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같은 놈들, 누가 독립운동 하라고 등 떠밀었어?"

[서평] <의협소설 비상도>를 읽고... 비상식의 시대, 통쾌함 느껴져

등록 2014.09.25 10:43수정 2014.09.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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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소설 <비상도> 표지. ⓒ 책보세

젊은 시절 무협지 참 많이 읽었습니다. 복잡한 세상 쳐다보기 싫었거든요. 만화방 서가에 꽂힌 수많은 무협지는 제게 단비와 같았습니다. 불만 가득한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죠. 무협지 주인공이 가공할 무공을 익힌 후 부조리한 세상 향해 내뻗는 한 수, 통쾌했습니다.

무협지 속 세상은 단순했습니다. 악(惡)이 존재하는 세상에 뛰어난 무공을 지닌 의인(義人)이 악당들을 속 시원하게 손보는 내용이었죠. 단순한 줄거리였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죠. 그 시절 남자라면 무협지 손에 잡아보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최근, 지인에게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비상도>(책보세)라는 의협소설인데 꼭 무협지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은 쉽게 읽혔습니다. 책을 펼친 후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한 번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소설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흥미진진하더군요.

<비상도>, 일제의 쓰레기 들추는 막대기 같습니다

<비상도>와 무협지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무협지는 중국이라는 나라를 무대로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반면, 소설 <비상도>는 우리 현실과 너무 가까운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은 청산하지 못한 일제 잔재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일제 잔재는 우리 곁에 너무 깊숙이 숨어 있습니다.

글쓴이는 <비상도>라는 소설을 통해 일제가 남긴 쓰레기들을 들춰내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한국사회 곳곳에 남아 악취를 내뿜는 쓰레기들을 소설이라는 막대기로 들쑤셔 댑니다. 소설도 재미있지만 글쓴이의 삶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글쓴이 변재환은(1957~2013) <비상도>라는 소설을 남기고 2013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상도>는 그의 첫 소설이자 마지막 장편소설인 셈이죠. 그의 할아버지 변상태와 아버지 변지섭은 경남지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글쓴이는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겪었겠지요.


때문에 소설은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형사였던 사람의 아들을 찾아갑니다. 적극적으로 친일에 앞장선 후손에게 조상의 행적에 대해 국민들 앞에 사과를 요구하죠. 작가는 이 대목을 글로 담으면서 현실이 더 소설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다음은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꼭 못난 자들이 과거 운운하며 남이 애써 모은 재산을 시샘하고 공짜로 얻어먹으려 달려드는 법이지" 순간 비상도는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것은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일 뿐이오."

"나는 자네 스승인가 뭔가 하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말했지만 이 땅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명심하게.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된들 욕먹을 일이 아니란 말일세."

"바보 같은 놈들! 누가 독립운동 하라고 등을 떠밀었냐 말이다. 독립이 안 되었어도 우린 얼마든지 부자로 살 수가 있었어. 그럴 능력이 있었단 말이다."- <비상도>에서

현실이 답답한 분들에게 권합니다

글쓴이는 자신이 겪은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소설에 담았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목청껏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었겠죠. 그리고 그 마음을 '비상도'라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덧입혔습니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단, 현실에서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고려왕실의 전통무예인 '비상도(非常道)'라는 가공할 무예를 익히지 않았을 뿐이죠. 그 외에 세상을 보는 눈과 모순된 사회현실에 대한 의분은 주인공 비상도보다 덜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2014년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마음이 답답한 분들에게 <비상도> 일독을 권합니다. 소설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삶 속에서 답답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뚫어 주리라 믿습니다.

또,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안에 오래 잠들어 있는 영웅을 깨워, 우리 모두가 시대의 영웅으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상도 - 비상한 세상을 뒤엎는 길

변재환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4


#비상도 #의협소설 #친일청산 #은적사 #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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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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