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는 무궁화 할아버지가 산다

농민들이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가파른 진입로 개선해야

등록 2014.09.04 19:44수정 2014.09.0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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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번국도 건설로 가파르게 변한 농로


"여보, 저기 우리 집 큰 대문이 보이네요."
"벌써요?"

남양주 도농역에서 출발을 한 지 1시간 20분 만에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서울 봉천동에 살 때에는 자유로를 통해서 오는 거리가 약 100km에 달했는데, 지난 2월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이사를 한 뒤로는 약 65km로 거리가 단축되어 기름 값도 절약되고 오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서울의 전세 값이 천정부지로 솟아올라 감당을 못하고 아이들이 부득이 남양주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봉천동 집 주인은 2년 전보다 전세금을 무려 20퍼센트나 올려달라고 요구를 해왔다. 그래서 견디지를 못하고 서울보다 값이 훨씬 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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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큰 대문격인 군 방어진지. 동이리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에 구축된 군 방어진지를 우리는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큰 대문이라고 부른다. ⓒ 최오균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로 가기 위해서는 38선을 넘어가야 한다. 동두천쯤 도착을 하면 사랑교를 건너갈까? 아니면 삼화교를 건너갈까? 하고 잠시 망서려 진다. 전곡에 볼일이 있는 경우에는 사랑교를 건너고, 그렇지 않으면 어유지리를 통해 삼화교를 건너간다.

사랑교를 건너오든 삼화교를 건너오든 동이리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방어진지를 통과해야 한다. 내가 이곳으로 처음 이사을 올 때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있는데다가 강을 몇 번이나 건너 이게 북한 땅인지 남한 땅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흐르니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 


동이리 마을로 진입하는 길은 방어진지로 통하는 이 길 밖에 없다. 동이리 마을은 3면이 임진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한 땅에서 발원한 임진강이 주상절리 적벽을 휘돌아 치며 남계리 벌판 끝에서 한탄강과 만난다. 두 강이 합수되며 임진강은 숭의전지를 지나 파주 쪽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머지않아 37번 국도의 연장선인 동이1교가 완성되면 전곡으로 바로 진입하는 인터체인지가 동리마을 입구에 생겨 자동차의 소음과 가스 공해가 많아질 것 같다. 개발은 편리함을 가져오지만 전원의 고요함을 앗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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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이 3면으로 둘러싸여 있어 반도처럼 생긴 동이리 마을에 37번국도 연장선인 거대한 '동이1교' 사장교가 완공단계에 있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소음과 공해가 유발될 것이다. ⓒ 최오균


방어진지를 지나면, 나만의 비밀의 화원이 펼쳐진다

방어진지를 들어서면 나지막한 금굴산 자락이 펼쳐져 있고, 논밭이 좁은 길 양편에 늘어 서 있다. 이 방어진지를 지나 금굴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마치 나만의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느낌이 들곤 한다.

태풍부대를 지나면 동이리 본 부락이 나오고, 그 앞에 작은 배울교를 건너면 거대한 동이1교 사장교와 만나게 된다. 공사가 한 창 진행 중인 도로 양편엔 붉은 공사 안전 표지판이 늘어서 있어 고요하기만 했던 전원의 느낌이 싹 없어지고 만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차량들이 이곳을 지나칠까?

원래 이 농로는 평지로 되어있었는데, 37번 국도 인터체인지를 만들면서 도로를 높이는 바람에 임진강 주상절리로 들어오는 진입로 입구가 약 23도 각도로 가파른 경사가 지게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 경사를 5도 정도로 낮추어 달라고 서울국토관리청에 진정을 내 놓고 있으나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어 농민들의 통행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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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평지로 된 농로였으나 37번 인터체인지를 만들면서 23도 각도로 가팔라진 진입로. 대부분 낡은 차를 가지고 있는 농민들은 통행에 많은 불편을 격고 있다. 더구나 겨울이 오면 음지라서 사고의 위험성이 크다 ⓒ 최오균


농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대부분 오래된 낡은 자동차에다가 트랙터 역시 낡아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에도 트랙터가 올라가다가 시동이 꺼져 사고가 날 뻔했다.

더구나 겨울철에는 응달진 곳이어서 눈이 내려 얼게 되면 차량통행이 어렵게 된다. 그런데다가 주상절리 절경이 알려지면서 휴일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어 안전사고의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문제의 공사 현장에서 좌회전을 하여 논둑 신작로를 따라 가면 바로 임진강변을 따라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직선길이 1.5km, 높이 40여m나 되는 주상절리는 마치 동이리 마을을 보호하는 아주  오래된 성곽처럼 보인다.

30만 년 전에 생겼다는 태곳적 적벽과 마주하다가 그 적벽 위로 100m 높이의 아득한 교각을 바라보노라면 잠시 혼동에 빠지고 만다. 태곳적 풍경이 개발에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여러 겹으로 겹쳐지며 복잡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개발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연을 훼손하는 피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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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년 전에 용암분출로 생긴 높이 40m의 주상절리 적벽 위로 100m 높이의 교각이 서 있다. ⓒ 최오균


3천 그루의 무궁화를 심겠다는 '무궁화 할아버지의 꿈'

문제의 공사 현장에서 2km 정도 앞으로 나가면 주상절리로 가는 길과 금굴산으로 가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건너편에는 '덕의터'라는 명패를 붙인 집이 한 채 있는데 팔십 가까운 김씨 노인부부가 살고 있다. 덕의터 입구에는 무궁화가 만발해 있다. 무궁화를 아주 좋아하는 김씨는 무궁화 3000그루를 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무궁화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지금은 약 300여 그루를 심어서 기르고 있는데, 무궁화 꽃이 매일 피고지고하며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가 이렇게 번성하게 피어나는 것을 가까이서 관찰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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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3000그루를 심겠다는 '무궁화 할아버지 김 씨 어르신 집. 그는 철 따라 꽃을 볼 수 있도록 화초를 계절별로 잘 배열해서 심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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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를 특별히 사랑하는 무궁화 할아버지는 현재 300여 그루의 무궁화를 심어 놓았는데 앞으로 3000그루의 무궁화를 심어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 최오균


무궁화 할아버지 집에는 철따라 쉬지 않고 꽃이 피어난다. 도심의 정원처럼 짜임새는 없지만 오히려 꾸밈없는 소박한 풍경이 늘 나를 사로잡곤 한다. 늘그막에 꽃을 가꾸며 살아가는 무궁화 할아버지의 마음이 고결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팔십이 다 되신 무궁화 할아버지가 낡은 자동차로 가파른 진입로를 오르내리기란 매우 위험하다. 당국은 겨울이 오기 전에 하루 속히 가파른 진입로 공사를 편편하게 바로 잡아 무궁화 할아버지가 낡은 차로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평화스럽고 고결하게 보인다. 나는 무궁화 할아버지 덕분에 철 따라 피어나는 꽃을 오며 가며 감상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오지에 사는 나의 즐거움을 충족시켜주는 무궁화 할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무궁화 할아버지의 꿈 #당포성 #유엔군 화장장시설 #임진강 주상절리 #동이1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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