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질과 톱질에서 배운 '서툶'과 '익숙함'

느릿느릿 천천히, 산에서 배우는 인생의 가르침

등록 2014.09.11 14:22수정 2014.09.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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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작은 집을 지었다. 집을 지을 때 안방은 다른 곳과 달리 깊이를 더 낮춘 다음 맨 밑에 온돌을 놓고 그 위에 보일러를 설치했다. 집 밖에서 나무를 때거나, 그게 어려울 경우 보일러를 돌려 방을 데울 수도 있도록 이중구조로 만든 것이다. 안방과 연결하여 불을 땔 수 있도록 아궁이를 만든 다음 큰 무쇠 솥을 걸며 아내와 함께 환호하던 날이 새롭다.


7월은 마른장마로 지나치더니 8월에 이르러서는 연일 비가 계속되고 있다. 더러 그 정도가 양동이로 물을 붓는 것 같은 때가 많아 걱정이다. 어제도 작은 밭에서 고추를 아예 뿌리째 뽑는 할머니께 왜 그러시냐고 여쭸더니 "다 썩어 부렀어, 인제는 먹기 틀렸어"라고 하셨다. 여름 내내 할머니께 고추를 꽤나 얻어먹은 죄가 있는 몸이라 죄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계속해서 비 먹은 날씨가 이어지자 몸까지 쭐쭐해지는 듯 했다. "쭐쭐하다" 이 말은 습기가 많은 날씨로 인해 몸까지 습도가 높아지고 마음까지 가라앉는다는 정도의 전라도 사투리가 될 듯하다. 지난 봄, 산나물을 캐면서 뒷산에서 봤던 고사한 나무들이 생각났다. 쭐쭐한 데다가, 집이 다소 높은 지역에 있어 새벽이면 춥기까지 하기에 그 때 봤던 나무를 때 온돌을 덥혀보기로 했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가는 길

지난 토요일(6일)에는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미리 철물점에서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벼운 지게를 샀고 대나무로 작대기도 만들었었다. 강아지들을 풀어준 뒤에 아내를 재촉하여 길을 나섰다. 강아지들이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구름 낀 산. 우리를 품에 안은 산골의 오후는 유유한 바람만큼 넉넉했다.

물기를 머금은 산은 지나칠 때마다 정기를 내뿜어 줬다. 나무들은 촘촘하게 얽힌 줄기와 이파리를 빽빽하게 하늘로 치켜 올렸다. 저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품어 올린 생기를 가득히 선물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풍경으로 인하여 가다가 멈춰서 바짓가랑이를 물어뜯는 강아지들의 장난마저 그날만큼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넘었다. 촉촉한 푸른 이끼가 끝나고 산속으로 방향을 바꿀 즈음, 산의 입구에서 쓰러진 포플러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인적이 없는 산속이지만 나무가 거의 산길을 가로막은 형국이라서 다른 길손들을 위해서도 베어 내야할 상황이었다.

작대기를 세워 지게를 고정하고 톱을 꺼내면서 "더 크고 긴 톱을 살걸"하고 잠시 후회했다. 지게에 지고 갈 정도를 눈길로 가늠하고 톱질을 시작했다. 아, 톱질...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곧 땀이 뻘뻘 나고, 어깨에 스멀스멀 고통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실거리는 나를 보더니 아내가 내게서 톱을 빼앗아 이어 썰었다. 곧 아내도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다시 내가 바통을 넘겨 받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주고받았을까. 이내 썰어야 할 나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에 따라 흘려야 할 땀도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일시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빨리하기보다는 느리게 천천히 했다. 등산처럼, 달리기처럼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 그게 답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차분히 하여 느릿느릿 천천히 하다 보니 어느덧 고통이 사라졌다.

우리네 삶도 그렇게 느릿느릿 천천히

강아지들이 풀숲에서 마음대로 뛰놀며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돗개들은 강아지 때 만난 주인을 평생 동안 섬긴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의 백구가 할머니를 못 잊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다시 진도의 할머니 댁까지 천릿길을 찾아온 것 아닌가.

사람의 삶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신뢰는 평생 가능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온전할 수 있도록 느릿느릿 천천히. 결국 우리는 지름 40cm가 넘는 나무 둥치 네 개를 썰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세 둥치는 지게에, 둥치 하나는 아내가 안고 내려왔다. 평생 몇 번 해보지 않은 지게질이었지만, 산이 준 교훈대로 힘겹지만 한 발 한 발 천천히 뗐더니 곧 그런대로 익숙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서툶'과 '익숙함'은 백지 한 장 차이였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우리네 삶과 세상의 지혜를 여는 통로였다. 지식은 배우는 것이고 지혜는 깨닫는 것이라고 했던가. 넉넉하고 유장한 산이 '톱질과 지게질'로 부족한 나를 깨우쳐 준 것이다. 그러니 나중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했던 톱질과 지게질 또한 등산이나 달리기 못지않은 건강 운동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날 군불은 실패였다. 젖은 나무는 결코 불이 붙지 않았다. 결국 빈 종이박스를 태우다 뜨뜻한 방은커녕 우리의 멋진 아궁이만 연기에 그을렸다. 나는 아내에게 지청구만 듣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남도 도보 <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산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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