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장 보러 가는 당신, 정말 멋지다

죽은 동네 살린 우사단 계단장... '10초 완성 초상화' 등 즐길거리

등록 2014.09.25 18:31수정 2014.09.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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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정하게 이어진 언덕길엔 빛바랜 벽돌집과 낡은 시멘트 담장, 듬성듬성 칠이 벗겨진 철대문이 이어져 있다. 허름한 뒷골목 향수에 젖을 무렵, 나지막이 철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곱게 단장한 백발의 어르신이 나오실 것만 같다. 하지만 웬걸. 흑인 아주머니와 아이가 길을 나선다. 저 멀리 아랍 청년이 걸어가는 모습도 보인다.


익숙한 듯 낯선 풍경에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자니, 마을버스 한 대가 요란스레 골목을 휘젓고 지나간다. '용산 01번'.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성싶은 길을 용케도 잘도 빠져나간다. 담장에 딱 붙어서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자니 순간 웃음이 난다.

'그래 여기가 이태원 우사단길이지!'

예상치 못한 풍경이 자연스러운 곳, 나는 왠지 이 길이 좋다. 도시의 변방에 선 느낌이랄까? 물론 처음엔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낯선 뒷골목이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이 길의 매력에 빠져 둥지를 튼 청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빛바랜 이 마을, 인기 거리로 되살리다

 우사단단 계단장
우사단단 계단장 이현정
구불구불 이어진 우사단 골목을 따라 오르면, 이내 허름한 다세대 상가 주택이 이어진 언덕 능선에 다다른다. 이태원동·보광동·한남동의 경계에 해당하는 우사단 10길이다. 이슬람 사원에서 도깨비시장까지 이어진 이 길을 사람들은 간단히 '우사단길'이라 부른다.


빛바랜 간판이며 낡은 상가의 모습은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느끼게 한다. 주도로에서 잠시 비켜났을 뿐인데, 이태원의 화려함과 이국적 풍광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이 길을 세련된 '낮은 한남동'에 빗대 '높은 한남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태원 뒷골목 위, 버려진 듯 남겨진 이곳 우산단길이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낮은 임대료와 골목 분위기에 매료돼 찾아든 젊은 예술가들과 청년사업가들이 함께 골목을 가꾸고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우사단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마을 환경 개선 및 활성화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서울문화재단 '도시게릴라 프로젝트'에 참가, '게릴라 가드닝'을 진행했다. 마을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더미를 치워 화단으로 가꾸고, 벽화도 그렸다. 

우사단단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마을 신문 <월간 우사단>도 만들고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마을 안 장미 계단에서 '이태원 계단장'을 연다. 2013년 3월부터 시작된 이태원 계단장은 최근 '더우니까 들어와'로 개편됐다. 지난 5월 계단장이 TV 방송에 소개된 이후, 많은 이들이 찾으며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고, 판매자도 구경꾼도 마을 주민도 모두가 불편한 장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더우니까 들어와'는 이전 계단장에 비해 마을 깊숙이 들어선 느낌이다. 우사단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는 마을의 속살까지 볼 수 있는 이색 마을시장이다.

도시의 장돌뱅이 판매자와 우사단 마을 가게들이 연계해 펼치는 장으로, 우사단길만의 독특한 개성을 흠뻑 느낄 수 있다. 1960~70년대 풍의 건물 느낌을 살린 독특한 상점만큼 특색있는 물건도 만날 수 있다. 또한, 허름한 다세대주택 1층의 간판 없는 가게들, 지하나 2~3층에 숨어 있는 공방이나 작업장, 가정집 옥상까지 스스럼없이 구경할 수 있다.

지난 8월 30일에 열린 우사단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는 예상만큼 많은 시민이 찾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각종 소품이나 빈티지 의류, 에코백, 도자용품, 수공예 가죽제품, 수제 인형은 물론이고, 독립출판물도 선보였다.

더불어 다양한 먹거리도 팔고 있었다. 청년 장사꾼의 감자튀김과 크림 맥주를 비롯해, 각종 수제 빵과 과자, 수제 잼, 샹그리아, 더치커피, 발효원액 등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를 내놨다. 특히 수제 소시지와 고기를 그릴에 바로 구워 만든 샌드위치와 영국인 요리사 스코프가 만든 스콘이 인기를 끌었다. 삼형제가 운영하는 커피 공방도 역시 발 디딜 틈 없었다.

"수분 함량이 적은 100% 친환경 자연산 숙성 꿀입니다. '어반 비즈 서울'이라는 도시 양봉 협동조합에서 지난해 교육을 받고, 올 4월부터 남산에서 딴 꿀이지요."

이태원에 살며 공방을 운영하는 유아름씨는 직접 딴 꿀과 꼬치를 팔고 있었다. 꿀이 들어간 특제 소스를 발라 낸 수제 꼬치는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일러스트 작가 배윤정씨는 직접 만든 엽서나 카드 등 아트상품을 가지고 나왔다.

"뎀 시리즈예요. 보기에는 귀여워 보이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을 표현한 거예요. 눈치를 보기도 하고, 사실은 보호를 해주기도 하고 다소 모순적인 부분이 있죠. 제가 품고 있는 그런 것에 대해 약간 귀엽게 미화 시켜 표현했어요."

 이태원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가 열리는 날, 우사단 10길에 있는 디자인스튜디오이자 위탁판매가게인 'WORKS'
이태원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가 열리는 날, 우사단 10길에 있는 디자인스튜디오이자 위탁판매가게인 'WORKS'이현정

배윤정씨는 주얼리 공방 앞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판매자와 가게 주인은 유독 관계가 돈독해 보였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친한 친구 사이였다. 이태원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는 우사단 길의 상점 주인과 계단장에 참가하는 셀러가 짝을 이뤄 준비하는 마을시장이다. 평소 아는 지인들과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태원 계단장 페이스북에 공지된 글을 보고 신청한 판매자가 참여한다.

아이디어 톡톡 튀는 우사단 계단장

​우사단 길의 이색공간 타이거 하우스 앞에는 직접 재배해 만든 바질 페스토를 파는 '신봉농장', 각종 티와 시즈닝을 판매하는 '잇 테이블', 자신의 창작곡 및 카피곡을 파는 '랩 질', 레고 액세서리를 파는 '브릭스' 등이 셀러로 함께 하고 있었다. 또한, 가게 안에서는 독립출판 작가가 자신이 직접 만든 독립잡지 <덕후>를 팔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같은 거에 빠져 있는 사람을 '덕후'라고 하죠? 사실은 모든 사람은 다 집착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있어요. '너희들도 사실 다 덕후야'라는 일침을 놓으려고 만든 잡지예요. 보시면 그냥 소소한 내용이 들어있어요. 예를 들면, '혼자 놀기'라는 주제로 만든 1호에서는 쓰레기를 주워 나열하며 이름 붙여 보기라든지, 리코더로 타이타닉 부는 법을 알려준다든지, 그런 내용이 들어 있어요."

직접 기획해 글도 쓰고, 사진도 컴퓨터 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직접 찍어 만든 잡지다. 무척 재밌었다. 가게 안팎을 여러 판매자에게 내준 타이거 하우스 또한 재밌는 공간이었다. 게스트하우스도 하고, 노래방에 인생 학교나 인력 시장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여기가 외지다 보니, 한 분 한 분 오시는 게 되게 소중해요. 그래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인력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정리해 벽에다 붙여 놓기 시작한 거죠. 사실 이 공간도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걸 되게 미안하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을 적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이걸 보고 자연스럽게 서로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겠지요?"

 이태원 계단장 명물 '10초 완성 10초 초상화'
이태원 계단장 명물 '10초 완성 10초 초상화'이현정

유쾌한 청년 오세민씨는 역삼동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올 초 이곳으로 옮겨왔다. 친근한 성격이라 그런지, 우사단 길의 마당발인 듯했다. 덕분에 타이거하우스는 동네 청년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 우사단 길엔 독특한 가게들이 많다. 나무시계와 나무 안경·다이어리·가죽 수첩 등을 파는 상점, 디자인 스튜디오, 리스토어 자전거와 페인팅 작품을 판매하는 상점, 재활용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개성 만점 소품을 판매하는 공작소 등 다양한 가게가 있다.

"요즘은 일회용품 종류도 다양하고, 튼튼하게 잘 나오잖아요. 버려지는 게 너무 많은데, 그게 너무 아까워서 이렇게 업사이크링 제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제가 만든 것이지만 디자인도 다 다르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죠."

'j&j 공작소'의 이유진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보였다. 그밖에 동네지도를 만드는 '노동연구소'도 들러볼 만하다. 이태원 계단장의 명물로 자리 잡은 '10초 완성 10원 초상화'는 입구 안내 부스에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사실 여기는 죽어있는 듯 보였던 동네였죠.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숨겨진 매력을 잘 모르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오래 시간을 두고 구석구석 훑어 보면 허름함 속에서 나오는 독특한 매력이 있거든요. 계단장이 생기면서 우사단길만의 매력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많아졌어요."

빈티지 소품 등을 파는 '20세기 싸롱' 오세정씨의 설명처럼, 우사단길은 숨겨진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사단 마을은 이곳에 둥지를 튼 청년들의 노력 덕에, 이제 서울의 인기 거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에 젊은 예술가와 청년 사업가들이 내몰리고, 거리의 개성을 잃어가는 일이 이곳에서만큼은 일어나지 않길 기대해 본다.

9월 이태원 계단장 '(아직도) 더우니까 들어와'는 오는 9월 27일 토요일 12시~6시까지 우사단길에서 열릴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우사단 마을 페이스북에서 확인하면 된다. 우사단 마을 페이스북에서는 계단장 외 마을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도 공지된다.

 이태원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는 이슬람사원에서 도깨비시장에 이르는 우사단 10길 가게 안팎에서 진행된다.
이태원 계단장 '더우니까 들어와'는 이슬람사원에서 도깨비시장에 이르는 우사단 10길 가게 안팎에서 진행된다.이현정

1. 출발 전, 우사단 마을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챙기자.
마을장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판매자 명단과 판매 물품이 공개된다. 링크된 판매자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구석구석까지 살피면, 계단장 날만 특별히 진행되는 행사나 할인 물품 등도 확인할 수 있다.

2. 우사단 계단장 '들어와' 안내지도를 구입하자.
이제 우사단 계단장은 우사단 길 가게와 작업장 등에서 진행한다. 1층이 아닌 지하나 2~3층, 혹은 골목 깊숙이 위치한 곳도 있으니 빠트리지 않고 둘러보기 위해서는 안내지도를 보며 다니는 것이 좋다. 안내 지도는 2천 원이며, 이슬람 사원 정문 부근에 있는 안내 부스 등에서 판매한다. 

3. 이슬람 사원 정문에서 출발하자.
이슬람 사원 정문 부근에서 출발해 도깨비시장 안쪽까지 둘러보는 코스로 짜는 것이 좋다. 먼저 안내부스에 들러 지도도 구입하고, 간혹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이 추가되는 경우도 있으니 미리 확인해본 후 둘러보는 것이 좋다.

4. 들어와 입간판이 걸려 있다면 거침없이 들어가 보자.
평소 공개되지 않는 공방이나 작업장도 계단장이 열리는 날만큼은 공개되기도 한다. 입구에 '들어와' 입간판이 놓여있다면, 스스럼없이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때론 생각지 못한 멋진 공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수 도 있다.

5. 2~3층 들어와 가게에선 서울의 멋진 전망은 덤!
이태원 언덕 위에 위치해 전망 좋은 집들이 많다. 2~3층만 올라서서 봐도 인근 한남동이나 남산, 한강까지 훤히 볼 수 있다. 특히, 도깨비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갤러리 바 '슈퍼마켓'이나, '이태원 가정집' 옥상 전망은 잊지 않고 들러보는 것이 좋다.

6.'동동투어'에도 참가해보자.
우사단 마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얘기가 궁금하다면 동동투어를 신청하자. 우사단 마을 전문 가이드인 이영동 씨의 안내로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마을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다. 동동투어에 대한 자세한 안내와 신청방법 등은 동동투어 페이스북을 참고하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의 축약본은 서울시온라인뉴스 '서울톡톡'에도 실렸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우사단마을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wosadan)
#이태원계단장 #우사단마을 #우사단단 #우사단길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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