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뉴욕 타임스와 같은 건전한 인터넷 신문 수익구조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언론비평 #인터넷신문 #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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